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가 내놓은 형사소송법 개정안으로 인해 검찰이 위기감에 휩싸였던 지난 4월28일 김종빈 검찰총장(가운데)과 검찰 수뇌부가 서울 대검찰청에서 점심식사를 위해 구내식당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그리고 일년이 경과한 지난 4월 말, 그의 전언은 사실로 드러났다. 대통령 자문기구인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위, 공동위원장: 한승헌 변호사·이해찬 총리)가 검찰의 수사권을 대폭 축소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서초동 검찰청사가 발칵 뒤집혔다.
검찰 수뇌부는 긴급회의를 가졌고, 일선검사들은 내부 통신망을 통해 사개추위의 개정안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지난 99년 평검사들이 대전 법조비리 수사결과에 반발해 연판장을 만들었던 ‘검란(檢亂)’에 이어 ‘제2의 검란’으로 비화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강하게 불거진 것이다. 특히 검찰 수뇌부에선 상황이 나빠지면 ‘집단 사직서 제출방안’을 심각하게 검토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검찰과 사개추위가 정면충돌하게 된 형사소송법 개정안의 핵심쟁점은 두 가지. 우선 현행법은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 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사개추위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법정에서 유무죄를 직접 따져야한다는 입장이다. 다시 말해 피의자가 검찰에서 작성한 신문조서를 법정에서 부인하면, 증거로 제출할 수 없다는 얘기다. 검사의 신문조서가 휴지조각으로 전락하는 셈이다. 특히 뇌물사건 수사는 큰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뇌물사건 특성상 현금이 오가는 경우가 많은데, 피의자가 검사가 수사과정에서 자백을 했어도 법정에서 부인하면 증거로 채택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쟁점은 검사가 법정에서 피고인을 직접 신문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하지만 사개추위의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2007년부터는 법정에서의 피고인 신문을 없애고, 필요하다면 검사가 증인석에서 실시해야 한다는 것. 이를 현행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인 검찰로서는 당연히 반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초래됐다.
이에 김종빈 검찰총장이 전면에서 반발했다. 그는 지난 28일 “인권보호도 필요하지만 사회질서 유지가 먼저 요구된다”며 “사개추위 안대로라면 공직부패수사처(공수처) 등 어떠한 수사기관을 만들어도 강력한 수사가 불가능해 사회부패와 강력범죄에 수사력이 못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법원과 검찰, 변호사, 재야법조계, 학계 인사들이 참여하고 있는 사개추위의 개정안에 대해 불만을 표출했던 것이다. 지난 4월2일 퇴임식을 가진 송광수 전 검찰총장 역시 이번 사개추위 안에 대해 강하게 비판한 것으로 전해졌다.
▲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건물 | ||
그런데 이 같은 검찰 안팎의 심상치 않은 반발기류가 집단행동으로 표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 소식통은 “검찰 수뇌부에서 상황이 나빠지면 연쇄적으로 사직서를 제출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우선 법무부 장관이 사직서를 제출하고, 그래도 상황이 변하지 않으면 검찰총장→고검장→지검장→평검사→일반직 순으로 전체 검찰 직원이 사직서를 제출하겠다는 것이다”고 전했다. 이는 검찰이 배수의 진을 치겠다는 의지로 해석되는 대목이어서 주목된다.
이 같은 검찰의 강한 반발 의지는 비단 형사소송법 개정안 때문만은 아니다. 여당이 대통령 직속인 부패방지위원회 산하에 별도의 공수처를 신설하려는 것도 검찰의 심기를 불편케 했다. 여기에 경찰이 수사권 독립을 요구하는 점도 검찰로선 마뜩지 않다.
이처럼 검찰권을 축소하는 기구와 제도가 신설될 조짐에 불만이 가득 차 있던 와중에 사개추위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알려지면서 그동안 쌓였던 불만이 한꺼번에 폭발했다는 게 검찰 안팎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사개추위는 이와 관련해 “검사의 신문조서 중심으로 재판을 하다 보면 검찰도 자백에 의존하는 수사를 하게 된다. 그러다보면 강압 등으로 피의자에 대한 반인권적 행위가 자행될 수도 있다”며 “검찰이 지나치게 엄살을 떨고 있다”고 불만을 표출했다.
검찰은 현재 사면초가에 처해 있는 상황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4월21일 법무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검찰이 갖고 있는 제도 이상의 권력을 변화의 흐름 속에서 내놓을 것은 내놓아야 한다”며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 문제는 서로 조직의 영역이 걸린 문제이니까, 아마 치열한 것 같은데 어느 때인가 대통령이 한번 참여해서 토론하고 마지막 결론을 낼 필요가 있지 않느냐”고 밝혔다.
그렇지만 노 대통령은 경찰의 수사권 독립에 대해 긍정적이다. 경찰의 수사권 독립 요구를 수용할 가능성이 매우 큰 것이다. 그렇다고 검찰이 노골적으로 항명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여기에 여당에서도 공수처 신설 방침을 못 박고 있다. 법원도 전면에 나서지 않고 있으나, ‘공판중심주의’에 대해선 동의하고 있다. 검찰이 공판중심주의 자체를 반대하진 않지만, 사개추위의 논의가 확정된다면 검찰 수사권은 자연히 축소될 수밖에 없는 것.
그렇다고 해서 국민 여론이 검찰에게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지도 않다. 검찰의 반발에 대해 ‘조직 이기주의’라고 비난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불법대선자금에 대한 원칙적인 수사로 모처럼 국민의 ‘총애’를 받았던 검찰이 ‘개혁’을 거스르는 보수 조직으로 비치는 것 역시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검찰은 지난 4월27일 수도권 검사장 회의를 가진 데 이어 조만간 전국 검사장 회의와 평검사 회의를 열기로 했다.
사개추위는 오는 5월9일 차관급 회의에서 형사소송법 개정 초안을 의결할 예정이다. 안건이 의결되면 일주일 뒤인 16일 장관급 전체회의에서 확정된다. 이후 법안은 법무부로 이송된 뒤 국회에서의 의결 절차를 밟게 된다. 그런데 검찰은 사개추위 안을 확정하기로 한 5월16일의 사개추위 장관급 전체회의를 연기해줄 것을 요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종빈 체제가 출범한 지 한 달도 안 돼 검찰은 호된 시련을 맞고 있다. 검찰은 비단 사개추위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에 대해서만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검찰권이 축소되면서 자칫 강력 범죄나 뇌물 사건 등에 대한 수사에 큰 장애가 발생할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개추위가 ‘인권 대 반인권’ ‘개혁 대 반개혁’ 구도로 여론몰이한다며 못마땅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