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은덩이나 금덩이를 요구한 것이 아니오. 내가 청하는 것은 다만 이 나라 사람들이 우리나라 땅인 울릉도에 침범하지 못하도록 다짐을 받기 위해 온 것이오. 그러니 이제부터는 울릉도와 독도에 대해서는 말도 하지 마시오. 차라리 전과 같이 화의를 지켜 이웃한 나라 사이의 우의를 지키는 것이 옳은 도리일 것이오”하고 점잖게 나무랐다.
태수도 “아, 그건 내 실수였소. 옳은 말씀이오”하고 순순히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는 “한 달만 기다리시오. 기다리는 동안 쉬면서 이 고장의 가볼 만한 곳을 보도록 안내하겠소.”
태수는 부하 가운데 무네라는 무사를 불러 용복 일행을 안내하라 일렀다.
무네를 따라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뜨거운 김이 눈앞을 가린다. 숨이 탁 막힌다. 안개 같은 더운 김이 사라지며 안을 살피던 용복은 깜짝 놀라 소리질렀다.
“이게 무슨 해괴한 짓이란 말이오!”
“예?” 옷을 막 벗으려던 무네가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탕 안에서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벌거벗은 채로 시시덕거리며 희희낙락거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여자는 가슴을 다 드러내고 사내는 물건을 당당히 보이고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용복은 질겁을 하고 얼른 밖으로 뛰어나왔다. 실오라기 하나 없이 벌거벗은 몸들보다 바라보는 눈이 더 부끄러웠던 것이다.
“남녀가 더불어 벌거벗고 희롱하면서도 괴이히 여기지 않으니 너희들이 금수와 다를 바가 무어냐?”
“그럼 욕탕을 남자 것 여자 것 따로따로 지으란 말입니까?”
“이놈아, 당연한 일이지!”
무네는 오히려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만 갸웃거린다. 이번에는 뱃놀이를 가자 하였다. 사미센을 뜯는 여인들이 같은 배를 탔다. 가야금에 비하면 어린 아이 칭얼대듯 쟁쟁거리기만 하는 것이 귀만 날카로워지는 것이었다. 저희들은 흥겨워 울리는 것이니 그만두라 할 수도 없었다.
육지로 올라와서는 음식이라고 받아왔으나 먹을 만한 것이 못 되었다. 생선도 꽁치나 고등어가 고작이었다.
‘왜놈들이 우리 조선의 보물섬을 탐내는 것도 무리는 아니구나!’
이날 돌아오는 길에 웬 사내들이 얼굴에 발그레 분을 바르고 서서 기모노를 화사하게 차려입은 계집들과 시시덕거린다. 이건 또 뭔가 싶어 “광대들인가?” 물었더니 무네는 “아니요, 그 사람들은 몸을 파는 남자들입니다”하였다.
산등성이를 다 올라와서는 한 여인의 구슬픈 울음소리를 듣고 발길을 멈추었다.
“세상에! 누가 저리 슬피 울까?” 용복이 궁금해 하자, “울어도 시원찮지요” 무네가 대답한다.
“무슨 말이요? 그게.”
“너무 가난해서 제 아기를 낳자마자 죽인 거랍니다.”
“세상에… 그래 죽이면… 어떻게 죽인단 말이요?”
“죽이는 방법이야 간단하죠. 눌러죽이고, 굶겨 죽이고, 숨을 막아 죽이고, 허리 엉덩이 혹은 무릎으로 눌러 죽입니다. 질식시켜 죽일 때에는 손을 뒤로 묶고 어미가 걸레로 입을 막거나 입과 코에 젖은 종이를 붙이고….”
기라 로주는 돗도리현에서 온 장계를 읽다가 “안핀샤라는 자가 다케시마와 마쯔시마는 자기 조선의 섬이라면서 일본 어부들의 출입을 금해 달라고 하여 이 일을 어찌 처리해야 좋을지…” 하는 부분에 와서 아내 미스히메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던 ‘안핀샤’의 얼굴을 떠올리며 쓰나요시에게 고했다.
