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논란이 증폭되고 있는 가운데 전두환 전 대통령도 지난 82년 현재의 계룡대 자리로 행정수도나 청와대 이전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 ||
<일요신문>의 확인 취재 결과 실제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의해 강력히 추진되었던 ‘백지계획’이 전두환 전 대통령 집권 후에도 상당히 심도 있게 검토되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일명 ‘620사업’으로 알려진 이 프로젝트는 당시 군 장성 출신의 장관이 총 책임을 맡고, 청와대 비서진들이 참여했다. 이들은 과거 백지계획 참여 관계자와 지관들까지 대동한 채 충남의 대전과 논산 공주 등지를 헬기까지 동원해서 샅샅이 훑고 다닌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1월13일 청와대의 전직 대통령 초청 만찬 자리. 노무현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들과 화기애애한 덕담을 주고받던 와중에 난데없이 전 전 대통령에게 “(재임 당시) 계룡대를 지으면서 행정수도 이전도 고려했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전 전 대통령은 “물론이다. 그때 다 준비됐다”고 선뜻 답했다.
이 ‘뜬금없는’ 질문과 대답은 당시 화제였던 FTA 비준 동의안 등에 묻혔지만, 상당히 의미심장한 대목이었다. 박 전 대통령에 의해 추진되었다가 5공 정권 출범과 함께 백지화된 것으로 알려졌던 행정수도 이전 계획이 실제로는 5공 정권에서도 계속 심도있게 추진됐다는 점을 국정 책임자가 공식으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일요신문>은 5공 정권에서 추진되었던 ‘계룡대 건설 계획’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 시절 ‘백지계획’의 실무팀장이었던 김병린 행정수도포럼 회장이 계룡대 터의 현장 답사에서부터 설계 및 건설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 참여한 사실을 확인했다. 김 회장은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1982년 청와대에서 나를 불러 당시 청와대 수석비서관들과 함께 현장 작업을 했으며, 계룡대 건설에 직접 참여했다”고 밝혔다.
김 회장은 박 정권 당시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으로서 사실상 행정수도 이전의 이론적 틀을 제시했던 당사자. 그는 75년 박 전 대통령의 직접 호출을 받고 중화학추진기획단 작업팀장으로 ‘백지계획’ 사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이 기획단의 단장은 오원철 경제 2수석이 맡았고, 실질적인 실무 책임자 격인 부단장은 박봉환 수도권인구정책조정실장이 맡았다. 백지계획의 핵심 3인방이었던 셈이다. 김 회장은 “당시 박 실장과 함께 둘이서 서린호텔에 방을 잡고 거의 모든 실무 작업을 다 했다”고 밝혔다.
▲ 지난 2002년 12월30일 계룡대를 방문한 노무현 당시 대통령당선자. | ||
─박 전 대통령이 사망하고 5공 정권이 들어서면서 사실상 백지계획은 전면 취소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렇지 않다. 물론 5공 정권이 들어서면서 추진단은 해체의 수순을 밟았고, 우리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그런데 82년경 당시 김재익 경제수석이 급하게 나를 찾았다. 백지계획에서 행정수도로 계획됐던 현장을 직접 가보자는 것이었다. 내가 대통령을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수석비서진들이 직접 움직였던 만큼 당연히 대통령의 지시였을 것이다. 헬기까지 내줬으니까. 김종구 비서관과 함께 셋이서 헬기를 타고 현장을 공중 답사하기도 하고, 이후에는 지관을 불러 함께 풍수지리학적인 측면까지 꼼꼼히 따지기도 했다.
─당시 답사는 무슨 목적이었나.
▲김 수석과 김 비서관은 “백지계획에서 청와대 터로 잡았던 곳이 어디인가”라고 물었다. 그 현장을 보여주자 “터가 생각보다 별로 좋지 않다”며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이후 그들은 지관을 대동해서 “계룡산 근처가 좋다고 하는데, 그곳은 행정수도나 청와대를 건설하기에 어떤가”라고 계속 줄기차게 물었던 기억이 난다
─청와대 건설을 물었다면 결국 행정수도 이전 수준이 아닌가.
▲당시에는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한 번도 정확한 문건이나 계획을 내게 알려준 바가 없기 때문에 확실하게 단정해서 말할 순 없다.
─계룡산 근처라면 지금의 계룡대가 있는 그 위치를 말하는가
▲그렇다. 당시 김 수석이 지금의 계룡대 위치를 자꾸 언급하기에 내가 백지계획 당시의 비밀 얘기를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얘기도 여기 처음 밝히는 것이지만, 사실 박 실장과 백지계획 작업을 할 당시 논산 또는 장기면을 모델로 해서 청와대는 물론 국회와 법원 이전까지 포함한 모든 계획을 다 정했다.
