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위)과 헌법재판소 건물. | ||
그 태풍의 징조는 지난주 여당이 신임 헌법재판관 후보로 추천한 조대현 변호사를 둘러싼 논란에서 느껴진다. 노무현 대통령과 사법시험 동기(17회)인 조 변호사에 대해 정치권과 사회단체가 ‘여당과 야당’, ‘친노와 반노’, 또는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반대와 찬성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조 변호사를 둘러싼 논란은 사법부 대변동기의 격돌을 앞두고 벌어지는 일종의 전초전인 셈이다.
열린우리당은 지난 6월20일 임대소득세 탈루 의혹으로 중도하차한 이상경 전 헌법재판관의 후임으로 조대현 변호사를 추천했다. 전임 이상경 재판관이 국회 추천몫(당시 여당이던 민주당)이어서 후임 선출권은 현 여당에게 있다. 조 변호사는 27일 국회 인사청문회와 본회의 표결을 통과하면 임기 6년의 헌법재판관으로 정식 취임하게 된다.
충남 부여 출신의 조 변호사는 1980년 서울민사지법에서 판사생활을 시작해 법원 내 요직을 두루 거쳤다. 그러나 법원행정처 인사관리실장 시절인 2003년 8월 대법관 제청 문제를 놓고 소장 판사들이 연판장을 돌린 ‘사법파동’의 책임을 지고 2004년 2월 퇴임, 법무법인 화우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엘리트 법관 출신인 데다 강직한 성품으로 법조계 선·후배들의 신망을 받는 조 변호사는 헌법재판관 후보에 충분히 오를 수 있는 인물이어서 법원 내에서는 여당의 결정을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법원 바깥에서는 보수는 보수대로, 진보는 진보대로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에 따른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가장 큰 논란거리는 조 변호사와 사시 동기인 노무현 대통령과의 밀접한 인연이다.
노 대통령의 사법연수원 시절 친밀했던 인사들로 구성된 ‘8인회’ 멤버인 조 변호사는 노 대통령이 과거부터 ‘동기 중 가장 존경하는 법조인’이라는 얘기를 했다고 전해진다. 특히 지난해 3월 헌재의 대통령 탄핵심판 때는 노 대통령측 변호인단에 직접 참여했다. 또 수도이전 헌법소원 사건에서는 그가 속해 있는 법무법인 화우가 정부측 변호인단을 맡기도 했고, 노 대통령의 사위가 화우의 변호사로 있다.
이처럼 조 변호사가 노 대통령과 인연이 깊다보니 한나라당은 곧바로 “대통령의 뜻을 따르는 사람을 사법부에 포진시키려는 ‘코드인사’”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특히 한나라당 수도분할반대투쟁위 소속 의원들은 “수도이전 헌소에서 정부측 대리인이던 조 변호사가 최근 헌재에 청구된 행정도시특별법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을 맡게 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수도분할반대 범국민운동본부 회원들도 지난 6월22일 열린우리당 당사 앞에서 조 변호사의 헌법재판관 추천을 철회하라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열린우리당은 “수도이전 헌소 때 조 변호사는 자신이 파트너로 있던 법무법인 화우가 정부측 변호인단을 맡게 돼 청구서에 형식적으로 이름만 올랐을 뿐 직접 변론에 참여한 바가 없다”고 반박했다. 조 변호사를 잘 아는 한 고위 법관도 “조 변호사가 ‘8인회’ 멤버였다고는 하나 법관 생활을 시작한 이후 노 대통령과 특별한 친분이 없고, 특히 성품상 ‘코드판결’은커녕 오히려 고집스러운 소신 판결을 할 사람”이라며 비판을 일축했다.
한편 진보적 그룹은 다른 측면에서 불만을 터뜨린다. 여당 내의 진보적 의원들은 “왜 민변 출신을 추천하지 않았느냐”며 지도부에 반발하고 있다. 20여년 넘게 법원 내 요직을 거친 경력에서도 보듯 조 변호사를 진보 내지는 개혁적 법조인으로 보긴 어렵다. 실제 일선 법관 시절 판결도 보수적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번 기회에 ‘보수의 아성’인 사법부를 개혁하겠다는 여권의 진보적 그룹에게는 성이 차지 않는 선택인 것이다.
법원노조도 “법원의 엘리트코스만 밟아온 조 변호사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과감한 판결보다는 보수적인 판결로 일관해 개혁성향의 헌법재판관이 임명되기를 바라는 국민적 여망에 부적격”이라며 반대 기류에 가세했다.
이처럼 헌법재판관 한 명의 선출을 놓고 각 사회세력의 충돌이 첨예한 것은 지난해 헌재의 대통령 탄핵심판과 수도이전 헌소, 대법원의 선거법과 국가보안법 관련 재판 등을 통해 사법부가 우리 사회에 미치는 막강한 영향력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여기에 내년까지 사법부 양 최고법원의 수뇌부 3분의 2가량이 한꺼번에 바뀌게 되는 대격동기가 도래한 것이다. 대법원의 경우 9월 최종영 대법원장을 필두로 10월에는 유지담·윤재식·이용우 대법관이, 11월에는 배기원 대법관, 내년 7월에는 강신옥·이규홍·이강국·손지열·박재윤 대법관이 퇴임한다. 헌재는 이번 조대현 재판관 임명 이후 내년 9월 윤영철 소장을 비롯, 김경일·김효종·권성·송인준 재판관의 임기가 만료된다. 여권이나 개혁세력들은 이들이 나간 빈자리를 최대한 진보적인 인사로 채우려 할 것이고 야권이나 보수층들은 이를 적극 저지하려 들 것이어서 양측의 충돌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 가운데 ‘태풍의 눈’은 대법관 13명과 헌법재판관 3명의 제청권을 갖는 차기 대법원장이 누가 되는가다.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이미 차기 대법원장을 놓고 하마평이 무성하다. 개혁적 인사로는 최병모 전 민변 회장, 박재승 전 대한변협 회장, 강금실 전 법무장관 등이, 전통적인 법원측 인사로는 손지열 대법관과 조무제 전 대법관, 그리고 중도 인사로 대통령 탄핵심판 때 변호인이었던 이용훈 전 대법관 등이 거론되고 있다.
‘노 대통령이 확실한 자기 사람을 대법원장으로 지명할 것’이라는 얘기부터 ‘법원이나 보수층의 반발을 감안, 중도적 인물을 선택할 것’이라는 분석까지 나오고는 있지만 아직은 아무도 태풍의 진로를 제대로 예상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다음달부터 차기 대법원장 자리를 놓고 사회 곳곳에서 주장들이 쏟아지면 거대한 태풍이 실체를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이진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