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문순 MBC 사장 | ||
올해 초 MBC의 전망에 대해 기자와 이야기하던 한 MBC의 고위 관계자는 이렇게 단언한 바 있다. 지난 2월 말 세간의 화제가 됐던 최문순 신임사장 취임이 있기 두 달 정도 전이고,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강릉MBC와의 갈등이 표면화되기 석 달 전에 있었던 일이다.
이는 최근 강릉MBC 사태의 본질이 최문순 체제에 대한 계열사의 도전과 이에 대한 응전이라는 세간의 시각과는 달리 MBC 본사와 지역 계열사 사이의 구조적인 문제들이 표출된 것이라는 점을 시사하는 발언이다.
비록 사건의 발단은 최문순 체제의 인사에서 비롯됐지만, 그 근본 모순은 MBC를 포함한 지상파 방송사의 위상약화라는 MBC 본사 자체의 위기의식과 그 다른 한편에서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관철하려는 지역계열사 경영진과 소액주주의 저항 사이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강릉MBC 사태의 발단은 지난 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2월25일 사회적인 관심을 받으며 ‘40대 사장’으로 MBC의 CEO 자리에 오른 최문순 사장은 취임 제일성으로 ‘고강도 개혁’ 추진을 천명했다. 그 내용은 MBC 내부에서 문제의식은 공유하고 있었으나 누구도 감히 건드리지 못했던 민감한 사안들에 대한 것이고, 그 가운데에는 19개 지역 계열사와의 관계에 대한 부분도 포함되어 있었다.
3월7일, MBC 본사는 ‘최문순호’ 출범 후 약 10일 만에 18개 지역계열사 사장단 인사를 단행했다. 이에 앞서 MBC 본사는 2월 말에서 3월 초 사이에 대대적인 인사를 단행해 본부장에서 국장급까지 40대 인사들이 대거 진출하는 파격을 선보였다. 계열사 사장단 인사 역시 이 같은 세대교체 기조 위에 서 있었으며, 3월5일 방송문화진흥회(이사장 이상희)에 19개 지역 계열사 사장단 인사 내정자 명단이 보고된 후 3월7일부터 시작된 각 지방계열사 주주총회를 통해 신임사장 임명이 시작됐다. 이 인선에서 MBC 19개 지역 계열사 중 2개사를 제외한 17개 지방계열사 사장단이 전원교체 됐으며, 강릉MBC에 대해서는 조승필 MBC 감사부 위원(49)이 신임사장으로 임명됐다.
그러나 3월10일 열릴 예정이었던 강릉MBC 주주총회는 2대 주주인 최돈웅 전 한나라당 의원측 반발로 연기됐다. 최돈웅 전 의원은 MBC 본사가 51%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강릉MBC의 지분 49%를 가진 2대 주주이다. 최 전 의원은 총회 절차상의 문제를 들었지만 실제로는 김영일 사장을 교체하려는 본사 요구에 반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김 사장은 이미 지방 계열사 사장단 교체 과정에서 사표를 제출했었다. 그러나 애초 예정된 주총이 무산되자 사퇴를 번복하고 사장직을 고수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즉 1대 주주인 MBC 본사의 결정을 지역 계열사의 2대 주주와 전 경영진이 함께 거부한 것이다. 당시 본사는 이 소식이 관심거리가 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며, 대응방안을 고심하게 됐다.
한편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강릉지부는 지난 3월28일 총회를 열어 찬반투표를 거쳐 김영일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뒤이어 MBC 본사 노조도 4월11일 ‘김 사장의 퇴진만이 사태해결의 본질’이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본사 경영진-본사 노조-강릉MBC 노조 대 강릉MBC 경영진-최 전 의원’이라는 구도가 형성된 것이다.
▲ 2대 주주 최돈웅 전 의원(왼쪽), 김영일 강릉MBC 사장 | ||
12일 주총 이후 MBC 본사는 강경대응노선을 본격화하고 지난 18일 강릉MBC에 ‘MBC 네트워크 정상화 조치’라는 제목의 공문을 보내 ▲지난 2004년 5월 체결된 ‘MBC 방송 네트워크 협정’을 4월29일부터 해지 ▲4월20일부터 프로그램 공급을 제외한 협력관계 중단 ▲프로그램 공급 중단도 추후 검토 ▲강릉MBC의 취재권역에 타 계열사의 취재인력 배치 ▲지상파DMB를 포함한 모든 신규사업에서 강릉MBC 배제 등 다섯 가지 정상화 조치를 통보했다. 이는 MBC 본사는 강릉MBC TV·라디오 프로그램의 85% 가량을 공급하고 있어 만약 MBC 본사가 프로그램 공급을 중단할 경우 강릉MBC는 파행방송이 불가피한 상황을 감안한 강력한 조치였다.
그러나 강릉MBC도 “2년 단위로 갱신되는 네트워크 협정을 일방적으로 중단하는 것은 공정거래법 상 문제가 있다”며 굽히지 않고 대응하겠다고 나서 갈등이 더욱 심화됐다.
이 같은 가운데 한나라당은 지난 4월20일 논평을 통해 “강릉MBC에 대한 사형선고이자 점령군 이상의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르는 권한남용”이라며 최문순 사장을 비판하는 등 강릉MBC 사태는 정치권으로까지 비화됐다. 이어 전국언론노조 강릉MBC지부 비상대책위원회가 김영일 사장이 판공비 일부를 안마·스포츠마사지 등에 사적으로 사용했다고 폭로하고, 이어 본사는 본사 감사팀을 강릉 현지로 파견해 특별감사를 실시하는 상황까지 오게 됐다.
이처럼 MBC 본사와 강릉MBC 양사의 경영진, 그리고 그 종사자들 사이의 갈등은 좀처럼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특히 MBC 본사의 고민은 더욱 깊다. MBC는 지난 해 광고 매출의 급감으로 당기순이익이 3백억원에도 못 미쳤으며, 이는 전년도 6백억원 대비 50% 이상 감소한 금액이다.
올해 역시 1분기 광고매출액이 전년대비 3백억원 가량 감소해 위기감은 고조되고 있다. 시청률 역시 보도·시사교양·연예오락 모든 부문에서 열세에 놓여 있고, 조기 단행이 예상됐던 조직개편도 지지부진한 상태이다. 조직개혁에 대한 경영진의 위기감이 높아진 MBC 본사로서는 각 계열사들의 1대주주로서의 권한과 관계설정을 양보할 수 없는 상태다.
결국 MBC 본사로서는 위기극복의 첫 시험대로 강릉MBC 문제를 받아들이고 있으며, 단지 한 계열사와의 문제가 아닌 체제의 향방을 가름 짓는 사안으로 대처하고 있어 현재의 강경노선은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관측된다.
선호 미디어오늘 기자 arioso@media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