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시 재무국 세금과 ‘38세금기동팀’ 사무실 전경. ‘끝까지 추적하여 반드시 징수한다’는 플래카드가 긴장감을 더한다. 38팀은 지난 3년간 3천억원 이상을 징수하는 등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다. | ||
그러나 38팀이 이 정도의 성과를 이루는 과정은 그리 만만치 않았다. 세금을 안 내기로 작정한 악성 체납자들이 상대가 38팀이라고 순순히 세금을 내놓을 리가 없기 때문. 더구나 각 자치구가 두 손 두 발 다든 악성 체납자들이 마지막으로 38팀으로 오다 보니 38팀은 이들 체납자들과 길고도 지루한 신경전을 벌여야 했다.
대부분은 38팀의 끈질긴 추적에 세금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지만 개중에는 온갖 방법으로 버티며 38팀과 줄다리기를 했던 고질적 체납자들도 있다. 38팀 조사관들이 밝히는 ‘놀부도 혀를 내두를 만한’ 악질 체납자들 ‘워스트(worst) 5’를 꼽아봤다.
▲ 1.은행 근저당 악용 영화감독, 2.죽은 모친 살려낸 개인사업가 | ||
당시 담당자가 A씨 사무실로 찾아가 직접 세금 납부를 독촉하면 그때마다 A씨는 “납부할 여력이 없다. 할 테면 해보라”며 배짱을 부렸다. 경제적 여유가 있음에도 오리발을 내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판단한 38팀은 재산추적을 시작했다.
A씨는 자기 명의로 부동산 한 건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이 부동산에는 20억원의 근저당 설정이 돼 있었다.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을 받으며 담보로 내놓았던 것. A씨는 이 근저당을 마치 방패처럼 이용하며 세금 낼 여력이 없다고 버텨온 것이다.
38팀은 문제의 부동산에 수년째 근저당권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점에 의문을 가졌다. 대출자들이 조금만 상환을 늦춰도 바로 가압류를 하거나 경매처분을 통해 채권을 회수해 가는 것이 금융권의 관례. 그런데 무일푼이라는 A씨의 부동산은 금융기관에서 수년째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깨끗한’ 상태였다.
해당 금융기관에 확인해 본 결과 A씨는 이미 대출금을 모두 갚았음에도 근저당을 철회하는 등기신고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간 구청 세무과에서 세금납부를 독촉해도 근저당을 핑계 삼아 납부를 회피해온 것이었다.
38팀은 이 부동산을 가압류하고 경매로 넘기기 위해 공매대행통지서 등의 서류를 우편으로 A씨에게 보냈다. 그러자 A씨는 일부러 우편물을 반송시켰다. 통지서를 수령하지 않으면 공매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서 집에 있으면서도 우편물을 받지 않았던 것.
38팀은 한국자산관리공사에 연락해 담당자가 직접 통지서를 전달할 것을 부탁했고 결국 담당자가 집을 직접 방문해 통지서를 전할 수 있었다.
결국 공매절차가 진행되자 다급해진 A씨는 직접 38팀 사무실에 찾아와 막무가내로 “공매를 중지시켜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38팀이 이를 거부하자 수시로 전화해 “가만히 두지 않겠다. 칼로 다 찔러 죽이겠다”며 심한 욕을 해대기도 했다. 세무사를 통해 알아봤는지 그는 몇 가지 이유를 대며 줄기차게 공매 중지를 요구했다.
그러나 결국 부동산은 경매처리되었고 38팀은 체납세금을 징수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A씨는 38팀에 전화를 해 “또 안 찾아오느냐”며 여유를 부렸다고 한다. A씨의 부동산은 A씨의 지인이 낙찰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2_2천5백만원을 체납한 개인사업자 B씨는 재산 추적을 피하기 위해 죽은 어머니가 살아 있는 것으로 가장한 케이스.
