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귀국이 임박하면서 대우그룹 해체에 관여했던 DJ정부 관계자들에게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진은 지난 99년 3월 전경련 회장단 모임에 참석한 김 전 회장. | ||
사법적인 판결은 종결됐지만 역사속으로 사라진 대우그룹의 해체과정은 여전히 의문투성이다. 수년째 수사가 이뤄졌지만 정작 그룹총수였던 김 전 회장이 없이 진행된 수사는 의문만 키울 수밖에 없었다.
대우그룹이 해체되던 김대중 정부 당시 대우사태 처리에 관여한 정부 고위관료는 강봉균 재경부 장관, 이헌재 금감위원장, 이기호 청와대 경제수석, 그리고 채권단에서는 이근영 산업은행 총재였다. 대우그룹의 전 관계자들은 한때 ‘세계경영의 전도사’로 불리던 김 전 회장을 ‘낭인’으로 만든 그들을 ‘대우그룹 오적’으로 부른다. 그들은 의도했든 아니든 김 회장과 세상에 둘도 없는 악연을 맺은 사람들이 된 것이다.
지난달 29일 대법원은 대우그룹 ‘분식회계’ 사건과 관련해 사상 최고액인 23조원대 추징금 부과를 확정했다. 대우그룹 임원 7명의 유죄가 확정됐고 해외 도피중인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은 사실상 공범으로 인정됐다.
대우그룹이 해체되던 1999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정부의 고위관료들은 김 전 회장과 악연을 맺는 비운을 겪었다. 김 전 회장도 수년 전 미국 경제주간지 <포천>을 통해 “김대중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걸어 나가라고 했다. 그러면 자동차만은 경영할 수 있게 해 주겠다고 약속했다”며 불편한 심경을 드러낸 바 있다.
▲ 김대중 전 대통령(왼쪽), 강봉균 전 재경부 장관 | ||
DJ와 김 전 회장은 원래 관계가 좋았다. 두 사람이 인연을 맺은 것은 80년대 초. 김 전 회장이 1980년 ‘서울의 봄’ 때 유명세를 탔던 DJ를 유심히 지켜봤다는 말도 있고 김 전 회장이 전두환 정권 시절에 재야 인사였던 DJ를 먼저 불러 만났다는 주장도 있다. 김 전 회장이 DJ를 지원한다는 사실은 94년 이후 꾸준히 나왔다.
DJ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김 전 회장은 경제부총리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DJ가 경제 경험을 두루 갖춘 인물을 물색한다는 말이 떠돌면서였다. 그러나 이러한 두 사람의 ‘좋은 관계’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대우 몰락과정에서 생긴 악연 중 최고는 역시 ‘김우중-이헌재’가 아닐 수 없다. 한때는 동료이자 동지였던 두 사람의 인연은 결국 대우그룹 해체를 겪으며 ‘둘도 없는 원수’로 변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198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두 사람의 관계는 그룹 총수와 그를 보좌하는 비서실 상무였다. 재무부 사무관으로 출발해 10년 만에 부이사관(재정금융심의관)에 오를 만큼 고속승진을 거듭하다 ‘낙마’한 이헌재를 거둬준 사람이 바로 김 전 회장이었다. 게다가 김 전 회장(52회)은 이 전 장관(58회)의 경기고 6년 선배였다.
한솥밥을 먹던 두 사람은 정확히 16년이 흐른 1998년 전경련 회장과 금융감독위원장으로 다시 만나게 된다. 한 사람은 재계 대표이자 부실기업주였고 또 한 사람은 정권이 바뀌면서 장관으로 등극, 기업의 구조조정을 지휘하는 위치에 있었다. 1999년 7월 이 위원장은 16년 만에 다시 만난 ‘한때 상관’의 재산과 직함을 내놓게 하는 악역을 맡는다.
1999년 늦여름 대우사태를 처리할 당시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정부 고위관료에는 강봉균 재정경제부 장관, 이기호 전 청와대 경제수석, 채권단에서는 이근영 산업은행 총재 등이 있었다. 물론 대우 사태의 처리는 이들 고위관료들보다는 김대중 정권의 핵심 세력들이 결정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누구인지는 아직까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 (왼쪽부터)이헌재 전 금감위원장, 이기호 전 청와대 경제수석, 이근영 전 산업은행 총재 | ||
이와 관련, 김 전 회장은 언젠가 본인의 회고에서 “‘수출지원 금융을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내가 말문을 열자 ‘세상이 바뀌었는데 정부가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겠느냐’며 강 수석이 딴전을 피웠다. 그래서 내가 ‘강 수석(98년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 당신 뭐하러 그 자리에 앉아 있나’라며 호통을 쳤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을 맡고 있던 이기호 수석은 12개 대우그룹 계열사로부터 워크아웃 신청서를 받아낸 주인공이었다. 당시 이 수석은 “너희들(대우그룹) 다 죽는다. 만약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험한 꼴을 볼 것”이라 협박(?)하며 워크아웃 신청서 제출을 종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신청서 한 통으로 대우그룹의 ‘세계경영 30년’은 막을 내리게 됐다.
이근영 당시 산업은행 총재는 채권단 대표로 대우그룹 해체에 관여했다. “김 전 회장의 출국을 권유한 장본인”이라는 의혹도 받고 있다. 김 전 회장의 측근들은 “대우그룹 해체가 진행되던 1999년 여름에 정부 고위 관료와 채권단 관계자들로부터 외유권유를 여러 차례 받았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 전 총재는 이러한 사실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대우그룹이 해체된 지 5년여. 대우그룹, 김 전 회장과 악연을 맺었던 사람들은 어떤 모습일까. 2003년 3월 금감위원장을 물러난 이근영 전 위원장은 최근까지도 한화그룹의 대한생명 인수로비 의혹, 카드대란 등과 관련, 사법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 게다가 지난 2003년에는 현대그룹의 대북송금 사건에 관계된 사실이 밝혀져 실형까지 살았다. ‘피를 묻힐 수밖에 없다’는 자신의 말처럼 된 것. 지난해 초 사면된 그는 현재 법무법인 세종의 고문으로 일하고 있다.
2003년 초를 뜨겁게 달궜던 ‘대북송금 특검’의 불똥은 이기호 전 수석에게도 튀었다. 2003년 9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은 그는 지난해 5월 사면·복권됐다.
김 전 회장과 최고의 악연을 맺었던 이헌재 당시 금감위원장은 올해 초 부동산 투기 의혹이 불거지면서 경제부총리에서 낙마했다. 초대 금감위원장과 두 차례에 걸쳐 경제부총리를 지낸 화려했던 공직생활의 끝은 그리 좋지 못했다.
당시 재정경제부 장관이었던 강봉균 전 장관은 한국개발연구원 원장을 거쳐 2003년 11월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 출마, 당선되며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현재 국회 예선결산위원장을 맡고 있다.
당시 관계자들은 김 전 회장의 귀국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당시 재경부 장관이었던 강 의원은 <일요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귀국한다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본인이 들어와서 조사를 받아 공과를 평가받아야 한다. 당시 정부가 대우그룹 해체에 나선 것에 대해서는 전혀 후회가 없다. 당연하고 순리를 따른 조치였다. 국민들과 언론이 대우그룹 해체에 대해 여전히 의혹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당시 상황을 정확히 모르기 때문이다. 최근 나오는 사면설도 모두 내용을 잘 몰라서 하는 소리다. 만약 다시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똑같은 방식으로 처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