▲ 안대희 중수부장은 한나라당의 편파수사 주장에 대해 “다 이해한다. 수사결과가 나올 때쯤이면 우리를 이해할 것이라 믿는다”고 밝혔다.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요즘 인터넷 검색이나 언론 뉴스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고유명사다.
그의 직업은 검사. 현직은 대검 중수부장. 역대로 중수부장은 검찰 내에서 가장 주목받는 자리였지만 요즘의 안 부장만큼 각광을 받거나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인물은 없었다.
올해 48세. 중년이라면 중년이고, 젊다면(?) 젊은 나이다. 알 건 다 아는 그런 원숙함이 배어나는 연령이다. 이 중년 남자의 말 한마디, 몸짓 하나에 요즘 정·재계는 울고웃고, 놀라고 뒤로 자빠진다.
항간에 오가는 얘기. ‘요즘 세상을 들었다 놓는 세 사람이 있다. 그 첫 번째가 안대희고, 두 번째가 이승엽(야구선수)이고, 세 번째가 쿠엘류다.’ 세상의 관심이 어디에 몰려 있는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어쨌든 <일요신문>은 현재 최고의 뉴스메이커인 안대희 중수부장을 알아보기 위해 그와 직격인터뷰를 가졌다. 준비되어 있지 않는 상황에서 기습적으로 이뤄진 게릴라 인터뷰였다. 그도 놀라고, 초짜 기자도 놀랐다. 그와의 면담에서 전제조건은 ‘복잡한 얘기(수사와 관련된 부분)’는 가급적 피한다는 것이었지만 핵심이 그것이라 완전히 피할 순 없었다.
“가장 즐겨보는 TV프로그램이요? 음…, 어…, SBS 시트콤 <똑바로 살아라>를 자주 봤죠. 그런데 지금은 그 프로그램이 끝났더라고요. 아쉽네요.”
검사로서는 이례적으로 팬클럽까지 갖고 있는 2003년 최고의 뉴스메이커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 무뚝뚝한 경상도 사나이(경남 함안 출신)인 그가 평소 볼 수 없던 웃는 얼굴로 농담처럼 기자에게 던진 멘트였지만 그 안에는 의미심장함이 담겨 있다고 느꼈다.
'똑바로 살아라.’
바로 정·재계 사이의 오랜 관행과 악순환의 고리를 하나씩 끊어놓으려는 안 부장이 수개월에 걸친 비자금 수사를 통해 얻은 교훈이자 일종의 경고 메시지로 해석한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게릴라 인터뷰’는 그의 자택과 사무실에서 두 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2003. 12.10.]
안 부장과의 첫 인터뷰 도전은 실패했다. 지난 12월10일 저녁 7시 안 부장의 자택인 서울 홍은동 S아파트로 찾아갔으나 부인의 차를 타고 퇴근한 안 부장을 순간 놓쳤다. 기자는 자정까지 아파트 출입구 앞에서 안 부장의 차만 기다리다 결국 허탕을 친 채 빈손으로 원대 복귀해야 했다. 억울한 마음에 안 부장 휴대폰으로 문자 메시지를 날렸다.
“살려주세요.”
[2003.12.11.]
아마 조상님이 도운 걸게다. 바로 다음날 안 부장과 처음 일대일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아파트 정문 수위실에 ‘뻗치기(대기)’했던 것이 주효했다. 시간은 저녁 8시께. 안 부장은 부인, 두 자녀와 함께 아파트 입구로 들어서는 중이었다. 기자는 의기양양하게 안 부장 앞에 섰다. 그러나 내심 긴장하고 있었다. 안 부장이 대검에 출근할 때처럼 말없이 집으로 들어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집에 연락도 없이 찾아온 사실만으로도 기분이 언짢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기자의 걱정과는 달리 안 부장은 살며시 미소를 띠며 “반갑다”고 악수를 청했다. 검찰에서의 모습과는 전혀 딴판. “5분만 시간을 주십시오.” 그러자 안 부장은 “감기가 심하니 내일 사무실로 오라”며 ‘선처’를 부탁했다. 사실 안 부장은 감기를 앓고 있었다. 말을 하는 도중에도 피가 섞여 나오는 듯한 기침을 쏟아냈다. 그동안의 강행군 탓이었는지 몸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아 보였다.