문제의 발단이 된 것은 서울 서초동의 50평형 아파트였다. 이 아파트는 1998년 B씨의 어머니가 사망한 뒤 상속자인 B씨 몫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2002년 38팀의 재산 추적이 시작되자 B씨는 마치 자신의 어머니가 23세 손녀에게 명의를 이전해 준 것처럼 서류를 꾸몄다. 호적 변경도 하지 않아 그때까지도 호적상으로 B씨의 어머니는 살아있는 것으로 돼 있었다.
그러나 38팀이 알아본 결과 B씨의 어머니는 이미 오래 전 별세했고 사망 일주일 뒤 의료보험공단에 사망신고를 해 장례비를 수령해간 사실이 확인됐다. 38팀이 B씨에게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시지 않았나”라고 물었지만 그때마다 B씨는 “대구에서 요양중이시다”며 오리발을 내밀었다.
또한 B씨는 38팀이 집에 찾아올 때마다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요구했고, 신분증을 제시해도 “진짜 서울시 직원이 맞느냐”며 계속 시비를 걸었다. 심지어 서울시청의 아는 직원을 통해 “좀 봐달라”며 압력을 행사하려고도 했다.
B씨가 순순히 체납 세금을 납부하지 않자 결국 38팀은 가능한 모든 법적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사망한 어머니가 손녀에게 재산을 증여한 것처럼 꾸민 것에 대해서는 사문서 위조로, 어머니의 인감을 허위로 작성한 것에 대해선 공문서 위조로, 또한 상속세와 취·등록세를 포탈한 혐의 등으로 B씨를 고발했던 것. 그러나 아직 B씨는 체납 세금을 내지 않고 ‘버티고’ 있다고 한다.
▲ 3.'투명인간' 재력가를 찾아서, 4.방송 탄 '욕쟁이 할아버지' 5.'프로' 세무사와의 두뇌싸움 | ||
38팀이 C씨의 회사로 찾아가 그의 행적을 물어보았으나 직원들은 한결같이 “모른다”고 대답할 뿐이었다. 당연히 주소지나 전화번호를 알아내기는 더욱 힘들었다. C씨는 이미 체납되는 시점에 호화주택과 콘도, 주차장을 24세 된 아들에게 명의이전시킨 상태였다.
38팀은 C씨의 행적을 찾기 위해 모든 친척의 재산을 일일이 추적했다. 그러자 친척 명의로 평창동에 시가 15억이 넘는 80평대 고급 빌라가 있는 것이 발견됐다. 이 집에 그가 머물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38팀이 평일에 찾아가 초인종을 눌렀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이때부터 새벽 시간대에 잠복을 시작했다.
마침내 어느 날 이른 아침 38팀은 C씨가 골프가방을 매고 집을 나서는 장면을 목격했다. 팀원들은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열린 문 안으로 달려들어갔다. C씨는 60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힘이 좋아 2명의 젊은 팀원들이 붙잡아도 뿌리칠 정도였다.
38팀원들은 집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곧 TV와 가구 등 가재도구에 가압류 ‘딱지’를 붙이고 체납세액을 납부할 것을 요구했다. 자신의 거처가 드러났다는 불안감 때문이었을까. C씨는 이날 1천만원의 세금을 납부했다.
38팀에 따르면 가재도구 등 동산(動産)을 가압류하는 것은 실제 큰 액수를 회수하긴 어렵지만 체납자들에게 정신적 압박을 주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한다. 2년간 담당자들을 고생시켰던 C씨는 결국 꼬리를 잡힌 지 1달 만에 1억원의 체납세금 중 5천만원을 납부했다.
4_성북동의 고급주택에 거주하는 D씨(72)는 38팀원들에게 ‘욕쟁이 할아버지’로 통할 정도로 악명이 높았다. 38팀이 TV에 소개되면서 한창 유명세를 타고 있을 당시의 일.
2001년부터 D씨에 대한 추적을 시작한 38팀은 2년이 지난 뒤인 2003년에서야 D씨의 거주지를 찾아냈다. 38팀은 며칠간 허탕을 친 뒤 가까스로 D씨의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당시 TV 방송팀이 38팀과 동행해 이 모습을 촬영했다.