“전하, 반 년 전에 에도에 왔던 ‘안핀샤’라는 청년을 기억하시나이까?”
“어, 있었지. 그 씩씩하고 말 잘하던….”
“그 안핀샤가 돗도리현에 또 나타나서 다케시마와 마쯔시마에 일본 어부들이 드나들지 못하게 해 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합니다. 그래서 이 일을 어찌해야 할지 알려달라고 장계가 올라왔습니다.”
쓰나요시는 “도대체 그 섬이 얼마나 귀한 섬이기에 또 야단이란 말인가”하다가 야나기자와를 불렀다.
“말해보시오. 그 다케시마와 마쯔시마가 그렇게도 보물이오?”
“그렇습니다.”
“그 안핀샤란 자가 돗도리현에 와서 일본 어부들 출입을 막아달라 했다는 거요.”
“끈질긴 놈이군요! 알고보니 천하제일의 보물섬들입니다. 그런데 윗대 전하께서도 그 섬에 들어가 채어하는 것을 허락하고 합법적으로 60년 이상 채어를 해왔습니다. 그러니까 일본 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쓰나요시는 고개를 끄덕이고 오키오를 오라 했다. 오키오는 곧 달려와 쓰나요시 앞에 무릎을 꿇는다.
“오키오. 안핀샤가 네 생명의 은인이라 했지? 안핀샤가 또 일본에 왔다는 구나.”
“예에?”
“우린 조선과는 화친이다. 그러나 법은 법이다. 지난 번에는 미처 몰랐다만, 이제 알고보니 문제가 된 두 섬은 이미 60년 간이나 우리 일본 어부들이 채어를 했다 한다. 그렇다면 이 두 섬은 일본 섬인 것이 아니냐? 네 생각은 어떠냐?” 하고 오키오의 눈치를 살핀다. 불과 3개월 전 조카 며느리 오키오 앞에서 두 섬은 조선 섬이라 했기 때문이다.
“안핀샤가 제 생명의 은인이라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세 가지 이유 때문에 그것은 조선 섬입니다.”
“세 가지가 무어냐?”
“첫째, 남아일언중천금인데 하물며 일본의 얼굴이신 전하께서 일구이언을 하실 수 없습니다. 둘째로는 처음에 일본인이 들어가 채어하도록 허락한 것은 그 섬이 빈 섬인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주인이 있는 섬인 줄 아셨다면 출어하도록 도항증을 해 주셨겠습니까? 셋째, 모든 기록이나 거리나 역사적 기록으로나 그 섬은 조선 섬이 맞습니다.”
쓰나요시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내 조카 며느리가 참으로 영특하다”하고는, 기라에게 받아적게 하였다.
“막부의 쓰나요시는 동해바다의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속도인 만큼 이제부터는 일본인들이 함부로 드나들지 못하도록 타일러 경계하여 다시는 침범하지 못하도록 할 것을 약속하는 바이다.”
쓰나요시의 서계를 받은 용복은 기뻤다. 태수도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는 일본 어부들이 그 두 섬에 얼씬도 못할 겁니다” 정중하게 말하고 용복일행을 통신사처럼 극진히 대했다.
나가사키로 떠나던 6월7일, 돗도리현 태수는 대규모 호송 사절단을 준비시켰다. 호송사 둘을 세우고 의사와 요리사 외에도 병사 5명, 그리고 짐군 잡부 네 명 그리고 가마꾼까지 준비시켰다.
용복 일행은 육로를 통해 나가사키를 향해 출발하여 25일 만인 6월30일 나가사키에 도착했다. 나가사키에 도착한 배가 정박했을 때였다. 관리인 듯싶은 칼잡이 두 사람이 용복이 앞에 정중히 예를 하더니,
“저희 도주께서는 안핀샤 일행이 일본에 오신 것을 아시고 인사를 나누시길 원하십니다.”
“내가 여기 있는 것을 도주께서 어찌 아셨답니까?”
“그걸 어찌 모르시겠습니까? 그래서 저희는 이렇게 모시러 왔습니다.”
