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의자 이아무개씨 명의의 8억원대 반포동 빌라 전경. | ||
이런 가운데 ‘간 큰’ 유통 회사 경리 직원이 수십억원대의 회사 공금을 빼돌리다 들통나 경찰에 붙잡히는 사건이 또 일어났다.
지난 4월10일 서초경찰서에 특정경제가중처벌법 위반으로 구속된 D유통 회사 경리과장 이아무개씨(여·33). 이씨는 회사 회계 장부를 조작하는 수법으로 3년간 회사 공금 22억원을 횡령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조사 결과 이씨는 빼돌린 공금으로 강남의 90평형 빌라와 고급 승용차 두 대를 구입했으며, 특히 남편 유아무개씨(35)도 부인이 회사에서 돈을 빼내도록 압력을 넣고, 시가 43억원에 달하는 스포츠센터 인수 계약금으로 1억원을 사용하는 등 부인이 빼돌린 돈 대부분을 유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가 처음으로 회사 공금을 빼돌린 것은 지난 2001년. 이씨는 두 차례에 걸쳐 공금 1천8백만원을 자신의 계좌에 이체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당시 이씨는 법인 계좌에 돈을 다시 입금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씨가 본격적으로 공금을 빼낸 시기는 2002년부터. 이씨는 2002년 5차례에 걸쳐 약 2억원, 2003년부터 올해 3월3일까지 무려 46차례에 걸쳐 20억원을 빼냈다. 이씨는 자기 명의로 지난해 11월28일 반포 4동 시가 8억5천만원 상당의 90평형 S빌라를 계약했으며 그 뒤로도 아우디, 에쿠스 등 고급 승용차를 구입했다.
수사를 맡은 박종상 형사는 “지난 1월29일에는 이씨가 자신의 계좌를 거치지 않고 회사 계좌에서 곧바로 빌라 주인 계좌로 입주금 2억9천만원을 송금한 내역도 발견됐다”며 혀를 내둘렀다.
놀라운 점은 수십억대 공금이 회사 계좌에서 빠져 나갔음에도 D유통의 경리 책임자나 대표 이사가 횡령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것. 실제 이씨가 현금이 아닌 회사 계좌의 돈을 인터넷 뱅킹 등을 통해 자신의 계좌에 입금시켰음에도 회사 측은 단 한 번도 회사 계좌 입출금 내역을 확인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이씨는 회계 장부에서 자신이 빼돌린 금액을 미수금 내역으로 위장하는 단순한 수법으로도 횡령 사실을 쉽게 숨길 수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D유통과 이씨의 진술을 확보한 경찰은 일단 이씨가 7년여간 회사 경리 업무를 맡아왔고, 임직원들로부터 평판도 좋았기 때문에 회사 간부들이 이씨에게 별다른 의심을 갖지 않았던 것으로 보고 있다.
횡령 사실이 들통난 것은 ‘도둑이 제 발 저린’ 결과였다. 지난 3월8일 외부 공인 회계 업체 감사가 예정되자 돈을 빼돌린 사실이 발각될 것을 두려워한 이씨가 감사 나흘을 앞두고 경리 부장인 A씨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은 것.
이 과정에서 경리 책임자인 A부장도 자신이 책임 추궁당할 것을 우려한 나머지 이씨와 함께 장부 조작에 나섰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A부장은 이를 포기하고 곧바로 회사 대표에게 이씨의 횡령 사실을 털어놓았다고 경찰은 밝혔다.
D유통 대표가 서초경찰서에 이씨를 고소한 것은 지난 3월18일.
고소장 접수 후 곧바로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지난 3월24일 이씨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를 취한 뒤 4월9일 경찰에 자진 출두한 이씨를 구속했다.
경찰은 또 “남편이 상가를 지어 분양한 뒤 입주자로부터 돈을 받아 갚겠다며 회사 돈을 빼내도록 시켰다”는 이씨의 진술을 확보한 뒤 남편 유씨도 긴급 체포, 지난 4월10일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그러나 검찰은 유씨가 현재 아들을 보호하고 있는데다, 도주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해 일단 불구속 처리해 수사를 진행중이다.
경찰 조사 결과 남편 유씨는 실제 지난해 8월 경기 남양주의 스포츠센터 소유주에게 계약금 1억원을 주고 건물 소유권을 넘겨받았으며 이천과 여주, 광명 등 상가 신축을 구실로 부인에게 돈을 요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특수강도 등 전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유씨는 현재 W사 대표 이사로 등재돼 있다.
유씨는 경찰의 혐의 적용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상태. 유씨는 경찰 조사에서 “아내가 준 돈은 장모나 부인 친구가 준 것으로 알았다”며 부인과의 공모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이에 경찰은 이씨의 어머니가 남편과 이혼해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으며, 유씨가 말한 이씨의 친구도 이민을 간 사실에 비추어볼 때 유씨의 진술은 타당성이 없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특히 경찰은 ▲이씨가 경찰에 자진 출두하기 전날 남편 유씨가 먼저 경찰에 찾아왔고 ▲ 남편 모르게 범행을 저질렀다는 이씨가 남편이 공금 횡령을 지시했다고 말을 바꾸면서, 또 다시 4월14일 대질 심문에서 남편은 회사 공금 횡령에 대해서는 관련이 없다고 말하는 등 진술에 일관성이 없어 부부가 입을 맞추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지난 4월15일 사건을 넘겨받은 서울지검은 남편의 혐의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일단 유씨를 불구속 기소한 검찰은 부부의 공모 여부, 이씨의 계좌에서 유씨의 계좌로 들어온 공금의 사용 내역과 이씨가 진술한 ‘남편이 지정하는 계좌’에 대해 집중 수사를 벌이고 있다.
또 이씨의 명의로 된 반포 빌라 구입과정에서 입주금의 절반 이상을 은행과 개인에게서 빌리게 된 과정도 함께 조사중이다.
현재 이씨의 빌라는 입주금을 치를 무렵인 지난 1월30일과 2월3일 우리은행 센트럴 시티점(5억2천4백만원)과 그리고 이씨의 자택 위층에 사는 S씨(6천4백만원)에게 근저당권이 설정되어 있다.
지난 3월12일에는 D유통도 22억원의 근저당권을 설정했다. 특히 D유통은 이씨뿐만 아니라 남편 유씨와 유씨의 회사, 그리고 유씨의 친형까지 채무자로 등록시켰다.
결국 이씨가 빼돌린 22억원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이씨가 구입한 부동산 등은 은행 대출로 이뤄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실제로 이씨가 빼돌린 현금은 남편 혹은 다른 사람에게 건네졌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또 경찰 조사에서 회사측은 이씨가 3년 동안 22억원을 횡령했는데도, 이를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는 게 수사 경찰들의 지적이다. 실제 자금인출 등은 경리직원인 이씨가 마음대로 할 수 없으며 회사간부의 결제과정을 거쳐야 하는 게 일반회사의 관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사건은 수사 결과에 따라 이씨와 공모한 더 많은 관련자가 나올 개연성이 높다는 게 경찰 주변의 관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