D씨는 5천5백만원을 체납중이었는데 그가 사는 주택은 크고 호화스러웠다. 당시 마당에서 잔디에 물을 뿌리고 있던 D씨는 38팀과 방송카메라를 보자 갑자기 욕을 하며 물을 뿌려대기 시작했다. 캠코더를 든 방송사 카메라맨의 다리를 발로 차기도 했다. D씨가 워낙 ‘강성’인 데다 불 같은 성격이라 당시 집 안으로 들어갔던 일행이 날벼락을 맞아야 했던 것.
그러나 이 모습은 고스란히 방송 카메라에 담겨 D씨가 큰소리로 38팀에게 욕하는 모습이 전국적으로 방송되었다. 그러자 D씨는 당장 방송사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그러나 결국 D씨는 지난해 12월 법원에서 패소판결을 받았다.
재판 중 D씨는 38팀과 전혀 연락을 하지 않았다. 38팀 또한 방송사와의 재판과정을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당시 D씨의 저택은 젊은 아내의 명의로 되어 있었고 대부분의 재산도 아들 명의로 돌려져 있었다. 38팀은 다시 D씨의 체납세금을 걷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5_세금을 고의로 내지 않는 사람들 중 가장 상대하기 까다로운 직업인은 아마 세무사가 아닐까. 세금에 대해서는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한 전문가이다 보니 38팀과 벌이는 두뇌싸움이 만만치 않다.
지난 2003년 9월, 38팀은 서울 강남에서 세무사 사무실을 운영하는 E씨를 찾아갔다. E씨는 당시 1억원가량의 세금을 체납하고 있었다. 이전부터 전화로 납부를 독촉하면 그때마다 E씨는 “조만간 내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러나 말만으로 그칠 뿐 실제 납부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결국 38팀이 E씨 사무실로 찾아가 사무실 집기들을 가압류하기에 이른다. 그럼에도 당시 E씨는 “나는 동가식 서가숙(東家食 西家宿)하면서 집도 없이 떠돌이 생활을 하고, 사무실도 겨우겨우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납부할 여력이 안된다”며 딴전을 피웠다.
집기류에 가압류 딱지를 붙이는 것이 심리적으로는 강한 압박이 되어도 실제 재산가치는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이 점을 알고 있는 E씨가 계속 버틴 것이다.
당시 E씨는 아내 명의로 된 용인의 고급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고 딸을 골프선수로 키우기 위해 레슨을 시키는 등 세금을 낼 여력은 충분해 보였다.
38팀은 E씨 아내 명의의 아파트를 찾아내 지난 10월 찾아갔다. E씨가 쓰는 집안 가재도구를 가압류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집에 사람이 있음에도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다음날 새벽 아파트 계단에서 잠복하던 38팀은 마침 파출부가 쓰레기를 버리러 나오던 틈을 타 진입을 시도했다. 겨우 팀원들이 대문 안으로 들어갔으나 내부에 또 다른 현관문이 잠겨 있었다. 38팀은 포기하지 않고 1시간가량 실랑이를 벌인 끝에 가까스로 집 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
E씨는 외출중이었고 E씨의 아내가 38팀을 맞았다. 38팀이 집기들을 가압류하려고 하자 흥분한 E씨의 아내는 탁자의 유리를 깨는가 하면 화분을 발로 차서 깨뜨리고 컵을 집어던졌다. 심지어 38팀 직원의 허벅지를 발로 차는 등의 사나운 모습을 보였다. 함께 있던 E씨의 딸도 직원들을 떠밀어 넘어뜨렸다. 전화를 받고 급히 달려온 E씨 또한 거세게 항의했다.
이날의 소동 이후에도 E씨는 밀린 세금을 납부하지 않고 버텼다. 38팀은 E씨에 대해 주변 조사를 계속하던 중 그가 캐나다를 자주 왕래한다는 사실을 포착했다. 알고 보니 E씨가 캐나다 영주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38팀은 거액의 세금 체납자인 E씨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가 내려지도록 했다. 발이 묶여 버린 E씨는 그제서야 세금을 납부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