순간 혼란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두 번 다시 올 수 없는 기회. 그를 잡고 싶었다. “어제도 밤새 부장님을 기다렸습니다. 딱 5분만 시간을 내주십시오, 부장님.” 안 부장은 안경을 만지작거리다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인터뷰에 응했다. 기자와 안 부장은 아파트 앞 주차장을 빙빙 거닐며 이야기를 나눴다. 저 멀리서 중학교 2학년인 큰아들이 걱정스러운 듯 집에 들어가지 않고 안 부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건강이 많이 안 좋은 듯합니다.
▲아이…쿨럭쿨럭…고. 뭐 이렇게 감기까지 걸렸네요. 요즘 감기 독하네요. 잘 낫지 않네. 병원도 못 가고 있어요. 어쩌겠습니까. 수사는 계속 해야하는 것이고 하니 좀 참아아죠. 퇴근한 후 집에 와서 충분한 수면을 취하려고 합니다.
―날씨가 춥기도 하지만 담배 때문에 감기가 심해진
게 아닐까요. 담배가 늘었다고 들었습니다만(안 부장은 가늘고 긴 담배를 주로 피운다).
▲예. 그래요. 그런 것도 같네. 요즘 담배가 늘긴 늘었어요. 줄담배가 됐어요.
―점심 식사는 어떻게 하십니까.
▲시켜먹지는 않습니다. 주로 나가서 먹어요. 특별히 찾는 음식은 없습니다. 아무거나 다 잘 먹어요. 요즘에는 식사할 때 돼지고기가 들어간 음식을 주로 찾는 편이에요.
―부모님(부산 거주)에게는 자주 연락을 하는지.
▲마찬가지로 죄송스러워요. 찾아뵌 지가 꽤 됐네요. (씩 웃으며) 중수부장에게는 휴가도 안 주더라고. 왜 그러지?.
―취미 생활 즐길 여유도 없을 텐데. 당구를 잘 친다고 들었습니다.
▲누가 그래? (기자는 손가락으로 아파트 앞 슈퍼마켓을 지목했다) 응. 아니야. 잘 못 칩니다(안 부장의 바둑 실력은 아마 6단 수준으로 정평이 나있다).
―중수부장직을 맡고 나서 가장 아쉬운 점이 있다면.
▲지인들을 자주 만나지 못한다는 게 가장 아쉬워요. 같이 근무했던 동료·동창들과 거의 만나지 못했어요. 그러다 보니 오해도 많이 받습니다. 중수부장 맡더니 연을 끊었다고요. 가족들에게도 참 미안합니다. 아내도 그렇고 아이들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해 안쓰러울 따름입니다. 짬이 생길 때마다 가족들과 함께 보내려고 합니다. 대화 시간을 많이 갖고 싶어요.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데. 답답하지 않습니까.
▲지금의 제 위치가 이말 저말 흘릴 자리는 아니지 않습니…쿨럭…까. 결과로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쿨럭쿨럭.
▲ 지난 11일 밤 집앞에서 기자와 인터뷰중인 안대희 중수부장. | ||
사진 촬영이 끝나고 안 부장은 “내일 사무실에서 봅시다”라며 집으로 들어갔다. 기자는 안 부장과 헤어진 뒤 잠시 아파트를 위 아래로 훑어봤다. ‘대검 중수부장이 강북의 허름한 아파트에서 산다’는 소문은 거짓이 아니었다. 실제 안 부장이 살고 있는 아파트는 53평형으로 넓은 편이지만 3억원선에서 거래되는 ‘싼 집’이었다. 그정도면 서울 강북에서도 가장 싼 축에 속한다.
