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6월 5일 중국 갑조 리그 6라운드. 광시(廣西)성 팀의 산둥(山東)성 팀의 주장전, 대국자는 이세돌 9단과 장웨이제 9단(23). 이 9단이 흑을 들었다.
미세한 종반, 명운이 반집에 걸렸다. 이미 승부는 종착역 플랫폼에 들어온 상황에서 중앙과 좌하귀에 반패 하나씩 남아 있을 뿐이었다. 하나씩 따내고 이으면 그걸로 끝. 그러나 두 사람은 따고 이어 끝내지를 않고 우변의 양패를 주고받으며 반패 랠리를 계속했다. 반패 둘과 양패, 그래서 4패가 되고 바둑은 276수에서 무승부가 되었다.
4패 빅. 남들은 평생에 한 번도 어렵다는 ‘4패 빅’을 이세돌 9단은 최근에만 벌써 두 번째다. 이 9단은 2012년 제17회 삼성화재배 32강전에서 구리 9단과 만나 백을 들고 싸우다가 163수에서 4패를 연출하면서 무승부를 기록했고, 재대결에서는 구리 9단이 흑을 들고 219수 만에 불계승을 거두었다.
이번에도 무승부로 판정된 바둑에서 각자 남은 시간을 갖고 재대결을 벌였는데, 장웨이제 9단이 백을 들고 260수만에 불계승을 거두었다.
#2. 6월 5일 대국 열흘 전, 5월 25일 중국 윈난(雲南)성의 이상향, 햇살 밝은 날이면 만년설의 칼날 같은 준봉이 너무 눈부셔 눈을 뜰 수 없는 해발 3400미터의 고원 샹그릴라에서 벌어진 ‘세기의 대결 - 이세돌 : 구리 10번기’의 제5국. 제4국까지 스코어는 2 대 2, 전반전의 분수령이었다.
이세돌 9단은 흑을 들고 초반부터 동에 번쩍, 서에 번쩍 국면을 능기의 난전으로 이끌어 포인트를 쌓아 나갔고, 막판에 구리 9단이 던진 사소한 ‘끝내기성’ 젖힘조차 용서하지 않고 맞받아쳐 승기를 잡았다. 그러나 국후 검토 결과는 실전의 흐름과는 달랐다. 달라도 크게 달랐다. 이 9단이 맞받아친 것은 과민반응이었고, 거기서 구리 9단이 조금 더 생각했더라면 오히려 이 9단이 벼랑으로 몰릴 뻔했다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9단은 백에게 통렬한 반격이 있었다는 사실을 끝까지 몰랐던 것 같고, 구리 9단은 잠시 후 깨달았던 것 같다. 깨달았기에 괴로웠을 것이고, 자책했을 것이다. 이후 구리 9단이 스스로 무너진 것은 그런 자책감에 평상심을 유지하기 어려웠던 탓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성룡 9단의 관전평이다.
