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BS <야인시대>에서의 이정재(김영호 분) 재판 장면. | ||
그러나 이도 이제 모두 옛말이 되어버렸다. 조폭 문화도 급격히 변하고 있다. 이제 더이상 그들은 밤의 뒤편에 숨지 않는다. 조폭은 낮에 버젓이 ‘기업’ 활동을 한다. 검찰과 경찰 수사진도 인정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그들의 외형은 합법적인 기업인이다. 하지만 그들의 숨은 속성 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범죄의 뒤편에 그들은 여전히 숨어 있다. 수사 관계자들이 “깡패 양아치들은 조폭도 아니다. 정말 심각한 문제는 ‘귀족 조폭’”이라고 말할 정도로 그들은 철저히 베일에 가려진 채 교묘히 법망을 피해가고 있다.
동네 건달패의 ‘왕초’에서 조폭의 ‘보스’로, 그리고 오늘날 기업의 ‘회장님’으로, 조폭은 그렇게 변하고 있다. 조폭의 변화는 급격한데, 검경의 대응은 오히려 70년대 조폭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여전히 ‘강력부’와 ‘폭력계’가 조폭을 전담하고 있지만, 실상 이들의 요즘 범죄는 ‘금융조사부’나 ‘특수부’에 해당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
정치 권력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유착관계를 형성하며 시작했던 국내 조폭의 역사는 정권의 교체와 더불어 숱한 굴곡을 거치며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한때 조폭의 손에 쥐어졌던 생선회칼과 쇠파이프가 끔찍한 공포로 다가왔지만, 이제 그들은 직접 ‘연장’을 들지 않는다. 금융을 움직이는 데 연장이 필요없기 때문이다.
조폭들이 얼키고 설킨 크고 작은 사건은 숱하게 벌어졌다. 하지만 ‘조폭 문화’에 일대 변화를 가져온 대형 사건은 시대별로 정확하게 한두 건씩 터져나왔다. 그 사건의 여파를 통해 조폭은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이른바 ‘조폭문화를 변천시킨 5대 사건’을 통해 ‘진화’하는 조직폭력의 현실을 되짚어봤다.
1. 58년 충정로 도끼 사건과 60년 고대생 습격 사건
조직폭력의 세계에서 곧잘 등장하는 용어가 이른바 ‘3대 패밀리’다. 흔히 조양은·김태촌·이동재씨 등 호남 출신 주먹들을 가리켜 이렇게 부른다. 하지만 3대 패밀리의 원조는 50년대 이승만 정권에서부터 비롯되었다.
당시의 주먹세계는 서울 사대문 안을 중심으로 종로의 김두한, 명동의 이화룡, 동대문의 이정재로 크게 삼분되었다. 하지만 김두한씨는 54년 종로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정계에 진출, 사실상 주먹 활동을 접게 된다. 이후 주먹세계에선 이정재씨와 이화룡씨의 숙명의 대결이 뒤따른다.
당시의 주먹들은 ‘정치깡패’로 불릴 만큼, 정권과 유착관계가 심했다. 특히 이씨의 ‘동대문사단’은 자유당 정권의 호위병이었고, 행동대장 유지광씨가 만든 ‘삼우회’ 역시 자유당의 집권을 보좌하고자 만든 조직이었다.
반면 이북 출신인 이화룡씨는 야당인 민주당의 성향에 더 가까웠다. 엎치락뒤치락하던 이들 두 조직의 운명이 바뀐 것 역시 정치적 격랑과 함께였다. 58년의 ‘충정로 도끼사건’은 동대문사단의 독주를 가져왔다. 당시 이씨의 명동파가 동대문사단을 급습했으나, 이미 이를 눈치챈 유씨와 경찰측의 ‘함정’에 의해 충정로에서 대거 검거된다. 이 사건으로 명동파는 일망타진됐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명동파의 입장에서는 전화위복이 되기도 한다.
2년 뒤 이어진 4·18 고대생 피습 사건으로 동대문사단의 보스 이정재씨는 사형을 당한다. 이 사건의 여파로 결국 동대문사단은 완전히 몰락하게 되고, 간신히 목숨을 구한 유씨 역시 주먹계의 상징적인 인물로 뒤로 나앉게 된다. 그리고 충정로 도끼사건으로 수감중이어서 당시 군사 정권의 폭력배 소탕 작전 와중에도 화를 피할 수 있었던 명동파는 이화룡씨의 조직원이었던 육군 상사 출신 신상현씨를 내세워 다시 부활한다.
2. 75년 사보이호텔 습격사건과 76년 호남파 보스 오씨 린치 사건
70년대 중반 잇따라 벌어진 이 두 사건은 ‘조폭’이라는 용어를 본격적으로 세상에 등장시켰다. 동시에 조폭 문화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는데, 주먹과 각목 대신 생선회칼과 쇠파이프가 동원된 게 단적인 예다. 원로 주먹들이 얘기하는 낭만의 시대는 이를 계기로 완전히 퇴락했고 이권을 위해 칼부림을 서슴지 않는 유혈의 시대가 열렸다.
