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심씨와의 첫 만남에서 자신을 ‘37세의 정태영’이라고 소개했던 정씨는 곧 신분이 ‘49세의 정호영’으로 바뀌면서 결별했다. 사업 만큼이나 사랑도 마음먹은 대로 성취할 것으로 믿었을까. 정씨는 “나만 믿고 따라오면 된다”며 심씨를 설득했으나 심씨는 끝내 거절했다.
당시 심씨측이 정씨에 대해 가진 세 가지 큰 불신 중 하나는 불확실한 나이였다. 당시 시중에는 정씨의 나이에 대해서는 51년생, 53년생, 63년생 등이 나돌았다. 정 회장은 미국의 영주권을 보여주면서 자신을 63년생으로 확인시켰고, 호적등본을 보여주며 64년생을 최근 바로잡았다고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심씨의 부모가 직접 확인해본 결과 정씨의 호적은 54년생으로 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정씨는 “나이는 잘못된 것이다. 어린 시절 나의 불우한 가정사 때문에 그렇게 올라간 것이다. 정확한 나이는 나 자신도 모르고 있다”고 변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의 이혼 여부에 대한 의혹도 있었다. 심씨측은 “정 회장은 자신을 이혼남이라고 소개했으나 실제 확인 결과 이혼을 하지 않은 상태로 별거중인 아내가 있었고, 아들도 있었다”고 심씨측은 전했다.
학력도 당시 심씨측은 불신을 표했다. 국내에서 서울고를 다니다 미국으로 건너가 대학을 나왔다는 설명에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다는 것.
새삼 지금 군납비리 인맥으로 문제가 되고 있으나 실제 정씨의 학력 위조는 2001년 당시 언론에게 한 차례 집중 조명을 받은 바 있다.
당시 정씨는 기자의 질문을 받고 “불우한 가정환경 탓에 초등학교를 여기(한국)서 못 다녔고, 중학교는 검정고시를 통과했다. 서울고를 다닌 사실은 없다.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다닌 사실은 있다. 다만 곧 미국으로 건너갔다”고 밝혔다.
심씨 부모의 강력한 반대와 자신에 대한 갖가지 의혹으로 당사자인 심씨가 마음이 흔들리자 정씨는 독단적으로 결혼을 강력히 추진하기도 했다. 지난 2001년 9월23일 결혼 발표 역시 정씨의 일방적인 결정이었다는 것. 그러나 이것은 도리어 심씨의 마음을 결정적으로 돌아서게 만들었다.
정씨는 당시 언론인터뷰에서 “지금껏 내가 서 있을 자리가 아닌 곳에서 서성거렸다는 생각에 깊이 반성하고 있다. 이제 다 정리하고 미국으로 돌아가려 한다.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약간의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앞으로는 사업에만 전념하겠다. 그 길만이 명예를 회복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히고는 출국했다.
그 이후 정씨는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사업에 몰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꼭 2년 만에 군납비리 혐의로 구속돼 세간의 관심권으로 돌아왔다.
[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