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SC의 비밀문서 일부. | ||
이에 대해 갖가지 분석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한국과 중국 정부가 다양한 외교채널을 가동해 “북한을 자극하지 말 것”을 부시 행정부에 강하게 요청했던 구체적 외교 활동이 포착됐다. 이는 <일요신문>이 단독 입수한 ‘NSC(대통령 직속 국가안전보장회의) 일일 정보’(이하 보고서)에서 드러났다.
이번에 입수한 보고서는 NSC 사무처에서 지난 1월10일부터 14일까지 작성한 것으로 A4용지 14장 분량. 국정원과 통일부, 외교부, 미국과 중국 등 해외공관이 NSC에 보고한 정보를 취합한 것이다. 이 보고서에는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한국 정부가 초청해주길 갈망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특히 카다피 원수는 서울을 거쳐 평양을 방문하길 바라고 있으며, 북한이 방북 대가를 원해도 지불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인 것으로 밝혀졌다. <일요신문>은 보고서 내용 가운데 이와 관련된 내용 일부를 공개한다.
착해진 부시 이유있었다.
한국과 중국 정부가 미 행정부에 “부시 대통령의 취임사 등에서 북한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자극할 만한 내용을 포함시키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던 구체적 정황이 드러났다.
주중 한국 대사관이 지난 1월12일 NSC에 보고한 정보에 따르면, 중국 외교부의 허야훼이 북미국장은 1월10일 주중 한국 공사에게 북핵 문제 해결과 6자 회담 진전을 위한 중국의 외교 노력을 설명했다. 당시 허야훼이 국장은 “중국은 최근 미국 측에 부시 대통령 취임사와 연두 국정연설(2월2일),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청문회(1월18일) 등에 북한과 김정일 위원장을 자극하는 내용이 포함되지 않도록 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이는 중국 정부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북·미간 조정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 정부 역시 미국 측에 북한을 자극하지 말 것을 지속적으로 요청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1월13일자 보고서에 따르면, “NSC, 외교부 등 유관부처는 부시 대통령 취임사, 연두 국정연설, 라이스 국무장관 상원 인준 청문회 때 대북한 정책 및 북핵·6자 회담과 관련해 부정적인 내용이 포함되지 않도록 외교채널을 통해 미국 측에 요청”했다며 “반기문 외교부 장관(12월21일)과 정동영 NSC 의장 겸 통일부장관(12월27일)이 크리스토퍼 힐 주한 미 대사와 면담했다”고 기록돼 있다.
또한 “권진호 청와대 국가안보보좌관은 1월5일 북핵 문제와 관련해서 미국의 이해를 요청하는 서한을 라이스 당시 미 국무장관 지명자와 스티븐 해들리 국가안보보좌관에게 발송”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주미 공관을 통해서도 마이클 그린 미 국가안보회의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과 한·일 전문가인 에반스 J. 리비어 미 국무부 부차관보 등에게 우리 정부의 입장을 수시로 전달했다.
이 같은 외교 활동의 성과였을까. 부시 대통령은 지난 2일 집권2기 첫 연두 국정연설에서 “우리는 북한이 핵 야망을 포기하도록 설득하기 위해 아시아 정부들과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고만 짧게 언급했다.
그런데 1월12일자 보고서에는 허야훼이 중국 외교부 북미국장이 주중 한국 공사에게 언급했던 내용 가운데 심상치 않은 대목이 눈에 띈다. 보고서에는 “(허야훼이 국장이) 북한에 대해서도 부시 2기의 강경태도 유지 가능성을 경시해선 안 되며, 향후 2~3개월 내에 6자 회담의 진전이 없을 경우 미국이 (유엔) 안보리에 회부하거나 PSI(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 구상) 등 군사적 해결 추진 가능성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고 적시돼 있는 것.
▲ (왼쪽부터) 부시, 김정일, 카다피 | ||
북한은 대등한 대화 원하다.
지난 1월8일부터 11일까지 북한을 방문한 톰 랜토스 미국 하원의원(민주당)을 수행한 피터요 전문 위원은 1월11일 주중 한국 공관원에게 방북시 북측 인사들이 언급했던 내용을 설명했다고 1월12일자 보고서에 기록돼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피터요 위원은 한국 공관원에게 “(북한은) 향후 6자 회담에 성의를 갖고 임할 것이나, 현재는 적절한 시기가 아니며 부시 2기의 대북정책 윤곽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은) 다자(多者) 차원이 아닌 오직 미국으로부터의 안정보장을 받는 것이 필요하며, (작년 9월 미 상원에서 통과된) ‘북한 인권법안’이 미국의 대북 적대 정책의 대표적 사례로서 향후 미국 정책에 대북 적대 의지가 포함되는지 여부를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방북 당시 랜토스 의원 일행은 북측에 “리비아식 핵문제 해결 모델을 수용하라”고 요구했다는 것. 하지만 북한 인사들은 “북한은 억지력으로서의 핵 프로그램을 이미 갖고 있어, 그렇지 않았던 리비아의 경우와는 상이하다”며 미국 측 요구에 사실상 거부 의사를 밝혔다고 보고서에 명시돼 있다.
‘리비아식 모델’이란 지난 2003년 12월 카다피 원수가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의 포기를 선언하자, 미국 등 서방국가들이 리비아에 대한 경제 제재조치 일부를 해제한 것을 가리킨다.
그런데 북한이 “리비아의 경우와 상이하다”고 밝혀, ‘리비아식 모델’을 수용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방북 당시 랜토스 의원 일행은 북한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부위원장과 백남순 외무상, 김계관 외무성 미국담당 부상 등을 면담했다.
카다피 평화전도사 노림수 있나
지난 1월14일 보고서에 따르면, 압두사렘 아라파 주한 리비아 대사는 1월11일 통일부 장관인 정동영 NSC 의장을 예방했다. 당시 정 장관은 “카다피 원수가 방한해서 북한의 핵 폐기 등을 권고한다면 북한은 물론 국제 사회에 대해서도 의미 있는 발언으로 평가받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에 아라파 대사는 “카다피 원수는 (리비아의) 대량살상무기 프로그램 폐기 이후 북한·이란 등을 대상으로 ‘평화의 주창자’ 역할 수행을 희망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한국이 카다피 원수의 방한을 적극 추진해 주기 바라며, 1월 하순 반기문 외교부장관의 리비아 방문이 ‘초청 성사’의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이날 아라파 대사 발언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다. 그는 “카다피 원수가 방한한다면 서울을 거쳐 평양을 갈 수 있을 것이며, (카다피가 방북하는 것에 대해) 북한이 대가를 요구할 경우에는 지불할 능력도 갖고 있다고 부언(덧붙여 말함)”했다고 보고서에 적시돼 있다. 카다피 원수가 모종의 대가를 지불하면서까지 서울을 거쳐 평양을 방문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간접적으로 피력한 셈이다.
그런데 정 장관과 아라파 대사의 만남 이후 카다피 원수의 방한 가능성은 상당히 높아졌다. 반기문 외교부 장관은 지난 1월25일(현지시간) 리비아를 공식 방문했다. 당시 반 장관은 노무현 대통령의 안부를 전하면서, 카다피 원수를 공식 초청하는 친서를 전달했다. 이에 카다피 원수도 적절한 시기에 한국을 방문하겠다고 답했던 것.
따라서 카다피 원수가 서울과 평양을 오가면서 북핵 문제 해결사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그런데 북한이 ‘리비아식 해법’에 대해 부정적이어서 그의 평양 방문이 성사될지 자못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