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월19일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신임 허준영 경찰청장에게 계급장을 달아주고 있다. 노 대통령은 경찰의 정보력을 매우 신뢰한다고 한다. | ||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나서 검찰과 경찰 수뇌부에게 발언 자제를 지시할 정도로 심각한 갈등양상을 빚고 있는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의 핵심은 경찰의 정보력에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검찰이 수사권 이양을 거부하는 진짜 이유는 경찰의 막강한 정보력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종빈 검찰총장은 최근 수사권 조정 문제와 관련, “전국적인 정보망을 갖춘 경찰조직에 수사권까지 부여한다면 경찰은 거대 권력기관이 될 것”이라고 경계감을 표시했다. 실제로 노 대통령 역시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 등 사정기관의 정보 중 경찰의 정보를 가장 신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전국적인 정보망을 이용, ‘저인망식’으로 밑바닥을 훑고 있어 정보가 구체적인데다 국민과의 체감도가 높다는 특징이 있다. 검찰이 두려워하고 노 대통령이 가장 신뢰한다는 경찰의 정보능력은 과연 어느 수준일까.
2005년 현재 경찰인력은 모두 14만5천4백 명. 이 중 전·의경을 제외한 경찰관은 9만3천2백 명이며 정보 분야 인원은 3천7백여 명이다. 1만2천여 명에 달하는 사법 경찰관(교통, 경비, 생활안전과 경찰 제외)에 이어 경찰 조직 중 두 번째로 많은 인원이다.
정보인원 면에서 검찰은 비교가 안 된다. 경찰의 정보인원은 검찰의 총 수사 인력 3천5백 명(검사 1천5백명)보다 더 많다. 검찰의 정보인력은 2백여 명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고위 관계자는 “인원이 많다고 정보가 우수한 것은 아니지만 정보 수집, 분류, 분석 측면에선 우리가 검찰을 압도하고 있다”며 “정보력 싸움에선 백전백승”이라고 자랑했다.
그는 “청와대, 정부청사, 주요 기관장 관사 등의 외곽경비와 주요 인사들의 경호를 경찰이 맡고 있다. 누가 언제 들어오고 나갔고, 무슨 말을 했는지 알 수 있는 기관은 경찰이 유일하다”며 “주요 인사들의 동태를 하나도 빠짐없이 파악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경찰”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수사권 조정문제를 둘러싼 검·경간 전면전을 벌어질 경우 경찰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관측이다. 상대기관에 대한 첩보 및 비리를 수집하는 정보력에서 경찰이 훨씬 유리한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경찰 일각에서는 이 같은 비상 상황을 염두에 두고 검찰 인사들의 비리를 수집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실제로 검찰이 경찰 고위직 비리를 폭로하려다가 경찰이 적잖은 검찰 비리를 포착하고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 중단했다는 미확인 소문도 들린다.
경찰정보는 `밑바닥 정보’로 통한다. 전국적인 조직에 기반한 저인망식 정보수집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의 정보수집 기초 단위는 일선 경찰서다. 정보 1, 2계로 돼 있는 일선서 정보과는 보통 20~30명의 경찰이 배치돼 있다. 정보 1계는 지원업무와 단순 채증을 담당하며 통상 4~5명이 소속돼 있다. 나머지 인원은 정보 2계 소속으로 현장에서 정보수집 활동을 벌인다. 일선서 정보과 직원 1명이 1개 동(洞)을 담당하고, 관내 언론사, 기업, 노동, 시민단체 등 주요기관을 담당하는 별도의 조직이 존재하는 경찰서도 적지 않다. 이들은 하루에 보통 2개 이상으로 정보 보고서를 작성하며, 분량은 1건당 1페이지 정도다.
서울 한 경찰서 정보과장은 “모든 경찰관이 한달에 2건 이상의 올리는 견문(見聞) 보고도 중요한 정보자료”라며 “견문보고에는 범죄정보는 물론, 민심 및 여론 파악, 주요 인사 동향 등이 들어간다”고 말했다.
일선 경찰서는 지방경찰청과 경찰청으로부터 하루에 4~5건의 `긴급 정보요청’(SRI―Special Requirement for Information)을 하달받는다. 긴급히 파악해야 할 민심동향이나 주요 단체나 기관들의 동태 파악이 대부분이다.
지방경찰청과 경찰청은 경제단체와 재계, 정당, 시민단체 등 굵직한 단체를 담당하는 별도특수팀을 가동중이며, 이곳에는 ‘정보통’으로 이름을 떨친 베테랑들이 배치된다.
경찰이 파악한 정보는 매일 청와대 치안비서관을 통해 국정상황실에 보고된다.
국정상황실장은 경찰정보뿐 아니라 국정원, 검찰 등 각 기관이 보고한 정보들을 취합, 필요한 핵심정보만을 선별해 대통령에게 직보한다. 또 외교안보 관련 정보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경제 정보는 경제수석 및 보좌관에게, 치안 정보는 시민사회수석에게 전달한다.
열린우리당 지도부 및 각 부처 장관 등 여권 핵심들도 필요한 정보를 공유한다. 이 같은 핵심정보는 당·정·청의 60여 명만에게 제공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경찰 정보는 구체적이고 민심파악을 위한 유용한 정보로 국정운영에 많은 참고가 된다”면서 “이전에는 국정원 정보를 많이 신뢰했지만 국정원이 해외 정보에서 집중하면서 국내정보는 경찰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경찰 정보 중 중요한 정보나 확인이 필요한 정보는 별도 라인을 통해 청와대가 직접 관련기관을 통해 챙겨보는 일도 있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우리 정보는 대민접촉과 거대 정보망을 통해 수집된 정보인 만큼 다른 정보기관에 비해 신뢰도가 높다”며 “아마 옆집의 숟가락 숫자도 파악하려면 알 수 있을 정도”라고 자랑했다.
시대변화에 따라 정보형태도 변하고 있다. 이전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는 학원과 노동계나 주요 정치인의 동태 파악이 제1급 정보였지만 지금은 정부정책에 대한 민심이나 경제흐름 등이 정보 보고서의 맨 윗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서울 일선 경찰서의 한 정보과장은 “참여정부 들어 정치정보 수집은 아예 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다”며 “이에 따라 정보수집 행태도 많이 변했다”고 밝혔다. 국회와 정당 및 시민·노동단체를 담당하는 정보형사는 있지만 과거처럼 ‘약점을 캐는’ 그런 정보수집은 없다는 것이다. 경찰의 대학출입은 90년대 이후 완전히 중단됐다. 대신 최근에는 경제단체와 기업, 노동, 시민단체 등의 경제정보와 정부정책에 대한 민심 및 여론 동향 파악이 경찰의 주요 정보수집 활동이 됐다.
이른바 `망원(정보원)’을 활용하던 정보형태도 사라진 지 오래다. 정보과 한 형사는 “이전에는 이곳 저곳에서 망원을 이용할 수 있는 여윳돈이 있었지만 지금은 옛날 얘기가 됐다”면서 “그래도 정권의 주구라는 비아냥을 듣지 않고, 나름대로 생산적인 정보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보람은 있다”고 말했다.
유영욱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