특히 사보이호텔 습격 사건은 서울의 주먹세계를 사실상 호남세력들이 장악하는 계기가 됐고, 이른바 ‘3대 패밀리’가 등장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60년대 서울 중앙의 조폭 조직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어 세를 과시했는데, 50년대 건달들의 잔당 세력들과 지방에서 올라온 신흥세력이 그것. 전자의 대표적인 세력이 명동파의 후신인 ‘신상사파’이고, 후자의 세력 가운데 가장 강성했던 조직이 ‘호남파’였다.
주류 판매업 등을 둘러싸고 크고 작은 충돌을 일으키던 두 계파의 운명이 바뀐 계기는 바로 75년 새해 벽두에 일어난 명동 사보이호텔 난입사건이었다. 구성원이 노령화된 데다 주먹만으로 싸워온 신상사파는 생선회칼과 쇠파이프로 무장한 호남파의 습격을 받고 치명타를 입었다. 이 사건으로 조양은씨는 일약 보스급으로 등장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서울이라는 황금 무대를 장악한 호남파에선 내부 분열이 일어난다. 오아무개씨를 중심으로 한 세력과 박아무개씨를 중심으로 한 세력(번개파)으로 갈라서게 된 것. 오씨의 밑에 조양은씨가, 또 박씨의 밑에 김태촌씨가 각각 줄을 서면서 두 차세대 주먹들은 이후 죽이지 아니면 자신이 죽는 식의 필생의 전쟁을 치르는 운명에 놓인다.
그 서곡이 바로 76년 3월 서울 무교동 엠파이어 호텔 후문 주차장에서 벌어진 오씨 린치 사건이었다. 번개파의 행동대장 김태촌씨는 호남파 두목 오씨에게 린치를 가해 불구로 만들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사실상 호남파 1세대들은 사라지고, 차세대 주먹들인 조양은씨와 김태촌씨, 그리고 이동재씨가 전면으로 등장한다.
3. 86년 서진룸살롱 사건과 88년 OB파 두목 이씨 테러 사건
조폭계의 양대 거물인 조양은씨와 김태촌씨가 80년 전두환 신군부가 발표한 ‘사회악 일소 특별조치’에 의해 잇따라 구속되면서 이후 서울의 밤은 제2의 김태촌과 조양은을 꿈꾸는 지방 주먹들의 상경으로 인해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했다. 그래서 이 80년대를 가리켜 ‘조폭들의 르네상스 시대’로 부르기도 한다.
당시만 해도 조폭 세계 역시 나름대로의 내부 질서가 엄격했다. 개인간 충돌이 있을 때엔 계파 서열 등에 따라 선배들이 ‘교통정리’를 하는 일도 잦았다. 하지만 이런 밤의 세계에 일대 파란을 몰고 온 사건이 벌어졌으니 바로 86년 8월의 ‘서진룸살롱 살해 사건’이었다.
사건의 장본인인 목포 출신의 20대 젊은이 7명은 그들 스스로 조직을 만들었다. 이들은 ‘밤세계 평정’이라는 기획에 의해 급조된 그야말로 ‘족보’도 없는 신흥조직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주먹세계에서 인정받으려면 조직의 똘마니에서부터 시작해서 행동대장 부두목 두목 등으로 올라오는 계단식 서열을 거쳐야 했다. 그러나 이들은 전통적인 방식을 거부하고 자신들끼리 조직을 만들어서 단숨에 조직세계의 톱 자리에 오르려 했다. 이 과정에서 선후배 가리지 않는 참혹한 칼부림이 벌어졌고, 이 사건을 계기로 조폭세계의 최소한의 예절이랄 수 있는 ‘서열의 법칙’도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 즈음 전통의 강자로 군림해온 3대 패밀리도 서서히 무대 뒤편으로 사라지게 된다. 그 계기가 된 사건이 바로 88년 9월 OB파 보스 이동재씨 테러 사건이다. 당시 이씨는 양은이파에게 아킬레스건을 절단당하는 테러를 당한 뒤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앞서 구속된 조양은·김태촌씨에 이어 이씨마저 해외로 나가면서 외형상으로나마 ‘3대 패밀리’의 보스들이 모두 주먹세계를 떠난 꼴이 되었다. 두 건의 대형 사건에 대한 대대적인 조폭 단속이 이어지면서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는 생존의 법칙을 터득했기 때문일까. 이후 조직들은 무자비한 전쟁보다는 조직들간의 협력과 연대 쪽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 93년 재판정에 출두하는 ‘슬롯머신 대부’ 정덕진씨. | ||
80년대 ‘조폭의 르네상스’ 시대를 맞아 전국에서 조폭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조직은 갈수록 기업화· 국제화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에 노태우 정권은 90년 10월3일 이른바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전국의 수괴급 조폭들을 대거 잡아들인다. 범죄와의 전쟁으로 전국을 활개치던 조폭들은 숨을 죽였다. 차디찬 철창 속에서 “돈과 권력이 없으면 그저 당할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절감한 조폭의 보스들은 출감 이후 ‘기업인’으로의 변신을 꾀하기 시작한다.
