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년의 날 대학교가 밀집한 서울 신촌역 인근 모텔 밀집 골목으로 한 커플이 지나가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꽃보다 예쁠 때지. 보기 좋아.”
상인들도 젊음으로 반짝거리는 학생들을 보며 연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오후 5시가 지나자 대학가에 장미를 든 사람들이 점차 뜸해지기 시작했다. 아직 해가 저물지 않았음에도 이른 시간부터 술집으로 향하는 젊은이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홍대 놀이터 인근의 한 술집 종업원은 “원래 월요일엔 한산한 편인데 오늘은 성년의 날인 만큼 신입생들이나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 젊은 사람들이 일찍부터 온 것 같다. 특히 성년의 날을 맞은 대학생을 대상으로 이벤트를 하는데 테이블 대부분 서비스 안주가 나간 상태다. 모든 학생들이 그런 건 아니겠지만 여전히 많은 학생들이 밤새 술 마시고 놀면서 성년의 날을 즐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술집은 그렇다 치고 평일에 비해 유독 붐비는 곳은 바로 모텔이었다. 오후 6시 대학생들이 많이 찾는다는 홍대의 한 모텔 앞을 찾아가보니 성년의 날을 맞은 듯 장미꽃을 들고 모텔을 찾는 커플들을 너무 쉽게(?) 볼 수 있었다. 해당 모텔 종업원은 “이 주변에는 모텔이 많은 편이 아니라 원래 성년의 날이면 방이 풀가동된다. 지난해에는 금요일부터 연휴라 그런지 성년의 날 전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올해는 연휴도 아니고 세월호 사건도 있고 해서 잠잠할 줄 알았는데 그래도 생각했던 것보단 손님이 많다”며 “주중인 데다 대실(시간제)은 값이 싸니 어린 학생들도 부담 없이 오는 것 같다. 처음 모텔에 온 애들은 긴장하는 게 눈에 보여 나이를 가늠할 수 있다. 미리 연락해보고 오는 애들은 백발백중 성년의 날을 맞은 학생들”이라고 말했다. 실제 인터뷰를 하는 도중에도 ‘빈방이 있느냐’는 문의전화가 수차례 걸려왔다.
홍대 클럽 인근의 한 호텔 관계자는 “세월호 사건 이후 클럽이나 모텔을 찾는 커플들이 좀 뜸했는데 성년의 날을 기점으로 다시 활기를 찾는 모습이다. 물론 예년보다는 차분한 분위기인 건 사실이다”며 “우리는 주말에 전투를 치렀다. 성년의 날 전야제로 주변 클럽에서 각종 행사를 진행했는데 겨우 20살짜리 남녀 수백 명이 모여 불야성을 이뤘다. 말을 들어보니 포르노를 연상시키는 야한 이벤트들도 많았다는데 그러면서 친해진 애들이 호텔로 많이 왔다. 아직 앳된 얼굴이던데 짙은 화장에 짧은 치마를 입고 술에 취해 호텔로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좀 당혹스럽기도 했다”고 말했다.
성년의 날을 하루 앞둔 주말 대학가 클럽은 젊은 남녀들로 발 디딜 틈 없었다. 일요신문 DB
이윽고 해가 저물고 어둠이 내리자 모텔을 찾는 커플들은 더욱 많아졌다. 특히 모텔이 밀집해 있는 신촌역 뒷골목은 쉴 새 없이 차량이 몰려들었다. 오후 8시가 지나자 시설 좋기로 소문난 모텔 주차장은 순식간에 빽빽하게 채워졌다. 전반적으로 지난해보다는 손님이 줄었다고는 하나 최신 시설을 갖춘 모텔들은 예외였다. 기자가 직접 인터넷 상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모텔 5곳을 찾아가보니 이미 만실이거나 빈방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뒤늦게 인기 모텔을 찾은 한 커플은 만실이라 다시 길거리로 나와야만 했다. 남자는 당황했는지 주변의 모텔을 들락날락 거리며 빈방을 찾아 헤맸고 그 사이 여자친구는 어색하게 길거리에서 서서 애꿎은 장미꽃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기자가 여자친구와 인터뷰를 시도하려 했을 때 남자친구가 모텔에서 나와 데리고 가는 바람에 놓치고 말았다.