하지만 군사령부 등 군사시설은 그 계획에 포함시킬 수 없었다. 군의 특성상 보안이 철저하게 유지되어야 하는 까닭이다. 그래서 박 실장과 의논 끝에 지금의 계룡대 위치를 3군 사령부로 정하기로 하고, 다만 백지계획에는 포함시키지 않고 비망록에만 적어두었다. 실제 계룡산에는 크게 3개의 골짜기가 있는데, 그곳에 육·해·공군 사령부가 각각 들어가는 계획이었다. 그래서 그 사실은 나와 박 실장 등 당시 핵심 관계자 몇 사람만의 비밀이었다.
─그렇다면 전 전 대통령은 백지계획의 당초 계획대로 지금의 계룡대를 건설한 것이 아닌가.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됐다. 이 또한 당시로선 군사 비밀이었지만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관까지 동행시킨, 치밀한 답사를 거쳐 그곳에 계룡대를 건설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답사 이후 김 수석에게 들었다. 이른바 ‘620사업’이라고 했다. (입안한 날짜인지) 정확한 그 숫자의 뜻은 잘 모르겠으나, 당시 그렇게 불렀다.
김 수석이 내게 말하기를 “민간인 중에서는 김 회장만 알고 있고, 군의 성격상 이 일을 공개할 수도 없으니 설계와 건설 사업은 김 회장 회사에서 직접 맡아줘야 겠다”고 했다. 그래서 당시 그 사업을 84년부터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우선 비밀리에 토지 소유자들을 찾아다녔는데 보상 문제로만 한 2년 정도 고생한 기억이 있다.
▲육군 장성 출신의 김아무개 장관이었다. 지금은 고인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 주택공사에서 예산을 담당했다. 그리고 공사 책임자는 모 차관이었고, 현역 준장이 현장에서 우리와 함께했다.
─풍수를 담당했던 지관은 기억하는가.
▲현장 답사를 갈 때마다 차로 일일이 데리러 갔기 때문에 사무실 위치는 기억한다. 당시 을지로 3가였는데, 이름은 확실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 지관은 지금의 계룡산 일대를 적극 추천했다. 듣기로는 한 명만 간 것은 아닌 것 같다.
─당시 계룡대가 사실상은 군사 시설이 아닌 행정수도 청사용이었다는 주장도 있는데.
▲내가 알기로는 그렇지 않다. 왜냐면 당시 건설을 미국 국방부 펜타곤의 5각형 모양을 본떠서 8각형 모양으로 했기 때문이다. 연병장도 만들었고. 청사용이었다면 그렇게 설계했을 까닭이 있겠는가. 그리고 그곳은 군 사령부의 시설이 들어서기에는 최적이지만 청와대나 정부청사가 들어서기에는 적절치 않다고 내가 여러 차례 조언했다.
─백지계획의 단장이었던 오원철 전 수석은 전 전 대통령이 이 계획을 사실상 폐기처리한 것으로 밝히고 있는데.
▲당시 백지계획 사업을 오 수석과 박 실장 두 사람이 주도하다 보니 업무와 관련된 대립은 좀 있었다. 오 수석은 공주시 장기 지구를 적극 추천했으나, 박 실장과 나는 논산 등지가 더 적합하다는 입장이었다. 현재 장기 지구가 백지계획의 공식 행정수도 입지로 알려져 있으나 이는 잘못된 것이다. 당시 박 대통령은 78년 카터 미 대통령의 미군 철수 문제가 불거지면서 행정수도 이전 문제를 일시 보류했고, 곧이어 10·26 사태가 터졌다.
5공 정권이 들어서면서 오 수석은 부정축재자로 몰려 ‘팽’당했으나, 박 실장은 전 전 대통령의 ‘경제 가정교사’로 불리는 등 중용되면서 명암이 엇갈렸다. 백지계획 사업들이 이어질 수 있었던 것 역시 박 실장이 전 전 대통령에게 건의했기 때문으로 알고 있다.
당시 김 회장과 함께 620사업에 참여했거나 관여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인사들은 공교롭게도 현재 모두 고인이 되었다. 하지만 전 전 대통령의 지시로 5공 정권에서 추진된 청남대 건설을 비롯, 대전 정부청사, 청주국제공항, 독립기념관 등의 건설이 모두 백지계획의 연장선상이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한편 장영달 의원은 전화통화에서 “지금의 계룡대가 당초 정부청사용이었다는 사실은 군 고위관계자들로부터 들었으며, 군사령부 내에서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계룡대에는 국무회의를 위한 시설도 다 갖춰져 있으며, 군내에서도 계룡대에 정부청사를 옮겨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고 덧붙였다.
백지계획 당시 입지선정 책임자였던 박병주 전 홍익대 교수는 “백지계획의 최종 선정지가 장기 지구라는 것은 잘못 알려진 사실이며, 오히려 당시 평가에서는 논산이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밝혔다.
또한 노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인 지난 2003년 1월께 건설교통부와 국토연구원이 충청권 행정수도 이전 후보지로 논산 계룡대와 대전 서남부지역을 묶어 추천한 적이 있는 것으로 당시 지역 언론에서 보도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