용복은 오히려 잘 되었다 생각했다. 이 도주에게서도 두 섬의 문제를 이해시키고 각서를 받는다면 더 큰 성과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나가사키 도주의 집에 도착하자 “이렇게 방문해 주시니 참으로 기쁩니다”하고 태수는 살살거린다.
용복이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 땅이오. 사실은 이 대마도도 조선 땅이오!” 설명하자 태수는 “위치로는 그러하오” 수긍하며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이 두 놈을 묶어라!” 소리치자 사무라이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준비했던 밧줄로 용복과 어둔을 묶었다. 눈 깜짝할 순간의 일이었다.
용복은 가슴 속에 품었던 서계부터 더듬어 보았다.
“이 놈 옷을 벗겨라.”
놈들은 용복의 옷을 벗기고 서계마저 빼앗았다.
“내가 너무 경솔했군.”
용복은 후회했다. 둘은 갇히고 말았다. 하지만 간수들은 용복의 인품을 알고는 되레 위로해 주었다.
석 달이 지났다. 용복은 생각에 잠긴다. 돗도리현 태수와 나카사키 도주, 그리고 대마도 도주가 한 편인 것을. 용복은 대마도로 끌려와 다시 감옥에 갇히고 말았다. 용복은 석 달이나 갇혀 있다가 왜관으로 보내졌다.
다치바나는 동래부사 한명상을 찾아갔다.
“부사, 우리 태수께서는 귀국의 어민들이 계속하여 월경하는 것을 유감으로 여기십니다” 하며 서계를 내밀었다.
“귀국 해변의 어부들이 우리 다케시마에 몰려와 망탕 고기를 잡고 약초며 대나무를 마음대로 잘라가니 참으로 유감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난 3월 안용복 박어둔이 40여 명의 어부들을 데리고 우리 다케시마에 들어와 마음대로 고기를 잡아 이 둘을 조사하고 양국의 화의를 위하여 보내드리오니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할 줄 압니다.”
동래부사 한명상은 조정에 장계를 올렸다. 숙종은 이 서계(대마도와의 외교문서)를 받아들고 중신들을 불러모았다. 총명하다고 소문이 난 젊은 교리 홍중하가 다소 언성을 높여 반대했다.
“왜놈들이 말하는 다케시마란 우리나라의 울릉도이옵고 마쯔시마는 울릉도이온데, 이를 지금 명확하게 해두지 않을 수 없나이다. 그렇게 되면 강원도 삼척이나 양양 울산 부산이 온전하겠나이까?”
“울릉도와 독도는 우리 땅이 분명하오나, 과거 3백 년 동안 거의 쓰지 않고 비워 둔 땅이옵니다. 쓰지도 않는 섬 때문에 이웃 나라와의 선린 관계를 잃게 되는 것은 옳은 계책이 아닌 줄로 아옵나이다.”
수염까지 허연 우의정 민암은 영의정을 편들고 나섰다.
“영상께서 하신 말씀이 옳다고 생각되옵니다. 작은 일로 크나큰 화를 부르는 것은 지혜있는 자의 계략이 아닌 줄로 아옵나이다.”
그러나 젊은 교리 윤지완은 역시 맹렬하게 반대했다.
“울릉도와 독도는 신라와 고려의 역사책과 중국 문집에도 엄연히 우리 조선 땅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간교한 왜놈들의 술책에 끌려가서는 안 될 줄 아옵나이다.”
예조에서는 판서 이하 신하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사흘이나 고심하여 복서를 만들었다. 그러나 복서에는 여전히 애매모호한 표현들이 많았다.
“우리나라 지경인 울릉도는 육지에서 아득히 멀기 때문에 마음대로 왕래하는 것을 백성들에게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바깥 먼 바다야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이번에 이 어선들이 감히 귀국 지경의 죽도에 들어가서 번잡케하였으나 무사히 송환시켜 주시니 고맙다 하지 않을 수 없나이다. 이제 범인 등을 법조문에 의하여 죄를 지우고 뒤로는 바닷가 등지에 규정을 엄하게 세워 단단히 단속하겠습니다.”
