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규 신임 법무장관을 맞이한 송광수 검찰총장이 정치권의 공격을 어떻게 막아낼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 ||
송광수 총장과 검찰 개혁·인사 문제 등으로 자주 대립했던 강 장관이 전격 경질됐지만 송 총장의 입장은 앞으로도 편하지만은 않으리라는 전망이 적지 않다. 일각에서는 오히려 검찰을 잘 아는 김 장관의 취임으로 송 총장이 ‘사면초가’에 놓이는 게 아니냐는 섣부른 관측도 나온다.
우선 김 장관은, 사시23회로 판사 출신인 강 전 장관과 달리 검찰 출신이며 사시 기수로도 송 총장(13회)의 한 기수 선배다. 단순히 연공서열만이 높은 게 아니다. 송 총장은 2001년 법무부 검찰국장으로 있으며 법무차관이던 신임 장관을 모셨다. 1988년에도 법무부에서 김 장관과 송 총장은 보호과장과 검찰4과장을 각각 맡아 한솥밥을 먹기도 했다.
지근거리에서 장관을 보좌하고 동료로 일한 경험이 있는 송 총장은 김 장관을 “합리적이고 후배들의 존경을 많이 받았던 분”이라며 후한 점수를 주면서 “제도개선에 관심이 무척 많으시다”라고 평가했다. 검찰 안팎에서는 “검찰을 잘 아는 사람이 장관으로 와서 그동안 외부에 비쳐졌던 식의 검찰과 법무부의 갈등은 이제는 없을 것”이라는 낙관론이 돌고 있다. 검찰조직을 추스르면서 개혁을 추진할 적임자라는 호평도 나온다.
주목할 것은 신임 장관 역시 강 전 장관만큼이나 ‘개혁의 전도사’를 자처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김 장관은 지난달 29일 취임식에서 “법무 검찰 개혁작업은 중단 없이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며 “개혁작업은 이제부터가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장관은 “이제부터 지난 개혁작업의 성과와 문제점을 철저히 분석하고 미래지향적이고 진취적인 자세로 열린 대화의 장을 마련해 각계의 의견을 수렴함으로써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합리적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내용만 놓고 보면 강 전 장관의 취임사보다 더 강한 개혁의지가 담겨져 있다는 평가다.
거기다 김 장관은 8월3일 법무부 각 실·국으로부터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장관 직속 개혁기획단장을 법무실장 다음으로 불렀다. 원래 기획단장은 실·국장 보고가 끝난 다음인 8월6일로 일정이 잡혀 있었다. 단장은 검사장급인 실·국장보다 서열이 낮기 때문이다. 특히 김 장관은 업무보고 이후에도 하루에도 여러 차례 기획단장을 불러 검찰 개혁안을 직접 챙기고 있다.
기획단은 그동안 검찰을 개혁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그 아이디어라는 게 경찰의 수사권 독립처럼 검찰 입장에서 보면 파격적이기도 하다. 기획단은 대검 중수부 폐지안도 내놓아 지난 6월 송광수 검찰총장의 ‘내 목을 쳐라’라는 격한 반발을 불러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대목은 또 하나의 날카로운 ‘칼날’에 비하면 별 것 아니다. 김 장관은 취임사에서 ‘합리적인 검찰권 행사’를 강조했다. 불법 대선자금 수사 같은 부정부패 수사가 검찰의 기본임무라고 할 수 있지만 수사가 인간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범죄에는 추상같되 인간에 대한 사랑과 자비의 마음가짐만은 항상 잃지 말아야 한다고 밝힌 것.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교회 장로인 김 장관의 성품이 드러난 것일까.
또 김 장관은 지금까지 검찰 수사가 지나치게 성과에만 집착한 나머지 ‘절차적 정의’를 소홀이 한 것은 아닌지, 소중히 다뤄져야 할 인간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던 것은 아닌지 겸허히 반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장관의 말을 뒤집어 보면 검찰이 대선자금 수사의 성과가 컸지만 잘못한 점도 분명히 있다는 일종의 질책이다. 일례로 정몽헌 현대상선 회장, 안상영 부산시장, 남상국 대우건설 사장이 검찰 수사 과정에서 자살했다. 또 김광태 광주시장, 조희욱 전 자민련 의원 등이 재판에서 줄줄이 무죄선고를 받았다.