신촌의 한 모텔 청소 아주머니는 “오늘 같은 날은 바빠서 제대로 청소도 못한다. 다른 곳은 어떨지 몰라도 여긴 여자애들이 좋아할 분위기로 시설을 잘 해놔서 성년의 날이면 초저녁부터 방이 없다”고 말했다. 기자가 “성년의 날만의 특징이 있느냐”고 묻자 “첫 경험 흔적을 남긴 애들도 평소보다 많고 얼굴만 봐도 어린 티가 난다. 술에 취해 제대로 몸도 못 가누는 애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도 있지만 자기네들 말처럼 이제 어른인데 뭘 어떡하겠느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아주머니의 한숨소리는 모텔로 들어가는 커플들의 웃음소리에 이내 묻히고 말았다. 누가 보든 말든 거리낌이 없었다. 그들에게 성년의 날은 ‘첫 경험’을 선물해주는 날이란 인식이 자리 잡힌 듯 보였다. 이에 기자가 장미꽃을 들고 있는 대학생들에게 직접 찾아가 “성년의 날 모텔에 가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여대생 이 아무개 씨(20)는 “이제 어른인데 책임을 질 수 있다면 모텔에 가는 것은 문제될 게 없다고 본다. 남자친구가 있는 애들은 오늘만큼은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이미 끝까지 진도를 뺀 친구들은 당연히 모텔에 가지 않겠는가. 성년의 날을 맞아 일부러 애인을 만드는 애들도 있다”고 당당하게 대답했다.
남학생들의 대답은 더욱 직설적이고 대담했다. 임 아무개 씨(21)는 “꼭 섹스를 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분위기가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주변에 숙박시설을 알아두긴 한다. 사정이 안 좋으면 자취방 근처에서 놀기도 하고. 술에 취해 얼떨결에 모텔 가는 경우도 있으니까 다들 대비를 하는 거다. 벌써 주말에 클럽에서 원나잇에 성공한 애들도 있다. 아무래도 성년의 날을 맞은 애들은 성 경험이 없거나 적은 편이니 클럽에서 인기가 많았다”고 말했다.
곁에 있던 이 아무개 씨(21)도 “친한 여자애들이랑 얘기를 하다가 성년의 날 남자친구가 모텔이 아닌 호텔에 데려가면 허락해줄지도 모르겠다는 말까지 들었다. 방이 없을까봐 대낮부터 모텔에 간 친구 커플도 있다. 여자들은 몰라도 남자애들끼리는 서로 방이 있는지 없는지 정보를 주고받기도 한다. 애인이 없거나 첫 경험조차 없는 남자애들은 총각 딱지를 떼야 한다며 성매매 업소에 데려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5월 19일 성년의 날, 기자가 오후 3시 경부터 해질 때까지 훑고 다닌 신촌과 홍대 거리는 1994~1995년생들의 뜨거운 ‘성인식’ 열기로 후끈 달아오르고 있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성년의 날 역사 고려시대 이전부터 있었다 우리 전통 4대 관례 중 하나이기도 한 성년의 날은 고려시대 이전부터 남자는 관을 쓰고 여자는 머리에 쪽을 찌고 비녀를 꽂는 의식을 통해 공식적으로 성인이 됐음을 기념했다. 고려 이후 조선시대에는 중류 이상의 가정에서는 보편화된 제도였으나 20세기 전후 개화사조 이후 서서히 사라졌다. 1973년에서야 성인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일깨워 주고 성년이 됐음을 축하한다는 취지로 성년의 날이 제정돼 이듬해까지 4월 20일에 성년의 날 기념행사를 열었다. 이후 1975년부터는 ‘청소년의 달’인 5월에 맞추어 날짜를 5월 6일로 바꾼 뒤 1984년부터 현재와 같은 5월 셋째 월요일에 성년의 날을 기념하고 있다. 이날은 그 해에 만 19세가 되는 성년을 각 직장 및 기관 단위별로 한자리에 모아 기관장의 훈화와 모범성년에 대한 표창 등이 이뤄지며 청소년들을 위한 범국민적인 행사가 개최된다. 우리나라 전통적인 성년례는 성균관 등 일부에서 전통방식으로 행해지고 있다. [박] |
