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월4일 이학수 부회장이 대검에 출두하고 있다. | ||
불법 대선자금 수사와 관련해 검찰과 삼성 사이에 형성돼 있는 기류를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검찰과 삼성의 한판 승부가 지금 4·15총선과 탄핵정국의 소용돌이 뒤에 가려진 채 여전히 꿈틀대고 있다. 삼성측은 “우리는 불구속 쪽으로 조율이 됐다”고 여유로움을 뽐내고 있다. 하지만 검찰의 분위기는 또 다르다. “삼성에 대한 결정은 다른 기업 수사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감안해 달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하고 있다.
대검 중수부의 ‘안대희팀’은 여전히 이학수 부회장의 구속에 대한 가능성을 매만지고 있다는 전언이다. 여기에 사채시장에서 발견된 2백억원의 채권이 삼성과 연관성이 있다는 정황이 포착된 것으로 전해지는 가운데 안대희팀의 2백억 추적에 촉각이 모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노무현 캠프로 흘러들어간 돈에 대해 ‘30억 플러스 알파설’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 3월8일 안대희 중수부장이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할 때 “대기업 수사가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다”며 삼성 현대차 동부 부영 등 4개 기업을 특별히 거론했다.
검찰 주변에서는 동부의 김준기 회장과 부영의 이중근 회장의 구속을 기정사실화하는 가운데 현대차의 김동진 총괄부회장과 삼성의 이학수 부회장의 구속 가능성을 다시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특히 이학수 부회장의 구속 여부는 대단한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수사 과정에서 이 부회장의 구속 여부를 둘러싸고 안대희 중수부장과 송광수 총장 등 검찰 수뇌부 간에 적잖은 갈등과 마찰이 있었다는 후문이 흘러나온 터였다.
이번 수사를 놓고 검찰 전체가 완벽한 팀워크를 형성했던 것처럼 비쳤으나 실제 내부의 긴장감은 팽팽했다고 한다. ‘걸리면 무조건 친다’는 소위 안대희식 수사에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삼성의 노 캠프로의 대선자금 유입을 확신했던 수사팀이 수사 과정에서 삼성에 가졌던 반감은 무척 컸다는 게 정설이다. 철저하게 입을 다물고 있는 삼성측의 태도에 심지어는 ‘청와대 위에 검찰, 검찰 위에 삼성’이라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
특히 김인주 사장이 아예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고 치고 나오자 수사팀 내부에서는 “자기가 얼마나 잘 나가는 사람인지는 모르겠으나 이제 새파란 40대에 불과한데… 소위 ‘삼성맨’들은 한국 사회 위에 있는 사람들 같다”며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수사팀은 이 부회장을 전격 공개소환하는 등의 압박 카드를 사용하기도 했으나, 이 역시도 효과가 없자 구속의 불가피성을 역설했다는 것. 하지만 검찰의 대체적 의견은 역시 신중론이 우세했다. “이 부회장만 구속하는 것은 기업 형평성에도 문제가 있고, 특히 돈을 전달한 사람을 구속한다면, 돈의 출처와 돈을 받은 사람도 피할 수 없게 된다”는 점을 들어 이를 반대했다는 것. 이건희 삼성 회장과 노 대통령, 이회창 전 후보까지 줄줄이 연루되는 점을 껄끄러워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대검의 한 관계자는 “이 부회장의 구속을 둘러싸고 안 중수부장과 송 총장이 갈등을 빚었다는 일부의 소문은 확대 해석된 것”이라며 “송 총장은 중수부 수사팀에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다만 구속 여부는 중대한 사안이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은 있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한때 긴박했던 삼성의 표정도 한결 여유로워진 모습이다. 대검의 한 관계자는 “얼마 전 삼성의 한 인사와 만났는데 오히려 내게 ‘이 부회장이든 김 사장이든 구속은 없는 것으로 조율되었다’며 자신하더라”라고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사채시장 관계자들의 증언을 통해 막판에 드러난 2백억원의 채권에 대한 추적이 계속되고 있는 점은 주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사실상 삼성과 관련이 있다는 얘기가 이미 파다하게 퍼져 있기 때문. 대검측에서는 현재 이에 대한 구체적 확인은 피하고 있는 상태다.
최근 불거진 ‘2백억원, 노 캠프 유입설’과 관련한 언론보도에 대해서도 가타부타 말을 않고 있다. 다만 계속 수사중이라는 점만 확인하고 있다. 다소 긴장이 풀린 듯한 삼성을 은근히 계속 압박하는 듯한 모습이다. 총선 후 검찰의 수사가 본격적으로 재개된다면 2백억원 채권의 행방이 또다시 뜨거운 감자로 등장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야당측에서 제기하는 두 가지 의문, 즉 ‘과연 삼성의 노 캠프에 대한 자금이 30억원이 전부이겠는가’와 ‘안희정씨가 유일한 창구였겠는가’에 대해서는 검찰측도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민주당 김경재 의원의 지난 3월2일 ‘대선 전 이학수-김경재 대화’ 내용으로 검찰은 안씨를 유력하다고 보고 압박했고 그 결과가 30억원 수수였다”며 “하지만 삼성의 정보력을 감안해 볼 때 대선 막바지에 들어선 시점에선 삼성이 이미 노 후보의 당선을 확신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삼성에는 노 후보와 절친한 이학수 부회장이 있다. 2002년 11월에 한 차례 주고 끝냈을 리가 없다. 플러스 알파가 없겠는가”라고 반문하고 있다.
부산상고 출신의 여권 한 관계자는 얼마 전 사석에서 이학수 부회장에 대한 호감을 기자에게 한껏 표현한 바 있다. 그는 “노 대통령이 과거 변호사와 초선 국회의원을 하던 풋내기 시절 부산상고 출신의 쟁쟁한 기업인들과 몇 차례 만난 적이 있는데, 당시 L기업의 한 선배가 냉대했던 것에 비해 이 부회장은 상당한 격려를 보내 노 대통령이 지금도 많이 고마워하고 있더라”라며 두 사람의 친분 관계를 전했다.
그는 또 이 부회장의 그룹 내 위상과 이건희 회장의 절대적인 신임을 전했다. 그는 “이 부회장은 바쁜 업무로 동문회에 자주 나오지는 못하지만 비서실을 통해 항상 동문회비는 확실히 챙겼다”며 “한 번은 이 부회장의 요청으로 내가 그의 집무실에 찾아가서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그가 ‘보다시피 여긴 창살없는 감옥이나 마찬가지다. 난 개인 시간을 가질 여유가 없다’고 한탄조로 말했다”고 설명했다.
이 부회장에 대한 이건희 회장의 신뢰는 거의 절대적인 것처럼 보였으며, 특히 밤잠이 별로 없는 이 회장이 새벽 1~2시에도 수시로 전화를 걸어와서 이것저것 업무를 챙기는 탓에 이를 견디다 못한 이 부회장이 결국 이 회장에게 양해를 구하고 두 사람의 핫라인에 녹음기를 설치해서 녹음된 대화 내용을 다음날 다시 한번 확인하곤 한다더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