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경찰과 내연녀의 1년간 지속된 불륜이 살인이라는 파국으로 끝을 맺은 ‘군산 내연녀 살인 사건’은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유력한 용의자였던 정 씨가 구속되면서 실마리가 풀리는 듯했던 이 사건은 오히려 정 씨가 붙잡히면서 진실공방이 가열됐다.
불행은 2012년 동료경찰관의 소개로 정 씨와 이혼녀 이 씨가 만나면서 시작됐다. 1년간 내연관계를 유지하던 두 사람은 지난해 7월 17일 이 씨가 정 씨에게 임신한 사실을 알리면서 급격히 사이가 틀어졌다. 낙태비용 문제로 말다툼이 시작돼 참혹한 살인사건으로 끝난 이 사건에서 이 씨의 임신여부는 중요한 쟁점이었다.
유력한 용의자인 정 씨가 검거된 다음날인 지난해 8월 3일, 폐양어장에 유기됐던 이 씨의 사체는 부패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로 발견됐다. 그러나 임신을 했다며 정 씨에게 낙태비용을 요구했다던 이 씨의 임신여부가 명확하지 않았다. 경찰은 “국과수의 부검 결과 태아가 형성된 흔적은 없었고 시신의 부패 상태가 심해 임신 초기 단계인지도 밝혀낼 수 없었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 씨가 실종되기 전 지인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에 ‘7월 11일 생리를 했다’는 내용이 있어 실제 임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경찰의 발표 이후 사망한 이 씨를 ‘꽃뱀’으로 비하하는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이 씨의 가족들은 경찰의 잠정 결론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이 씨의 여동생은 “정 씨가 형량을 감경받으려고 언니를 이상한 여자로 몰고 있다”며 “언니가 사건 발생 전 두 줄이 그어진 임신테스트기를 보여줬다”고 주장하며 엄중한 처벌을 요구했다.
피해자가 사망해 정 씨의 진술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정 씨의 계획적 범행 가능성에 대한 여부도 피의자 측과 유족 측 의견이 엇갈렸다. 정 씨는 “차 안에서 심한 말다툼을 벌이다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망한 이 씨의 여동생은 당시 “사건 발생 전 19일 밤 ‘만약 내가 무슨 일이 생기면 그 사람(정 경사) 짓이다’는 전화를 내게 걸었다”며 정 씨가 이 씨에게 위협을 가한 바 있음을 시사하며 계획 범행이라 주장하며 팽팽히 맞섰다.
참혹한 살인을 저지른 피의자가 한 때는 모범경찰이었다는 점도 검찰과 피고인 측의 열띤 공방을 불러 일으켰다. 검찰은 1심과 항소심에서 “누구보다도 법을 준수해야 할 경찰관이 살인을 행한 점, 사체를 유기하고 범행을 은폐하려 한 점, 수사기관 최초 조사 당시 범행을 부인하고 풀려나 도주해 수사에 혼선을 초래한 점, 피해자 유족과 합의에 이르지 못해 유족들이 강력한 처벌을 원하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며 정 씨에 대해 징역 20년을 구형한 바 있다.
이에 반해 정 씨의 변호인 측은 정 씨가 초범이고 14년 동안 경찰 공무원으로 재직하면서 여러 차례 표창을 받는 등 비교적 모범적으로 공무를 수행 한 점을 양형에 참작해 달라며 “정씨는 사건 당일 ‘돈이 없으면 여자를 만나지 말았어야 한다’는 등의 이 씨의 모욕적인 말을 듣고 행복한 가정이 깨질 것으로 우려, 우발적으로 범행했다”면서 “고인에게 죄송한 일이지만 피고인보다는 피고인 가족을 위해 선처 해달라”고 재판부에 호소했다.
지난 5월 29일 대법원은 “죄질이 나쁘고 비난 가능성이 큰 점, 범행을 부인하고 은폐하려 한 점, 피해자 유족의 고통이 큰 점, 법을 지켜야 할 경찰관의 본분을 망각하고 범행한 점 등에 비쳐 1심 형량이 무겁거나 가볍지 않다”면서 피고인과 검찰의 항소를 모두 기각했다. 재판부는 ‘법이 허용하는 가장 큰 처벌’을 호소하는 유족 측과 20년을 구형한 검찰, 선처를 부탁하는 피고인 측 사이에서 정 씨에게 14년 형을 확정했다. 종종 법원의 양형이 유족 측의 법 감정보다 낮을 경우 유족 측은 ‘솜방망이 처벌’이라고 호소하기도 한다. 대법원은 수년간 지속된 양형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지난 2009년 4월 살인죄 양형 기준을 마련한 바 있다. 원한관계에 의한 살인, 가정불화로 인한 살인 등 보통 동기 살인의 경우는 기본형을 10년에서 16년형으로 정하고 최대 무기 이상 선고할 수 있도록 했다. 별다른 이유 없이 살인을 하거나 불특정 다수를 향한 무차별 살인 등의 비난 동기 살인의 경우에는 기본형을 15년에서 20년으로 정하고 최대 무기 이상을 선고할 수 있도록 했다.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 소장은 “사법부 판사들이 가지고 있는 직업적인 폐쇄성과 국민의 법 감정 사이에 종종 괴리가 발생하기도 한다. 기계적인 형평성만으로 일반인의 상식과 공감을 얻기 힘든 측면이있다”며 “현재 국민참여재판제도는 권고만 하는 사항이다. 배심원 제도같이 일반인의 상식 정도가 1심 정도에는 반영되도록 하는 열린재판, 참여재판으로 그 간극을 보완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