도적에게 제 고방 문고리를 열어 주는 꼴이었다.
유일집 접위관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풀려난 용복은 울릉도와 독도가 다시 왜놈들에게 넘어갔다는 보고를 받고 다시 두 섬을 거쳐 일본에 쳐들어갈 계획을 세웠다. 마침내 용복 일행 30여 명이 출발한 것은 4월 보름날 새벽이었다. 사흘째 되는 날에는 무사히 울릉도에 도착하였다. 용복은 유일부 이하 장정 수십 명 앞에 서서 왜놈들에게 일본말로 호통을 쳤다.
“네놈들을 다시는 이 섬에 오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돗도리현 태수가 관백의 명령을 받아서 나에게 약속한 일이 있다. 그런데 어찌하여 네놈들이 또 온단 말이냐? 저 놈들을 묶어라!”
그러자 왜놈 중 한 명이 “우리가 본래 다케시마로 간다는 게 길을 잘못 들었습니다. 곧 그리로 가겠습니다” 대꾸한다.
“이놈들! 네놈들이 다케시마라고 하는 것이 바로 독도다, 독도도 우리나라 섬이다!”
독도에 이르니 왜놈들이 밥을 짓고 있었다. 그러자 용복은 천둥치듯 소리쳤다.
“이 도둑놈의 새끼들아, 여기가 우리 영토 독도인데 너희 나라 다케시마라니 무슨 수작이냐?“
용복은 몽둥이를 휘둘러 솥을 부수면서 소리쳤다. 유일부와 뇌헌은 어부 10여 명을 잡고 나머지는 배를 타고 도망을 쳤다. 용복은 추격했다. 해질 무렵에야 옥기도에 닿았다. 먼저 달아난 놈들이 보고를 했는지, 해안에는 벌써 수십 척의 배들이 뜨고 군사들까지 포진하고 있었다.
용복은 흑포로 갈아 입었다. 용복은 조선 울릉 독도 감세관이란 깃발까지 높이 세운 후 유창한 일본말로 외쳤다.
“나는 울릉도와 독도의 세금을 받아들이는 감세관이다. 우리는 너희 성주를 만나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 땅이므로 함부로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을 다짐받기 위해서 왔다.”
성채로 들어서자 도주는 “멀리 오시느라 수고 하시었소.” 하고 반기었다.
“미리 알리지 못하고 온 것은 비례이오나, 귀 백성들이 무례하게도 우리 나라 울릉도 독도에 함부로 드나들기에, 항의하기 위해 왔소이다!”
“알았소이다. 백기주 태수에게 품하여 회답하리다.”
이래서 용복 일행은 관사에서 기다리는데 차일피일하며, 한 달이 지났다. 용복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돗도리현 태수를 찾아갔다.
“울릉도와 독도로 말하자면 우리나라 영토임이 당연함을 당신 나라 관백도 확실히 인정하고 있거늘 이제 와서 중간에 선 대마도주가 교활한 수단을 써서 관백의 이목을 흐리게 하고 있으니 이제 나는 직접 막부로 가서 관백을 만나 독도와 울릉도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놓고 토론하여 설득하겠소.”
태수는 아무 말도 못하였다.
“그러면 이 일은 양국간의 대사이니만큼 경솔히 다룰 수 없소. 역시 막부에 보고하여 그 회답을 기다려 처리하겠습니다” 하고 요령을 부리더니 여전히 시간만 지연시키려 했다. 용복이 더 참지 못하고 호통을 친다.
“이보시오! 우리 나라가 당신네 관백에게 보내는 쌀은 열닷말이 한 섬인데 중간에서 대마도주는 일곱 말을 한 섬으로 하여 여덟 말을 횡령하고, 포목은 삼십 척이 한 필인데 대마도주는 이십 척을 한 필로 하여 십 척을 착복하고 종이는 그 길이가 십 장한데 그것을 삼 장으로 잘라먹었오. 이 사연을 글로 적어 관백에게 올려주시오.”