성년의 날 잊지 못할 추억 ‘여친 생긴다더라’ 연못에 풍덩 끝없는 축하인사에 행복한 성년의 날을 보낸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무슨 날인지도 모른 채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를 보낸 이들도 있을 터. 수년 전 성년의 날을 보낸 이들에게 그날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를 물어봤다. 역시나 친구들과 함께 밤새 술을 마시며 허무하게 보냈다는 사람들이 가장 많았는데 독특한 추억을 가진 이들도 적지 않았다. 학창시절 자타공인 모범생이었던 김경민 씨(28)에게 성년의 날은 처음으로 일탈의 쾌락(?)을 맛본 날로 기억된다. 경민 씨는 “대학 입학 후에도 수업만 마치면 곧장 집에 들어가고 술자리도 참석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성년의 날이란 소릴 듣곤 갑자기 내 인생이 너무 심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용기에선지 땡땡이를 치고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클럽까지 입성했다. 밤새 술 마시고 외박까지 했는데 부모님이 처음에는 어이없어 하시다가 나중엔 아들이 놀 줄도 안다며 좋아하셔서 한참을 웃었었다. 그런데 늦게 배운 도둑질이 더 무섭다고 이후 학점이 곤두박질쳐 4학년 때 꽤나 고생을 했다”며 멋쩍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여자친구를 향한 간절한 마음으로 학교 연못에 뛰어는 사람도 무려 3명이나 있었다. 강태훈 씨(27)는 “학교 연못 가운데 있는 동상에 올라가면 애인이 생긴다는 속설이 있었다. 성년의 날을 맞아 솔로 친구들끼리 내기를 해 진 사람이 빠지기로 했는데 결국 지고 말았다. 친구들에 의해 내동댕이쳐졌는데 물도 차갑고 냄새는 어찌나 나던지. 그날 버스도 못타고 2시간 동안 걸어서 집에 갔다. 그 뒤로 3년간 애인이 안 생겨 더 억울했었다”면서도 “고생은 했지만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됐다”고 말했다. 축하 대신 끔찍한 추억을 강제로 선물 받은 이도 있다. 군대에서 성년의 날을 보낸 박성민 씨(26)는 “입대하고 4개월이 지날 무렵 성년의 날을 맞았다. 선임들의 짧은 축하 뒤에는 끔찍한 괴롭힘이 기다리고 있었다. 성년의 날이니 가수 박지윤의 노래 ‘성인식’에 맞춰 춤을 추라는 것 아닌가. 나중엔 바지도 벗겨 모포로 치마까지 만들어줬다. 다신 기억하기 싫은 성년의 날”이었다며 몸서리를 쳤다. 최지영 씨(여·25)는 성년의 날을 눈물바람으로 보냈다. 물론 기쁨의 눈물이다. 지영 씨는 “맞벌이를 하느라 늘 바쁘신 부모님이었기에 축하를 바라지도 않았다. 별 기대 없이 평소처럼 수업을 마치고 집에 들어갔는데 케이크와 꽃다발이 놓여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엄청 놀랐는데 엄마가 꼭 안아주며 축하인사를 해줬고 아빠도 사랑한다며 날 안아줬다. 내 기억 속 부모님과의 첫 포옹이었다. 정말 감사하고 행복해서 펑펑 울었다”고 말했다. [박] |
‘성년의 날’ 선물 풍속도 비싼 선물엔 ‘꿍꿍이’가… 전통적으로 성년의 날에는 장미와 향수를 선물한다. 장미는 20년 동안 아름답게 자란 것에 대한 축하와 앞으로의 열정 가득한 삶을 보내라는 의미이며 향수는 오랫동안 기억해달라는 뜻을 담고 있다. 만약 연인이 있다면 스무 살의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는 키스까지 더해져 성년의 날에 받아야 할 ‘선물 3종 세트’가 완성된다. 특히 연인들 사이에서는 비싼 선물에 또 다른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연하의 여자친구를 사귀는 정 아무개 씨(26)는 “말은 안 하지만 은근히 기대를 하는 모습이었다. 평소 갖고 싶다 말하던 20만 원대의 목걸이를 준비했는데 여자친구의 반응이 좋았다. 솔직히 남자들이 비싼 선물을 준비하는 것엔 축하 말고도 다른 뜻도 있다”며 “특히 성관계를 하지 않은 커플들은 이날을 디데이(D-day)라 생각한다. 선물 만족도에 따라 성공 여부가 결정되니 무리를 해서라도 비싼 걸 사게 된다”고 말했다. 직접 선물을 주고받는 대신 스마트폰으로 바로 ‘쏴 주는’ 것도 새로운 트렌드다. 메신저 ‘카카오톡’ 등을 이용해 떨어져 지내는 가족이나 만날 수 없는 친구들에게 쉽게 선물을 해줄 수 있어 인기인 것. 성년의 날을 맞은 최 아무개 씨(여·20)는 “작은 향수나 커피 한 잔 같은 선물은 얼굴을 보고 주고받기엔 좀 민망하다. 멀리 사는 친구들한테 일일이 찾아갈 수도 없고. 근데 메신저로 선물을 보내면 싸게 기분을 낼 수 있어 좋다. 요즘 친구들끼리는 서로 원하는 걸 말해주고 선물을 주고받는다”고 말했다. 한편 특별한 경험을 통해 성년이 된 자신에게 스스로 선물을 주는 이들도 많다. 생애 첫 봉사활동을 하거나 기부, 헌혈, 마라톤 완주 등 평생 기억에 남을 만한 추억을 만드는 것. 또한 의미 있는 타투를 새기는 것도 독특하고 멋진 선물로 손꼽힌다. [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