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후 검찰이 수사를 통해 밝혀내야 할 ‘최성규 미스터리’는 크게 ▲어떻게 해외 도피가 가능했는지 ▲특정세력이 도피자금을 지원했는지 여부 ▲청와대측이 최규선씨에게 최 전 총경과의 동반 밀항을 권유했다는 의혹이 사실인지 여부 등으로 나뉜다.
우선 최 전 총경이 미국으로 도피한 것은 김 전 대통령의 3남 홍걸씨가 연루된 ‘최규선 게이트’가 터져 검찰이 수사를 진행중이던 2002년 4월. 당시 서울지검은 최규선씨의 운전기사 천호영씨가 시민단체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최씨가 관련된 각종 비리 의혹을 폭로함에 따라 최씨 등 18명을 출국금지 조치한 상태였다.
천씨의 폭로 내용에는 최 전 총경이 최규선씨와 손잡고 C병원측 비리를 은폐했다는 내용 등이 포함돼 있었으나, 어찌된 영문인지 검찰과 경찰 모두 최 전 총경 조사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나중에 검찰은 “혐의가 불확실한 상태에서 현직 총경을 출국금지 하기가 적절치 않아 출금조처를 미루고 있었다”고 해명했다.
이런 와중에 최 전 총경은 4월13일 밤 방송뉴스에 자신이 4월10~12일 강남 오크우드호텔에서 최규선씨, 김희완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 등과 함께 검찰 수사에 대비한 대책회의를 연 사실이 보도되자 곧바로 다음날인 4월14일 오전 홍콩으로 출국했다.
그럼에도 수사 당국은 인터폴에 수배조치도 하지 않았고, 그 사이 최 전 총경은 인도네시아와 일본 등을 거쳐 4월20일 미국 뉴욕에 도착한 직후 경찰 주재관과 보도진을 따돌리고 잠적했다.
▲ 최규선씨 | ||
따라서 수사당국이 왜 ‘최규선 게이트’의 주요 관련자 가운데 최 전 총경에 대해서만 출국금지 조치를 내리지 않았는지, 인터폴과의 공조 수사가 지연된 경위는 무엇인지, 뉴욕 케네디 공항에서 우리 경찰 주재관을 어떻게 따돌릴 수 있었는지 등에 대한 진상규명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와 관련, 검찰은 당시 경찰청 고위간부 2~3명과 최 전 총경의 부하 경찰관 3~4명 등을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했거나 가까운 시일 내에 소환조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 전 총경이 인터폴 수배중이던 지난해 2월 미국 경찰에 체포될 때까지 3백여 일간의 도피 생활 중 누구의 도움을 받았는지도 관심거리다. 장기 도피에는 적지 않은 도피자금이 들고 정보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는 홍콩에서부터 미국까지 5개국을 거치며 ‘홍길동식’ 도피행각을 하는 과정에서 현금으로 비행기표를 구입하고 맏사위 정아무개씨를 동반하는 등 상당한 금액의 도피자금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됐다.
경찰청이 2002년 8월 체포영장이 청구된 피의자 신분의 최 전 총경에게 9천만원대의 퇴직금을 지급한 경위도 조사 대상으로 거론된다. 경찰청은 당시 “최 전 총경이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우편으로 퇴직금을 청구했는데, 그가 파면된 상태여서 정규 퇴직금의 절반인 9천8백12만원을 입금했다”고 밝혔는데, 이는 범죄자에게 도피자금을 제공한 격이라는 비난을 불러일으켰다.
최 전 총경이 체포된 뒤 1년 가까이 미국 사법당국을 상대로 한국 송환을 피하기 위해 법정투쟁을 벌이고, 망명신청을 하는 과정에서 들어간 거액의 변호사 비용도 어디서 났는지 규명돼야 할 부분이다.
또한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현지 방송인 <라디오코리아>가 지난해 11월 최 전 총경의 부인 정아무개씨가 로스앤젤레스의 한인타운 중심가에 예능학원을 열었고, 한인타운 인근의 부촌에 저택까지 구입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한 것과 관련해, 학원 및 주택 구입자금의 출처에 대한 자금추적도 이뤄질 전망이다.
이와 함께 검찰은 최 전 총경을 상대로 ‘최규선씨 밀항권유설’의 실체에 대해서도 강도 높게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최규선씨는 2002년 4월19일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로 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으면서 ‘밀항권유설’을 폭로했다. 최씨는 “최 총경이 내게 ‘4월11일 청와대에서 대책회의를 한 이후 청와대 정무비서관 L씨가 출국금지가 돼 있으면 밀항이라도 하라고 했다. 부산에 준비해 놓았다’면서 밀항을 권유했다”고 진술했다. 또한 최씨는 “최 전 총경이 홍콩으로 떠나던 날까지 집요하게 ‘동반 밀항’을 요청받았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진술은 곧바로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으나, 검찰에 소환된 L비서관이 “대책회의 같은 것은 열리지도 않았고, 밀항을 권유한 사실도 없다”고 강력히 부인해 사건의 진상은 미궁에 빠졌다
L비서관은 나중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최규선씨가 밀항 대책회의를 함께 했다고 지목한 최 전 총경은 4월11일 N비서관에게 보고를 하러 왔다가 N비서관이 없어 내 방에 들러 3분 정도 있었다. 내가 휴대폰으로 N비서관에 연락했더니 옆 방에 있다고 해서 ‘최 총경을 올려보내겠다’고 했다. 그것이 전부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검찰은 최규선씨의 진술이 상당히 구체적이었던 점 등을 감안할 때 ‘밀항 권유설’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검찰은 이미 사건 당시 청와대 비서관 3~4명을 출국금지 해놓은 상태이며, 조만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 조사한다는 계획이다.
이 경우 최대 관심사는 과연 ‘밀항 권유설’ 등이 사실이라면 가장 윗선의 지시자는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검찰 주변에서는 당시 권력 실세 박아무개씨 등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으나, 당사자들은 강력히 부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최 전 총경은 최규선씨 부탁으로 “김홍걸씨에게 4억원을 빌려줬다”는 소문을 퍼뜨린다는 이유로 중소건설업체 유아무개 이사를 ‘청부 수사’한 혐의에 대해서도 조사를 받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처럼 산적한 의혹을 수사해야 하는 검찰 앞에는 두 가지 난관이 가로놓여 있다.
그 하나는 최 전 총경의 수사 비협조다. 지난 18일 수사관들에 이끌려 인천공항에 도착한 최 전 총경이 취재진에게 “대책회의 같은 건 한 적이 없다”고 말했을 때 이미 예상됐듯이 그는 자신의 혐의와 관련 의혹들을 완강히 부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팀 관계자는 “최 전 총경은 경찰 특수수사과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이어서 조사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며 “확실한 증거를 내미는 것만 겨우 인정하는 식”이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검찰의 또 다른 고민은 최 전 총경 관련 의혹에 연루된 인사들이 대부분 현 민주당과 직·간접적으로 연결고리가 있는 구여권 출신들이어서 정치적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자칫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민주당측으로부터 ‘보복 수사’ 시비 등이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건에 연루된 의혹이 있는 구여권 인사 중 일부가 이번 총선에 출마한 것도 검찰로서는 신경이 쓰이는 대목이다. 현재 L, N 전 비서관은 민주당과 열린우리당 간판으로 각각 출마할 채비를 하고 있다. 현역 정치인인 P씨와 L씨 등도 출마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성규 의혹’이 가뜩이나 어지러운 정국에 새로운 파문을 몰고 올지, 아니면 ‘찻잔속의 태풍’으로 끝날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진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