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인비리 의혹과 관련, 29일 오전 서울지검으로 소환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부위원장인 김운용 민주당 의원이 서울지검에 출두 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일단 지난 연말부터 김 의원의 각종 비리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지검 특수2부(부장검사 채동욱)가 지금까지 포착한 김 의원의 혐의는 업무상횡령과 배임수재, 외환관리법위반 등이다.
이미 알려진 대로 김 의원은 우선 2000~2001년 자신이 수장을 맡고 있는 세계태권도연맹과 국기원에서 30억여원의 공금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김 의원이 이 돈을 가족들과 나눠 쓴 정황 등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또 김 의원은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위원을 지낸 이광태 부산 D여객 대표(46·구속)와 김현우 전 한국카누협회장(56)으로부터 KOC 위원 선출 등과 관련해 각각 1억3천만원과 5억여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중 이씨는 김 의원에게 청탁해 2000년 11월 KOC 위원으로 선출된 다음해인 2001년 2~7월 김 의원의 측근인 KOC 임원 윤아무개씨가 “IOC 위원들이 아시안게임 준비차 내왕해 김 의원의 접대비가 많이 드니 찬조해달라”고 하자 두 차례에 걸쳐 돈을 건넨 것으로 조사됐다.
김씨의 경우, 김 의원에게 KOC 선임 청탁과 함께 자신이 대표를 맡고 있던 아디다스코리아가 태권도협회 등에 각종 태권도 용품을 납품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부탁을 하면서 5억~6억원을 제공한 단서가 포착된 상태다.
여기에 더해 김 의원은 검찰이 자신의 집에 있던 개인 금고와 은행 대여금고 등에서 찾아낸 1백50만달러 상당의 달러화와 유로화, 엔화 등이 어디서 났는지, 당국에 제대로 신고된 외화인지 등에 대해서도 수사를 받고 있다.
검찰이 확인중인 김 의원의 비리 혐의 또는 의혹은 이뿐만이 아니다. 수사팀은 김 의원이 그동안 대한체육회 회장과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위원장 등을 지내면서 기업체들이 기부한 수십억원의 체육 후원금 중 상당액을 개인 용도로 전용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수사중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2000년 호주 시드니올림픽 폐막 뒤 대회 수익금 중 김 의원이 총재로 있는 세계태권도연맹 몫으로 보낸 수십만달러를 김 의원 측이 해외 계좌로 빼돌렸다는 의혹의 진위 여부에 대한 조사도 진행중이다. 이와 함께 검찰은 김 의원이 10만달러 안쪽의 외화를 불법 밀반출한 단서를 잡고, 정확한 액수와 돈의 사용처 등을 추적하고 있다.
검찰 수사 관계자는 “여러 경로를 통해 김 의원의 비리에 대한 상당한 양의 첩보를 입수해 놓은 상태이며, 일손이 달릴 정도로 할 거리가 많다”고 말해, 김 의원의 범죄 혐의가 이미 알려진 것들보다 훨씬 많음을 시사했다.
검찰은 김 의원이 지난달 29일 정식 소환조사를 받기에 앞서 같은 달 26일 기습적으로 검찰청사에 출두해 A4지 6장 분량의 ‘자수서’를 제출했을 때도 “김 의원이 자신이 받고 있는 혐의들을 제대로 모르고 있는 것 같다”며 코웃음을 친 바 있다.
특히 검찰은 최근 김 의원의 비리 수사 과정에서 김 의원 건에 버금가는 ‘대어’를 잡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수사 단서를 포착한 것으로 알려져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검찰의 한 소식통은 “김 의원을 파다가 뭔가 새로운 게 잡힌 것은 맞지만 아직 공개될 만한 단계는 아닌 것 같다”고 전했다.
