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직속상관의 지속적인 가혹행위와 성추행에 시달리다 자살한 오 대위의 추모제가 정의당 김제남, 새정치 배재정·김상희 의원(왼쪽부터)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연합뉴스
오 대위의 순직은 인정됐지만 노 소령을 상대로 한 유족들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지난 3월 20일 2군단 보통군사법원은 1심 재판에서 가해자로 지목된 노 소령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재판에서 노 소령의 가혹행위와 욕설 및 성적 언행을 통한 모욕, 신체접촉을 통한 강제 추행 등의 혐의가 사실로 인정된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면죄부인 셈이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민간의 경우 성범죄 처벌이 엄벌주의로 흐르고 있다. 집행유예는 초범의 경우, 깊이 반성하고 있는 경우에 성립한다”며 “재판부가 노 소령의 혐의를 인정했고,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여전히 노 소령이 범죄사실을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집행유예는 납득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오 대위 고모부 박재일 씨(54)는 고모가 챙겨주는 약도 제대로 챙겨먹지 못할 정도로 야근에 몸을 혹사시켰던 오 대위를 생각하면 노 소령의 집행유예 판결이 허무하기만 하다. 박 씨는 “현재 항소한 상태다. 세월호 사건이 발생하고 그 아픔을 지켜보다 보니 우리가 너무 욕심을 부리나 하는 생각까지 들더라”며 “하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꼭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2심에서도 집행유예 판결이 나오면 대법원까지 상고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집행유예 판결보다 유족들을 힘들게 했던 것은 당시 육군 법무실장의 발언이었다. 지난 3월 24일 김흥석 육군 법무실장이 국방부 기자실을 찾아 “언론이 소설 같은 기사를 썼다”면서 “유서를 봐도, 일기를 봐도 성관계 요구는 없었다”는 발언을 한 것. 고모부 박 씨는 “당시 그 발언을 전해들은 오 대위 아버지와 어머니가 굉장히 힘들어 하셨다. 밥도 못 드실 정도였다”며 “마음을 다잡고 재판을 한 상태였는데 다시 상황이 안 좋아져 유족들 모두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오 대위 사건 관련 KBS 방송화면 캡처.
오 대위 사건 항소심은 당초 5월에 열릴 예정이었으나 세월호 참사로 인해 시기가 조정됐다. 항소심에서는 추후 오 대위의 차에서 발견된 블랙박스의 내용이 공소장에 포함될 가능성도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이미 노 소령의 강제추행 혐의가 인정된 상황에서 이를 공소장에 포함하는 것에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현재 오 대위의 유족은 국가유공자 지정 문제를 남겨두고 있다. 박 씨는 “순직처리 이후 차분히 다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라고 전했다.
이번 사건을 지켜본 박 씨는 “오 대위의 경우 일기나 메시지 등 증거를 많이 남겨 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판에 어려움을 겪었다”며 “우리도 이렇게 힘든데 군대 내 강제추행을 당한 사람들 중 증거를 안 남긴 피해자는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
군대 내 성폭력 실태 기무사 간부가 후배 부인과… 2012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여군 86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여군 인권상황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1년간 직접 성희롱 피해를 경험했거나 주변 여군이 피해를 겪는 걸 알고 있다는 답변이 50% 이상을 기록했다. 일각에서는 전체 여군 수를 감안하면 연간 수천 건의 여군 성희롱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최근에는 현역 군 고위간부가 잇따라 성희롱과 성추행에 연루돼 파문을 낳기도 했다. 지난해 7월 육군 사령부 A 대령이 여성 군무원과 부사관에게 수차례 성희롱을 한 의혹이 제기됐다. 군 당국은 조사를 벌여 A 대령에게 ‘전역조치’라는 중징계를 내리게 된다. 기무사령부 영관급 간부들이 성 군기를 위반한 사례도 4건이나 적발된 바 있다. 이들은 후배 부인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거나 내연녀를 폭행한 혐의 등으로 보직해임 또는 원대복귀 조치를 받기도 했다. 특히 군 내부 비리를 감찰해야 할 기무사령부 간부들이 저지른 추문이기에 그 파장은 만만치 않았다. 군 인재를 양성하는 사관학교에서도 성폭력은 종종 발생하기도 한다. 해군사관학교 출신의 B 씨는 한 언론 인터뷰를 통해 “생도 시절 20살 가까이 차이 나는 중령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해당 중령이 차 안에서 강제로 키스를 하고 몸을 만지는 등 성추행을 벌였다는 것. 특히 B 씨는 사관학교 교수에게 어렵게 사실을 털어놓고 중령으로부터 진술서까지 받았지만 이후에 윗선의 압력으로 인해 진술서를 찢을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육군사관학교에서 발생한 ‘여생도 성폭행 사건’도 파장이 만만치 않았다. 지난해 5월 육군사관학교 ‘생도의 날’ 기간 때 음주를 한 뒤 생활관으로 복귀한 2학년 여생도 C 씨를 4학년 정 아무개 생도가 자신의 방으로 데리고 가 성폭행한 것이다. 이는 정 생도와 C 씨가 사라진 것을 뒤늦게 알아차린 동료들이 정 생도의 방을 찾아가 곧바로 발각됐다. 하지만 육사 측은 사건 발생 뒤 일주일이 지나도록 이를 쉬쉬했고, 당시 성폭행이 아니라 성 군기 위반으로 구속해 사건 축소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이와 같은 군대 성추행, 성폭행 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남에 따라 군대 내 예방 시스템을 정착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도 일고 있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김광진 민주당 위원은 “성폭력이나 양성평등 교육의 경우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교육이 수반돼야 하지만 현재 이를 위한 교육 시스템이 없는 실정”이라며 “현역 군 생활 2년과 예비군 6년, 총 8년의 기간 동안 지속적인 교육을 받도록 제도화한다면 성 군기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