안 부장은 이 아파트에서 15년을 살았다. 93년 부산지방검찰청 특수부장, 98년 천안지청장, 99년 대구지방경찰청 1차장, 2000년 부산지방검찰청 동부지청장, 그리고 지난해 부산고등검찰청 차장직 발령을 받고 주말부부를 선언했을지언정 집을 팔지는 않았다. 그만큼 이 집에 애착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아파트 주민들은 “이곳 공기가 맑고 분위기도 아늑하고 조용해 앞으로도 떠나실 마음이 없는 것으로 안다”는 반응이었다. 부인과 함께 아파트 뒤편에 있는 백년산을 등반하는 재미도 집을 떠날 수 없게 한 이유였다.
오늘 본 안 부장은 그저 평범한 가장이었다. 대통령 측근도 잡아들이는 ‘슈퍼파워’ 중수부장이지만 동네 주민들에게선 그저 청렴한 검사님에 불과했다. 주민들은 운동복 차림으로 가게에서 담배나 자녀들에게 줄 과자를 사는 안 부장과 항상 마주치기 때문이다. 심지어 같은 동 아파트의 몇몇 주민들은 아직도 그가 대검 중수부장이라는 사실을 모른다고 하니 할 말 다한 것이 아닌가.
[2003.12.12.]
약속시간을 정하지 않았지만 점심시간 후가 적당하겠다 싶어 오후 12시가 돼서야 사무실을 나섰다. 대검 청사에 도착하니 낮 12시50분. 무작정 비서에게 연락을 취하고 중수부장실로 향했다. 비서는 “잠깐 기다리세요”라고 말한 뒤 중수부장실로 들어갔다.
이윽고 비서가 방에서 나오더니 기자를 보며 “들어가세요. 그리고 사진은 찍으시면 안돼요”라는 당부의 말을 전한다. ‘엥? 부장님이 설마.’ 차마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내색은 하지 않은 채 “사진기자는 그저 앉아만 있겠다”고 비서에게 전한 뒤 방안으로 들어섰다.
“어∼, 유 기자. 어서 와요. 앉아요.”
인터뷰가 순조롭게 이루어지는 듯했다. 무척이나 반갑게 취재진을 맞이하는 안 부장. 그러나 안 부장은 엷은 미소를 지으면서 기자에게 한 가지 양해를 구했다. “미안한데. 지금 너무 바빠. 조금밖에 시간을 줄 수 없네요.”
순간 안 부장의 집무탁자를 무심코 쳐다봤다. 두꺼운 서류 뭉치가 제법 쌓여 있었다. 점심식사를 일찍 끝내고 안 부장은 서류를 검토하고 있던 중에 기자를 맞이했던 것이다.
'과연 대답을 몇 개나 받을 수 있을까.’
안 부장과의 두 번째 인터뷰는 그렇게 시작됐다.
―부장님은 기자들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연예인, 인기 스타가 아니다”고 합니다. 개인이 부각되고 있는 부분에 대해 부담감을 많이 느끼고 있는 것이죠.
▲그래요. 중수부 전체 수사관들과 검사들이 고생하고 있는데 수사 책임자라는 이유만으로 집중조명을 받는다는 자체가 상당히 부담스러워요. 수사는 개인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검찰 조직이 하는 것이죠. 유 기자가 잘 지적했네.
―저 같은 젊은 기자들을 만나면 어떠한 생각이 듭니까.
▲저는 검사나 기자나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개개인이 무한책임을 갖고 일하는 직업이기 때문이죠. 빈말이 아닙니다. 음, 유 기자. 나이가 드니까 말이죠, 이렇게 유 기자처럼 젊은 기자분들하고 이야기하면 참 좋아요. 영어 써서 미안합니만 ‘Refresh’해진다고 할까요. 톡톡 쏘는 질문도 하고 꽤 날카로운 질문도 받을 때면 정신이 바짝 들어요. 저는 젊은 기자들이 좋습니다. 예.
―몰라서 묻습니다. 특수부와 중수부가 하는 일의 차이점이 있나요.
▲거의 같다고 봐야죠. 다만 중수부는 총장 직속기관입니다. 총장이 보호막이 돼주니까 사안이 큰 대선 비자금 비리까지 수사를 확대할 수 있는 것이죠. 앞으로 검찰은 특수부나 중수부의 편제를 좀 더 강화할 겁니다. 어, 그리고….