꾀가 많고 수완 좋은 태수도 이번에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좋소! 대마도의 그런 불미스런 일을 알고서야 나도 외면할 도리가 없소.”
이 때였다. 갑자기 밖이 소란스러워지더니 신하 하나가 뛰어들어와 태수에게 고한다.
“호랑이도 제말 한다면 온다더니… 들여보내라!”
이때 문이 열리고 들어오는 것은 용복이 만났던 종의륜과 얼굴이 흡사한 것이 영락 없이 그 아비 종의진이었다.
“네 이놈!”하는 태수의 호령이 떨어지기도 전에 의진은 벌써 무릎을 꿇었다.
“마침 잘 왔다. 어찌하여 조선에서 관백에게 올리는 물자를 축내게 하며 종이와 비단까지 네 멋대로 잘라 먹는단 말이냐? 그게 사실이냐?”
태수의 호통에 의진은 머리를 땅바닥에 조아리며 통곡을 하다가 간신히 얼굴을 들며,
“죽을 죄를 졌습니다. 저는 죽어 마땅하오나 관백께서 아시는 날이면 어린 제 아들 의륜이마저 배를 갈라 죽일 것이 분명하오니, 이번 한 번만 용서해 주신다면 참으로 은혜가 백골난망이옵니다.”
울음 섞인 간청에 진정이 넘친다. 태수는 용복의 눈치를 살피며 누그러진 목소리로 이번에는 오히려 용복에게 호소하는 것이었다.
“안핀샤. 관백에게 글을 올리는 것은 그만둡시다. 제 잘못을 깨닫고 저렇게 뉘우치니 그럴 것까지야 없지 않겠소? 이제부터는 울릉도와 독도 문제에 대해서는 전과같이 행동하지는 못할 것이오. 내가 책임지리다.”
“그러나 내가 대마도주 아비에게 다짐을 받아야겠오”하고, 용복이 종의진에게로 얼굴을 돌리었다.
“대마도주의 아비는 들으시오. 이제 돌아가는 길로 울릉도 독도가 조선의 땅임을 관백에게 올리어 허락을 받고 관백의 서계를 받아 우리 조선 임금께 올리시오.”
“예. 명심하리다!”
“그렇게만 해준다면 다 없었던 걸로 하겠오.”
“이 은혜 죽도록 잊지 않겠습니다, 장군.”
사흘이 지나서야 배는 양양에 닿았다. 양양에서 자수한 용복과 그 일행은 한양으로 압송되었다.
“너는 우리나라 일개 어부로 나라의 지경을 넘어 일본으로 돌아다니며 흑작질을 하여 양국의 우호하는 일을 어지럽게 하였으니 죄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상세히 고해라.”
심문은 시작되었다. 용복은 그동안 일본에 세 번이나 가서 있었던 일을 다 털어놓았다. 조정은 안용복 심문으로 발칵 뒤집혔다. 어떤 관리들은 용복의 죄가 참수하고도 남는다고들 했다.
가을, 겨울이 가고 정이월이 되어 봄기운이 돌 때였다. 일본에서 서계가 왔다.
“관백께서는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 땅이라 하시고 일본 백성이 다시는 그 섬에 가지 못하도록 금하였사오니 저희 대마도에서도 두 섬에는 가까이 하지 못하도록 백성들에게 금령을 내렸나이다.”
일본에서 정식으로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 섬으로 인정하겠다는 관백의 친서였다. 이 서계를 보자 용복을 죽여야 한다고 소리 높이 외치던 조정 대신들도 누그러졌다. 결국 용복을 귀양 보내는 일로 마무리 되었다. 용복에게는 즐거운 귀양길이었다. 용복은 걷다가 다시 동해바다를 바라본다. 푸른 바다에 이는 파도가 꽃 없는 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 꽃들은 용복을 보며 하얗게 웃고 있었다.
<마침>
그 후 수백 년이 지나 일본이 조선을 합병할 때에도 용복의 힘으로 만들어진 이 때의 이 문서가 있어 일본은 울릉도와 독도를 저희 본토라고 주장하지 못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