거기에다 이인제 의원이 보석으로 풀려나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이 의원은 자신에게 2억5천만원을 줬다는 전 언론특보 김윤수씨가 배달사고를 내놓고 돈을 전달했다고 거짓진술 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의원측은 은행에 김씨 통장 거래내역에 대한 사실조회를 요구했고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이 의원측은 이런 이유로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 지난 3일 신임인사차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예방한 김승규 장관. 이종현 기자 | ||
물론 검찰은 돈을 전달했다는 김씨의 진술이 분명하고 이 사실을 이 의원에게 들었다는 또 다른 증인들이 있다며 반박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법원의 정치권 인사들에 대한 무죄 판결이 잇따르고 있어 긴장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 의원이 무죄를 선고받는다면 대검 중수부가 무리한 수사를 했다는 논란이 일 것이고 결국 ‘중수부 존폐론’이 급물살을 탈 가능성도 있다. 현재 분위기대로라면 한나라당과 심지어 여당인 열린우리당도 검찰을 공격할 게 확실시된다. 고비처(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에 기소권을 줘 ‘검찰 권력’이 약화되기를 내심 바라는 청와대도 이 상황을 수수방관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를 비롯해 한나라당 열린우리당 심지어 자민련까지도 대검 중수부에 혼쭐 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핵심 측근들을 비롯해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가 모두 검찰 수사를 받았고 김 전 총재는 재판까지 받았다. 따라서 정치권은 검찰권의 견제에 대해서만은 정파를 초월해 한목소리다.
정치권이 얼마나 검찰을 ‘무서워하는지’는 17대 국회 개원 후, 한나라당 박창달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열린우리당 의원이 나서서 막은 대목에서도 알 수 있다. 입으로 개혁을 떠들지만 속으론 검찰을 얼마나 의식하는지를 보여준 셈이다.
이 대목은 큰 과오 없이 검찰개혁을 지휘하던 강 장관이 전격 경질된 배경을 짐작케 한다. 청와대는 강 장관의 경질을 지난 6월 초 송 총장이 정치권을 겨냥해 ‘내 목을 쳐라’라고 말할 때 이미 결정하고 있었다는 후문이다. 다만 당시 강 장관을 경질한다면 청와대가 검찰에 밀렸다는 인상을 줄까봐 시기를 조절하고 있었다는 것. 그러다 조영길 국방장관이 NLL 보고 누락 사건으로 사의를 표하자 바로 강 장관을 동반 사퇴시켰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강 장관은 28일 오전까지 자신의 경질을 몰랐다.
청와대는 송 총장이 강 장관을 ‘무시’하고, 법무부-검찰 간의 공식채널에서 의견개진을 하지 않고 독자적인 채널을 통해 청와대에 메시지를 전하려 한 것 아니냐고 여기고 이 점을 못마땅하게 생각해왔다. 여기에는 대선자금 수사 때 대통령 측근까지 샅샅이 뒤진 검찰이 너무했다는 서운함도 포함돼 있다.
검찰 출신인 김 장관이 ‘완충’ 역할을 하겠지만 여권과 정치권의 분위기로 보아 ‘검찰 견제’는 계속될 것이고 이 경우 송 총장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송 총장은 이제 더 이상 “장관이 검찰을 너무 몰라서 이야기가 안 된다”고 말할 수 없게 됐다. 앞으로는 김 장관과 공식적인 채널을 통해 검찰의 개혁 수위를 조절해야 한다. 만약 여기에 반발할 경우 송 총장은 “역시 검찰은 반개혁적”이라는 비판의 화살을 홀로 맞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송 총장도 최근 김 장관이 ‘합리적 개혁’ 의사를 밝혔고 이 같은 자충수를 두진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송 총장으로 대표되는, ‘개혁’에 대한 검찰의 ‘반발’이 ‘찻잔속의 폭풍’으로 그치고 말 것이라는 또 다른 관측도 나온다. 일부에서는 이 대목에서 강 전 장관 경질의 배경을 두고 ‘청와대의 검찰장악론’이라는 시나리오를 제기하기도 한다.
반대로 일각에서는 검찰이 검찰개혁을 반발할 명분이 없어진 마당에 ‘유명무실’했던 법무부-검찰의 공식채널이 재가동돼 검찰개혁이 비로소 제 궤도에 오를 것이라는 낙관론도 고개를 든다. 청와대측도 검찰과 대립각을 세우는 것은 정권 운영 차원에서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뼈아픈 경험’을 토대로 법무부를 통해 검찰과의 관계개선을 꾀할 가능성도 있다.
이런 복잡한 상황 때문일까. 지난해 여름휴가를 3일만 다녀왔던 송 총장이 올해에는 지난 2일부터 8일까지 일주일간 고향인 마산에 다녀왔다. 이례적으로 긴 휴가 내내 아마도 송 총장은 ‘살가우면서도 엄한 시어머니’인 장관과의 관계를 어떻게 풀지 고민했을 지도 모른다.
박태수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