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02년부터 올해까지 군인공제회(왼쪽)에서 신용등급이 최하위인 인정건설(오른쪽)에 매출액보다 훨씬 많은 7백억원의 거액을 대출해준 사실이 드러나 특혜 의혹이 일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공제회가 국회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공제회는 아파트 건설업체인 인정건설(주)에 지난 2002년 9월부터 지난 8월까지 네 차례에 걸쳐 모두 7백억원을 대출해 준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 한국신용평가정보(주)(한신평)가 작성한 신용분석보고서에 따르면, 인정건설의 신용등급은 ‘C1’. 이 등급은 ‘기업들의 평균 위험 수준보다 두 배 이상 신용이 위험한 기업’이라는 평가다. 한신평은 “경제 여건과 환경이 악화됐을 때에는 신용위험 증가 가능성이 있는 기업”이라고 설명했다.
인정건설에 대한 신용 평가일은 지난 2002년 12월31일이었으며, 당시 C1등급을 받았고 이는 올해 3월31일까지 유효한 신용 잣대였다. 그렇다면 이처럼 신용등급 최하위였던 회사가 어떻게 해서 수백억원을 대출 받을 수 있었을까.
인정건설은 지난 1983년 12월 설립된 회사로, 2002년 12월31일 결산 재무제표를 기준으로 했을 때 자산총계는 7백55억원이며, 매출액은 5백45억3천만원이었다. 또한 이 회사는 건설 계열순위 7백85위로 상당히 낮은 편이었다. 그런데 공제회가 이 회사의 매출액보다도 많은 거액을 대출해준 것이다.
이처럼 신용등급 최하위인 회사에 공제회가 거액을 대출해준 까닭은 무엇일까. 여기서 공제회의 특혜 대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공제회의 대출이 이뤄졌던 당시 인정건설 대표이사는 이종근씨와 조래일씨가 공동으로 맡고 있었다. 지난 92년 1월부터 이 회사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이씨는 여의도 순복음교회 당회장인 조용기 목사가 이사장으로 있던 베데스다대학교의 상임위원이었다. 서울 양재동에 있던 베데스다대학 분교는 지난 2월 강남교육청으로부터 불법 사설대학을 설립·운영한 혐의(고등교육법 위반)로 고발당하자 지난 6월 말 자진 폐쇄했다. 이사장인 조용기 목사는 벌금 1천만원에 약식 기소됐다.
또 다른 대표이사였던 여의도 순복음교회 장로인 조래일씨는 지난 2000년 11월 인정건설에 입사, 지난해 11월 퇴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공제회 이사장이었던 이청남씨와 현 이사장인 김승광씨가 인정건설 대출 과정의 최고 결재라인이다. 육군종합행정학교장을 역임했던 이씨는 2000년 2월 공제회 제7대 이사장으로 취임, 지난해 1월31일로 3년 임기를 마치고 퇴임했다. 그리고 지난해 3월26일 신임 이사장으로 김씨가 선출됐다. 이들 사이에서 대출과 관련된 약정서가 체결된 것이다.
공제회가 제출한 국감 자료에 따르면, 인정건설은 서울 광진구 능동로 5지구 재건축 아파트 사업과 능동로 3지구 주상복합 아파트 사업 등 두 건의 건설사업에 필요한 자금으로 각각 3백50억씩 총 7백억원을 대출받았다.
여기서 인정건설이 공제회로부터 대출 받았던 과정을 살펴보자. <일요신문>이 입수한 ‘능동로 5지구 재건축 아파트 사업 프로젝트 파이낸싱 약정서’에 따르면, 공제회는 지난 2002년 9월10일에 1백50억원, 2003년 3월20일에 2백억원 등 3백50억원을 대출했다. 능동로 5지구 재건축 아파트 사업은 광진구 노유동 114번지 외 1백25필지, 부지면적으론 4천8백65평에 지하 2층, 지상 21층 규모의 아파트 34평형 1백53세대와 45평형 1백56세대를 건설한다는 프로젝트다.