이광구 객원기자
반집 승부 알고 빅 만들다니… <1도>가 이 9단의 두 번째 ‘4패 빅’ 바둑. 좌상귀 쪽 백1로 ‘온전한 집내기’는 끝났다. 남은 건 좌하귀 흑2의 젖힘과 여기서 생기는 반패뿐. <2도> 백1로 먹여치고 3으로 막았다. 흑4로 백1 자리에 잇고 백5로 따냈다. 흑이 상변 6으로 팻감을 쓰고 8로 자리에 되따내자, 백은 “지금 나하고 패싸움을?” 하면서 우변에서 9로 따낸다. 이쪽 백말은 양패로 잡혀 있는 돌. 그러나 양패여서, 흑이 가일수하지 않는 한, 팻감은 무한대다. 흑10으로 따내자…. <3도> 좌하귀 쪽 백1로 따냈고, 흑은 2로 중앙의 반패를 따냈다. 백은 다시 우변 3으로 돌아가 흑4를 응수시킨 후, 이번에는 백5로 중앙 자리 패를 따낸다. 이거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 이제 보니 4패인 것. 여기서 무승부가 선언되었다. 그런데 흑이 만약에…. <4도> 흑1로 여기를 또 따내면? 그런 다음 백이 A에 잇고 흑도 자리에 이어 종국이 되면? 이건 흑이 1집반을 이긴다는 것. 그러니 백은 A에 잇지를 않고, 우변 2로 따낼 것. 흑은 3에 따내야 하고, 백은 다시 에 두어 흑1의 돌을 따낸다. 이러면 무한반복이다. 그렇다면 흑이 무한반복을 피해, 즉 양패의 팻감 공장을 없애기 위해…. <5도> 흑1로 양패를 없애 버린다면? 백은 중앙 2 자리든 좌하귀 5 자리든 하나를 잇는다. 가령 2에 잇는다면 흑5부터 좌하귀 반패 하나가 남는다(흑5 전에 중앙 3을 선수한 것은 백의 팻감을 없애는 것). 흑이 이걸 이겨 이으면, 우변에서 1로 가일수해 한 집을 잃었어도, 반집을 이긴다(백8 14 20 26 32는 에 따냄, 흑11 17 23 29는 흑5 자리 따냄, 백28은 흑9 자리 이음). 그러나 백6부터의 패싸움 예상 진행이 보여주듯, 흑은 팻감이 부족하다. 백은 우하귀에 30 이후에도 백로 먹여치는 것, 다음에 다시 A로 모는 것, 두 개가 더 있다. 이러면 흑이 반집을 진다. 그래서 서로 물러설 수가 없었던 것. 대단한 사람들이다. 승부가 반집이라는 걸 안 것은 프로 고수로서 당연하다 하겠지만, 그 반집을 놓치지 않기 위해 4패 빅을 만들어 내다니. <6도>는 10번기의 5국, 중반이 무르익고 있다. 좌상귀 백1과 흑2를 교환한 다음, 검토실은 백A를 예상했으나 구리 9단은 별안간 손을 돌려 좌하귀에서 3으로 젖혔다. 그런데 그보다 더욱 놀란 것은 흑4로 콱 받은 수. 흑B로 물러서는 게 그리 큰 손해인가? 그런 정도도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불안한 상황인가? 그건 아닌데. 상변 백5로 갖다 붙인 것은 팻감 마련 작업. 그리고 백7로 몰았다. <7도> 흑1로 따냈다. 상변 백2는 팻감. 흑은 듣지 않고 다시 3으로 따낸다. 상변 백4에는 흑5로 받지 않을 수 없다. 백6으로 자리에 따낸다. 중앙 흑7은 팻감. 이번에는 백이 듣지 않고 상변으로 간다. 백8로 이어 흑9를 유도한 후 10으로 잇는다. 흑은 듣지 않고 11로 3에 되따낸 후 백12도 듣지 않고 흑13으로 패를 해소해 버린다. 백의 출혈이 엄청나다. 좌하귀가 거꾸로, 통으로 들어갔다. 백은 대가를 찾으러 상변 14-16에서 중앙 18로 황망히 움직이는데 검토실은 “흑A로 끊는 수도 남아 있어서…대세가 기운 것 같다. <6도> 흑4는 무리였다. 백은 <7도> 흑1 때가 기회였다”면서 “백2로는 여기를 맞끊을 것이 아니라 <8도> 백1을 결행하는 통렬한 반격이 있었음”을 보여 주었다. 흑2로 따내면 백3으로 먹여치는 자체 팻감이 결정타라는 것. 흑A로 따내면 백은 에 되따내고 만패불청. 흑B로 따내면 백C로 따내면서 역시 만패불청. 그걸로 좌변 흑 전체가 거덜거덜해지니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김성룡 9단의 관전평대로라면 “구리 9단은 이걸 나중에 발견했고, 자책했을 것”이며 “전열이 흔들렸을 것”이다. [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