예상대로였다. 안 부장은 거침없이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럴 만도 했다. 그는 지난 80년 서울지검 검사로 임용된 이후 20년 넘게 특수부 생활만을 경험한 ‘특수통’. 인천지검 특수부장, 부산지검 특수부장, 대검 중수부 1·2과장, 서울지검 특수 1·2·3부 부장검사직을 거치면서 서울시 버스회사 비리부터 대형 입시학원 비리, 각종 설계 감리 비리, 저질 연탄, 거액 사기 사건, 바닷모래 불법 채취 등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굵직한 사건을 철저한‘기획’ 수사로 모조리 파헤친 바 있다.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가장 보람을 느낀 때가 언제였습니까.
▲서민들을 위한 사건을 처리했을 때입니다. 당시 수사를 받았던 분들은 기분 나빠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에게 욕을 할지도 모르고요. 하지만 어려운 시민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줬다는 부분에서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분위기가 슬슬 무르익은 듯 싶었다.
―노 대통령의 최측근 소환이 계속 이루어지고 있고, 대기업의 압수수색도 마찬가지입니다. 노무현 대통령…, 아직도 부담스럽죠.
▲음…, 그렇습니다. 아니라고 할 수 없겠죠. 당연합니다. 대통령뿐 아니라 각 정당, 기업들도 어렵습니다. 실제 보시기에도 어떤 수사보다 어렵다는 것을 느낄 수 있지 않습니까. 국가를 움직이는 분들에 대한 수사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죠. 그러나 수사는 검찰총장 지시하에 신중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과정이 어려웠던 만큼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봅니다.
―중수부가 제대로 수사를 하고 있다고 보십니까.
▲검찰, 즉 중수부가 아직 국민들에게 신뢰를 전적으로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때문에 검찰 조직도 자체적으로 반성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수부가 과거처럼 청와대의 하명을 받아 수사 방향과 강도를 결정하지는 않습니다. 총장님의 지휘 방침에 따라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나 개인적으로도 법과 원칙을 충실히 따르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잡음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하고 있기도 하구요. 어∼, 그만하입시더. 이거. 시간이 다 됐네.
듣고 싶지 않았던 사투리가 튀어 나왔다.
“그만하입시더.”
안 부장은 몹시 바빠 보였다. 그러나 안 부장의 손을 놔줄 수가 없었다.
”한 가지만 더 하겠습니다.”
기자가 난처한 표정을 짓자 의자에서 일어섰던 안 부장이 다시 자리에 주저앉는다.
―한나라당에서는 편파 수사라고 비난합니다. 앞으로 더욱 비난은 거세질 것으로 봅니다.
▲그럴 것입니다. 수사를 당하는 입장에서는 당연히 마음이 불편할 수밖에 없죠. 다 이해합니다. 수사 결과를 지켜봐 주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그때가 되면 우리를 이해해 주실 거라 믿습니다.
―비자금 수사의 끝은 어디일까요. 부장님.
▲이러한 수사는 최소한 2년 이상이 걸린다고 봐야 합니다. 고비고비가 너무 많아요. 총장님도 ‘첩첩산중’이라고 표현할 만큼 하나의 비리를 발견하면 여기저기서 동시다발적으로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정·경제계에 미치는 영향도 고려해야겠지만 그보다 더 신경이 쓰이는 것이 있습니다. 국민들이 서서히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죠. 특검에 연연하지 않고 수사를 계속 진행하겠지만 지금으로선 뭐라고 말할 단계는 아닌 듯합니다. 국민들이 이 정도다 싶으면 끝내는 게 가장 좋은 것 아닌가요?
휘하의 직원들과 소주 한잔 하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며 고개를 젓는 안 부장. 그가 <일요신문> 독자들에게 한 마디 전해 달라고 했다.
“J’ai la grippe, mais je vais travailler beaucoup.”(감기 걸렸지만 열심히 하겠습니다)
지난 82년 프랑스 국립사법관학교에서 2년간 연수과정을 밟으며 익힌 불어 실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