검찰 주변에서는 김 의원이 체육단체 등을 통해 조성한 비자금 일부가 정치권으로 유입된 흔적이 수사팀에 잡혔다는 관측이 가장 유력하다. 검찰은 최근 김 의원 자택 등에 대한 압수수색과 주변 인사들에 대한 소환조사 등을 통해 김 의원 측이 그동안 몇몇 유력 정치인들에게 억대의 자금을 제공한 흔적을 발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를 두고 우선 김 의원이 2000년 총선 때 민주당의 전국구 후보로 내정되는 과정에서 일종의 공천헌금을 냈을 가능성과 함께, 유력 정치인들에게 포괄적인 보험금 성격의 정치자금을 제공했을 가능성 등이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사정당국 관계자는 “상식적으로 숱한 고비가 많았던 김 의원이 (돈을) 챙기기만 하고 베풀지 않았다면 어떻게 체육계에서 장기집권할 수 있었겠느냐”고 반문했다.
실제로 김 의원은 최근 수년간 사마란치 전 IOC 위원장 등 국제 스포츠계 거물들과의 금전적인 유착설, 태권도 국가대표 선수 부정선발 시비, 아들 정훈씨(미국명 존 김)와 관련된 각종 비리 의혹 등으로 여러 차례 위기를 맞았으나, 그때마다 탁월한 생존력을 과시했다.
그는 2001년 11월 세계태권도연맹의 파행 인사 등과 관련해 전국 태권도학과 교수와 학생, 일선 사범들로 구성된 ‘범태권도 바로세우기 운동연합’이 개혁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는 등 분란이 일자 태권도협회장과 국기원장직에서 사퇴했으나, 얼마 뒤 국기원장직은 되찾아갔다.
또 2002년 초에는 서울지검이 아들 정훈씨가 태권도협회 전·현직 간부 등으로부터 1억7천만원을 본인 및 가족 등 계좌로 입금받았다가 되돌려준 정황을 포착해 비리 혐의를 수사하면서 사법처리 대상자로 거론되기도 했으나, 그 뒤 수사가 흐지부지되면서 손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
그의 최대 고비는 지난해 7월 IOC의 2010년 겨울올림픽 개최지 결정을 앞두고 IOC 부위원장 선거에 집착해 평창겨울올림픽위원회의 유치활동을 사실상 방해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전국민적인 지탄을 받은 것이다. 당시 국회 평창겨울올림픽유치특위는 진상조사를 거쳐 김 의원에게 의원직과 국기원장 등 국내 주요 공직에서 사퇴할 것을 권고하는 결의안까지 채택했으나, 그는 꿈쩍하지 않았다.
앞으로 검찰 수사를 통해 김 의원과 삼성그룹 등 재벌기업들과의 ‘친밀한 관계’도 부수적으로 드러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그룹은 1996년 이건희 회장이 IOC 위원으로 선임되는 과정에서 김 의원의 ‘스포츠 외교’ 덕을 톡톡히 봤으며, 그 뒤로 김 의원이 수장을 맡은 체육단체 등에 상당한 금액을 후원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건희 회장에 이어 2002년 IOC 위원에 선임된 두산그룹 박용성 회장 등도 김 의원이 IOC 회장 선거 등에 출마할 때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렇다고 검찰이 김 의원이 그동안 국내 기업인들의 IOC 진출과 국제대회 한국 유치 등을 위해 해외 스포츠계 인사들을 상대로 로비활동을 벌인 부분까지 들춰낼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검찰 소식통은 “그런 부분은 국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설사 사실이라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사법처리 대상으로 삼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밖에 언론계에 김 의원을 `‘펜’으로 후원해온 이른바 ‘김운용 장학생’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 것과 관련해, 검찰 수사의 불똥이 언론계로 튈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어쨌든 검찰은 1월 중 김 의원을 한 두 차례 추가로 소환조사한 뒤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어서 김 의원의 비리 실체가 곧 모습을 드러낼 전망이다. 18년째 IOC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스포츠 대통령’으로 자리매김해온 김 의원이 어디까지 날개 없는 추락을 할 것인지에 세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이진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