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1일 있었던 신임검사들의 임관식 모습. 올해는 36명의 여검사가 임용돼 큰 화제를 낳았다. 가운데는 김승규 법무장관. 국민일보 | ||
여성 법조인은 양적인 증가뿐 아니라 함께 질적으로도 비약적 발전을 하고 있다. 올 사법연수원 수석 졸업생이 여성인 것을 비롯, 최근 7년간 사법시험 수석 합격자 중 여성이 5명에 이른다. 사시나 연수원 성적에서도 남자들을 압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성적순으로 임용하는 검찰과 법원 일각에서는 여성 임용이 너무 많아지는 것을 걱정하며 어떻게 하면 여성을 떨어뜨릴까하는 고민까지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변호사업계도 여성 변호사가 늘어나면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법무부가 지난 14일 신규 임용한 검사 95명 중 여성이 36명으로 비율은 역대 최고치인 37.9%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21명에 비해서도 두 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특히 사법연수원 수료자 중 검사를 지원한 여성 35명이 한 명도 탈락하지 않고 전원 임용됐다. 여검사 수는 1백39명으로 늘어나 전체 검사(1천5백59명) 중 8.9%를 차지하고 있다.
여성 검사는 숫자만 늘어난 것이 아니다. 지난해 의정부지검 형사4부장인 조희진 검사(사시 29회)가 임명돼 첫 여성 부장검사가 나온데 이어 최근들어 남성 검사들의 전유물처럼 인식돼던 특수·공안부에도 여성 검사들이 뚫고 들어오고 있다. 특수부의 문은 1999년 김진숙 검사(사시 32회·당시 광주지검 특수부)가 처음으로 열더니 지난해에는 평검사들의 선망의 보직인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 이지원 검사(사시 39회)가 입성했다. 서울지검 공안부에는 서인선 검사(사시 41회)가 배치돼 `금녀의 벽’을 허물었다.
여성배려 차원에서 보내지 않던 지방 벽지에도 이번 인사에는 상당수 여성 검사들이 발령났다. 법무부 관계자는 “벽지의 소규모 지청에 여검사를 배치하지 않던 관행을 탈피해 영월 제천 등 시골지청에도 여검사를 발령냈다”고 밝혔다. 구색 맞추기식으로 소년부나 형사부에 여성 검사를 배치하던 과거 관행이 완전히 무너진 것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최근에는 여성 검사회 등에서 힘들지만 경력 관리를 할 수 있는 보직을 배정해 달라는 요구를 적극적으로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미 여성 법원장(이영애 전 춘천지법원장)은 물론 지난해 최초의 여성 대법관(김영란 대법관)까지 배출된 법원은 검찰보다 여성 파워가 훨씬 강하다. 대법원이 지난 15일 발표한 신규 임용한 예비판사 1백10명 중 절반 가량인 54명(49.1%)이 여성이다. 남성 판사들이 간신히 과반수를 유지했지만 내년에는 역전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변호사 업계도 여성 변호사들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최근들어 여성 파워를 실감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지난달 말 연 정기총회에서 회원들에게 남성용 넥타이핀과 커프스 버튼을 기념품으로 나눠주자 여성 변호사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다. 이에 여성 변호사들은 서울변회 홈페이지 게시판에 “심한 모욕감을 느꼈다”며 강력히 항의했고 서울변회 집행부는 “매우 유감스럽다”는 사과문을 발표할 수밖에 없었다. 4천여 명의 서울변회 소속 변호사들 중 여성 변호사들은 3백여 명 정도로 비율이 10%에 조금 못미치는 수준이다.
검찰과 법원이 여성들에게 점령당하고 있자 대부분 남성으로 구성된 수뇌부들은 비상이다. 초등학교가 교사들의 ‘여초’ 현상으로 초등생들이 여성화되는 부작용이 우려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인 것이다. 특히 고민이 큰 곳은 검찰이다. 수사라는 것이 ‘험한’ 상황에 맞닥뜨릴 가능성이 항상 열려 있는데 과연 여성 검사들이 제대로 대처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문제다.
검찰보다 여성이 훨씬 더 많은 법원의 경우에는 여성 판사들의 출산휴가로 재판에 차질이 빚어질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 재판장과 좌·우배석 등 3명의 판사가 있는 합의부 판결문의 경우 판사 서명란에 ‘출산휴가로 서명불가’라는 글귀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여성 판사가 출산 휴가를 내면 법원 내 다른 판사가 그 자리를 임시로 채우는데 이 경우 새로 온 판사는 과거 공판 과정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심리를 할 수 없다. 판결의 질이 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법무부와 대법원 일각에서는 남자 검사와 판사들을 더 뽑는 묘수까지 강구하려는 분위기다. 법무부는 검사 임용 때 성적 반영 비율을 점차 줄이는 대신 집단 토론면접, 개별면접, 검사시보 시절 평가 등의 요소들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사정방법 개선을 검토중이다.
대법원은 이미 여성 판사들이 서울중앙지법에만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해 성적이 우수한 신임판사들을 서울중앙지법뿐만 아니라 동·남·북·서 지법에 교차 배치하고 있다. 과거처럼 신임 판사를 성적순으로 서울중앙지법부터 차곡차곡 채워 나가면 10여 명 정도의 신임 판사가 임용되는 중앙지법은 여성 판사들이 대부분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방식은 자칫 여성계로부터 남녀차별이라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어 법무부나 대법원 모두 전전긍긍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여성 검사나 판사가 법조계에 참신한 활력을 불어 넣을 수 있다는 긍적적인 전망도 있다. 재경 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여성 특유의 부드러움과 세밀함이 수사에 오히려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수사과정의 인권침해 논란을 잠재우는데도 여성검사는 유리하다. 꼼꼼함이 더 필요한 판사의 경우 오히려 여성이 더 적합하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법원 관계자는 “과거 일부 판사들이 변호사 등으로부터 향응을 받아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며 “일단 여성 법관이라면 변호사들의 이 같은 접대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래도 남성보다는 여성들이 ‘세파’에 덜 물들어 법률 집행의 최고 가치인 ‘법대로의 원리원칙’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참고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법조인은 1952년 제2회 사법고시에 함격한 고 이태영 박사이고 최초의 여성 판사는 1954년에 임관한 고 황윤석 판사다. 최초의 여성 검사는 그보다 30여 년 후인 1982년에나 나왔다. 조배숙 현 열린우리당 의원과 임숙경 변호사가 그들이다.
이진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