또한 공제회는 인정건설이 추진중인 능동로 3지구 주상복합 아파트 건설 사업자금으로도 3백50억원을 빌려준 것으로 드러났다. 공제회는 지난 5월20일에 2백50억원, 지난 8월31일에 추가로 1백억원을 대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능동 3지구 주상복합 아파트 사업은 광진구 노유동 61-3번지 외 1백23필지(부지면적 3천3백77평)에 지하 3층, 지상 25층 규모의 상가와 아파트 2백60세대를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이 같은 건설 사업들을 추진하기 위해 인정건설이 공제회로부터 7백억원을 대출 받았다는 얘기다.
인정건설은 “공제회로부터 대출 받는 조건으로 능동로 5지구 아파트의 토지처분신탁과 ‘견질(見質)어음’을 담보를 잡혔으며, 능동로 3지구의 경우에는 매입토지를 군인공제회 소유로 등기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인정건설이 담보로 잡힌 ‘견질어음’은 한 금융기관이 기업에 대출해줄 때 담보력을 보강하기 위해 기업으로부터 위임받는 어음으로 일종의 ‘백지어음’이다. 기업이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하거나 자금회수에 의문이 생기면 대출해준 금융기관이 이를 교환에 회부하여 자금화할 수 있는 어음인 것이다.
금융계 관계자는 “견질어음은 발행기관만 기록돼 있을 뿐 금액이나 만기일, 발행일이 없어 이 어음을 소지한 금융기관은 채권금액과 발행일, 만기일을 마음대로 적어 교환에 회부하므로 기업의 자금난은 더욱 심각해진다”며 “대부분 견질어음 발행 기업이 부도나기 직전에 교환에 돌려지므로 견질어음이 시중에 나타났다는 것은 견질어음을 발행한 기업이 파산에 임박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공제회는 인정건설로부터 받은 견질어음을 교환에 회부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공제회가 신용등급 최하위인 회사가 발행한 견질어음을 대출 담보물건으로 확보했다는 점에 대해서도 석연치 않은 의문이 남아 있다.
특히 공제회는 자체 사업준칙에서 “안정성의 준칙을 준수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정보와 주도면밀하게 사업계획을 검토하여 위험 부담이 큰 무리한 투자를 지양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에 일각에선 “공제회가 왜 위험부담이 큰 무리한 투자를 했는지 밝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제회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인정건설은 우리나라 시행사 가운데 가장 우수한 회사로 현재 추진하고 있는 능동지구 건설사업도 사업성이 충분히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공제회는) 100% 채권을 확보했기 때문에 대출을 해줬다”며 특혜 대출 의혹을 부인했다.
그리고 인정건설이 능동로 5지구 사업에 필요한 자금 3백50억원을 대출 받는 조건으로 고정금리 연 14.3%, 능동로 3지구의 경우 연 13.2% 등 높은 이자를 주면서까지 대출을 받았다는 점도 의문이다. 시중 금융권의 대출금리보다 1.5배 정도 높은 이자를 지급하면서까지 공제회로부터 대출을 받았던 까닭이 무엇이냐는 점이다. 인정건설의 신용도가 낮아 시중금융권으로부터 대출을 받지 못해, 결국 공제회로부터 대출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게 아니냐는 관측이다.
인정건설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처음엔 제1금융권으로부터 대출을 시도했으나, 개발신탁 등을 요구해 (능동로 5지구) 조합이 제1금융권으로부터의 대출을 반대했다. 그래서 공제회로부터 대출을 받게 됐다. 특히 자금조달이 급한 상황이었는데, 공제회가 일처리(대출)를 빨리 해주기 때문에 이자가 높은 그곳에서 대출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공제회의 지난해 자산규모는 무려 3조7천여억원. 2002년(4백40억원)의 두 배 이상인 9백7억원의 순이익을 남기는 사업 수완을 발휘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출 알선 대가로 금품을 받은 공제회 직원이 최근 구속됐는가 하면 직원들이 주가 조작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는 등 불미스러운 사건들이 잇따라 터지고 있다. 따라서 이번 인정건설에 대한 7백억원 특혜대출 의혹도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