자연히 조폭 문화에도 대폭적인 변화의 바람이 불어 닥쳤다. 예전처럼 특정지역을 지배하는 형태가 아니라 업체별 업종별 지배형태를 띠기 시작한 것. 따라서 과거 70~80년대와 같이 ‘나와바리’ 싸움을 벌이는 유혈 난투극도 없어졌다. 대신 서로 속고 속이는 기업형 사기와 이권 개입이 만연했다.
이들은 ‘사업’의 배경으로 삼기 위해 정계 및 법조계 인사들과 친분을 유지했다. ‘기업형 조폭’과 ‘조폭 커넥션’이란 용어가 자주 회자되고, 조폭을 이끄는 실세들도 주먹이나 칼을 잘 쓰는 ‘무사형 조폭’에서 정·관계 인맥을 활용해서 사업가적인 머리 회전이 빠른 ‘기업가형 조폭’이 득세하기 시작한다.
90년 6월 서울대병원에서 탈주한 뒤 4개월 만에 자수한 대전 진술파의 두목 김아무개씨의 폭로는 당시 정국을 발칵 뒤집었다. 그에 의해 일부 국회의원과 판·검사들이 조폭들과 어울려 술을 마신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난 것. 말로만 떠돌던 정·관계 실세와 조폭간의 커넥션이 그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93년 정국을 회오리로 몰고간 정덕진 슬롯머신 사건도 대표적인 케이스. 당시 이 사건으로 슬롯머신 업자와 조폭들이 서로 악어와 악어새 관계를 형성하며 막대한 부를 축적한 전횡이 드러났고, 또 그들의 비호세력으로 정·관계 거물급 인사들이 포진하고 있던 행태가 공개됐다.
결국 이 사건의 여파로 조폭은 다시한 번 변신을 꾀해야 될 처지에 놓이게 된다. 조직 관리를 위해서는 돈이 절실했던 조폭들로서는 정부가 이후 슬롯머신에 대한 영업허가를 갱신해주지 않고 폐업조치를 잇따라 하면서 돈줄이 마르기 시작했다. 한동안 움츠려들던 조폭들은 98년 DJ정부가 탄생하면서 새로운 변화의 기회를 맞는다.
▲ 2000년과 2001년 ‘게이트’를 장식했던 정현준, 진승현, 이용호씨(왼쪽부터). 이들 ‘게이트’엔 조폭이 연루됐었다. | ||
90년대부터 서서히 기업형 조폭으로 변신하기 시작한 조폭 문화는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벤처형으로 완벽하게 이미지를 바꾸기 시작한다. 외형상 그들은 기업가였다.
한 조폭담당 수사관은 “그들은 이제 외형상만 기업가일 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그렇다. 그들을 조폭으로 몰아붙이면 ‘21세기 시대에 언제적 얘기를 또 갖다붙이느냐’며 오히려 우리를 한심하다는 듯 나무란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2000년과 2001년 잇따라 터져나온 각종 게이트들은 엄밀히 말하면 조폭들이 직접 주도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주범격인 이용호씨나 정현준, 진승현씨 등은 벤처 기업가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조폭의 조직과 완력이 필요했고, 또 조폭은 그들 뒤에 숨어서 실제 비리를 조종하거나 이에 개입했다.
서울경찰청의 한 조폭담당 수사관은 “이제 조폭 문화도 뚜렷이 두 개의 계급으로 나뉘어서 접근해야 한다. 최근 간혹 터져나오는 폭력배들간의 싸움은 그야말로 동네 양아치들 싸움에 불과하다. 진짜 ‘귀족 조폭’들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뒤에서 사업을 모두 조종한다. 하지만 그들은 이제 더이상 자신을 조폭이라고 부르는 데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과거의 경우 조폭의 조직도는 두목-부두목-행동대장-행동대원 식의 단순 구도였지만, 오늘날에는 두목 위에 ‘고문’이나 ‘회장’들이 포진해 있다. 이들이 진짜 요주의 인물들”이라며 “아마 김태촌씨도 이번에 출감해서 나오면 급변한 조폭 문화에 더이상 적응하지 못할 것이다. 어떻게 보면 김씨나 조양은씨 등이 이 시대의 마지막 조폭이라고 봐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폭력조직이 운영하는 기업 형태도 더이상 과거와 같은 주류 도매업이나, 카지노산업, 호텔 유흥업 등에 머물지 않는다. 건설업 금융업 등은 물론 최근에는 엔터테인먼트 산업과 기업 M&A로까지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는 게 조폭 전문 수사관들의 지적이다.
자신의 신분을 밝히기를 꺼려한 조폭 출신의 한 관계자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조폭을 거론하면서 이제 더이상 태촌이와 양은이를 들먹이는 것은 한참 뒤떨어진 짓이다. 이제 그들은 더이상 이 바닥에서 힘을 쓰지 못한다. 문화가 바뀌어도 한참 바뀌었다. 실제 조폭세력을 움직이는 배후인물은 절대 밖으로 신분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