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01년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에 출석한 이용호씨. | ||
지난 연말 서울중앙지검의 법조비리 수사를 통해 옥중에서 ‘집사 변호사’를 고용한 사실이 밝혀져 오랜만에 신문지상에 ‘명함’을 내민 이씨는 올초 경찰이 수사한 건설업체 ㈜대호의 허위 유상증자 및 어음사기 사건에 연루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다시 세인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이어 3월에는 법원으로부터 한때 자신이 대표이사로 있던 (주)삼애인더스에서 횡령한 자금 중 60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고, 지난 20일에는 한나라당 이규택 의원이 법원에서 ‘이용호 게이트’에 노무현 대통령이 관련됐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의원직 상실에 해당하는 2백5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으면서 또한번 이름을 날렸다.
이런 와중에 이씨는 최근 검찰에 “거액을 사기당했다”며 고소장을 제출한 사실이 드러나 ‘뉴스 메이커’로서의 진가를 유감 없이 발휘하고 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당대 최고의 경제사범’ ‘기업사냥의 귀재’ 등으로 불리는 이씨가 ‘사기 피해’를 호소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서울구치소에서 수형생활을 하고 있는 이씨는 얼마 전 서울중앙지검에 “ㅅ사 대표 김아무개씨(44)가 시가 70억원 상당의 주식을 대출담보 명목으로 받은 뒤 가로챘다”며 김씨를 사기 등 혐의로 고소했다.
이씨의 고소장에 따르면, 평소 알고 지내던 김씨가 거액 대출을 미끼로 구치소에 수감중인 이씨에게 접근한 것은 지난해 6월. 이씨가 ‘옥중 경영’을 통해 기업 인수 등을 추진하느라 한창 자금난에 시달리던 시점이었다.
이씨는 “김씨는 나를 면회 온 자리에서 제주도 소재 모 상호저축은행을 인수한 것처럼 속인 뒤 내 주식을 담보로 사업자금을 대출해주겠다고 제의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이씨는 우선 자신 소유의 L사 주식 1백70만 주(시가 30억원 상당)를 대출 담보 명목으로 제공했는데, 김씨는 몰래 주식을 팔아치운 뒤 주식매각 대금 중 일부인 22억원을 대출금이라며 이씨에게 건넸다는 것.
김씨는 같은 달 말 다시 이씨를 면회 간 자리에서 “싼 이자로 돈을 더 빌려주겠다”고 했고, 이씨는 자신이 실질적인 대표를 맡고 있는 구조조정전문회사 지엠홀딩스가 보유하고 있던 시가 30억원대의 L사 주식 30만 주와 S사 주식 17만 주를 건넸다는 게 이씨의 주장이다.
이씨는 “그러나 김씨는 대출금을 주지 않았고, 이에 항의하자 10억원 상당의 주식을 더 제공하면 40억원을 대출해주겠다고 했다”며 “그래서 7억8천만원 상당의 P사 주식 등을 추가로 제공했는데 김씨를 이를 모두 가로채고, 대출금은 주지 않고 있다”고 진술했다.
이 사건을 배당받은 서울중앙지검 조사부는 이씨와 김씨 등 사건 관계자들을 상대로 ▲L사 등의 주식을 주고받은 경위 ▲김씨의 상호저축은행 인수 여부 ▲주식매각 대금의 행방 등을 조사하고 있다.
김씨는 현재 “이씨로부터 넘겨받은 주식은 대출금 마련을 위해 제3자에게 모두 건넸는데 일이 꼬여 회수가 잘 안되고 있을 뿐”이라며 “개인적으로 이익을 취한 것은 없으며, 나도 일종의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수사 관계자는 “수사가 진행중인 사안이어서 내용을 공개할 수는 없지만 이씨 주장의 진위에 대해 확인작업을 벌이고 있는 만큼, 조만간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전했다.
물론 이씨가 사업과 관련해 ‘물’을 먹은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씨는 지난해 7월 지엠홀딩스를 앞세워 코스닥에 등록된 (주)대호의 인수합병을 추진하다 오히려 대호측의 ‘주식게임’에 휘말려 망신을 샀다.
당시 이씨는 지엠홀딩스를 통해 대호 주식 1백50만 주를 확보해, 11.66%의 지분율로 대호의 실질적 소유주인 유아무개 회장(57)의 지오텍드레인(11.55%)을 누르고 대주주로 올라섰다.
그러나 즉각 반격에 나선 유 회장 측은 8월 들어 유상증자와 액면분할, 감자를 실행하면서 지엠홀딩스의 지분율을 낮추기 시작했다. 최근 경찰 수사를 통해 주금납입 증명서를 위조한 것으로 밝혀져 파문을 일으킨 5천만 주 규모의 제3자배정방식 유상증자를 결의한 데 이어 액면가 5천원짜리 주식을 5백원으로 액면분할하면서 30대1 비율로 감자했다.
지엠홀딩스의 지분율은 0.92%로 급락했고, 지오텍드레인은 유상증자 때 주식을 배정 받아 다시 대주주로 올라섰다. 이씨는 결국 대호의 ‘주식게임’에 말려 경영권 확보에 실패한 것은 물론 시세차익도 챙기지 못하고 9월에 보유주식을 매각하고 말았다.
이 같은 이씨의 잇단 ‘실책’을 두고 검찰과 관련 업계는 이씨가 2001년 이후 계속된 검찰 수사와 재판, 그리고 수감생활로 심신이 지쳐 판단력이 흐려진 데다 외부 정보와 차단된 ‘옥중 경영’의 한계에서 기인한 것으로 분석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이씨가 이른바 ‘집사 변호사’를 통해 증권 단말기와 휴대폰을 몰래 넘겨받아 기업인수 등 ‘옥중 경영’을 해왔지만, 구치소의 높은 담 안에 갇힌 한계는 어쩔 수 없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이씨는 지난해 5~10월 접견을 전문으로 하는 ‘집사 변호사’인 김아무개 변호사를 2억여원에 고용한 뒤 김 변호사 접견 때마다 교도관들 몰래 건네준 증권조회용 단말기(PNS) 등을 이용해 D사 등 4개 업체의 주식을 매집해 경영권을 확보한 사실 등이 검찰 수사에서 드러난 바 있다.
이진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