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빈 검찰총장(가운데)과 검찰 간부들. 형소법 개정을 둘러싼 사개추위와의 대립에서 극적인 ‘역전승’을 일궈낸 검찰이 여세를 몰아 경찰과의 수사권 조정 문제에 전력을 쏟고 있다. | ||
이제 모든 전력을 나머지 한쪽 전선(경찰과의 수사권 대립)에 집중할 수 있게 된 검찰은 이 싸움에서도 역전승을 일궈내기 위해 치밀한 작전을 진행하고 있다. 50년 검찰 역사상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던 검찰이 두 전선의 싸움을 모두 이겨내고 기사회생할 수 있을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지난 6일 사개추위 ‘5인 소위원회’는 형사소송법 개정안 핵심쟁점에 대한 합의안을 마련했다. 사개추위가 추진하는 형소법 개정은 기본적으로 공판중심주의와 피고인 방어권 강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 같은 원칙을 바탕으로 사개추위는 지난 4월 검찰 신문조서의 법정 증거능력을 부정하고 피고인 신문을 폐지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형소법 개정안 초안을 마련했다.
그동안 ‘무소불위’로 불린 검찰권을 견제하고 피고인의 인권을 보호한다는 명분에, 현 정권이 검찰개혁에 적극적이라는 주변 여건까지 겹쳐 상당한 힘이 실린 초안이었다.
그러나 이는 검찰의 극단적인 반발을 가져왔다. 사개추위 초안이 자백과 조서 위주의 기존 검찰 수사 관행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기 때문이다. 검찰은 사개추위 초안으로는 뇌물이나 강력 수사 등이 불가능하다며 반발했고 전국의 평검사들도 평검사회의까지 열어 사개추위는 물론, 법원과 조직의 수장인 법무부 장관에 대한 불만까지 쏟아냈다.
결국 사개추위는 5월 초 검찰과 법원, 변호사업계, 법학계 관계자가 포함된 5인소위를 만들어 검찰과 조정 협상에 들어갔고 그 결과가 지난주 나온 것이다. 5인소위에서 합의된 주요 골자는 ▲검찰 신문조서의 경우 변호인이 입회한 상태에서 작성됐거나 조사과정이 녹화돼 있으면 법정에서 피고인이 부인해도 증거로 채택하고 ▲조사과정 영상녹화물도 다른 증거나 증언으로 사건 규명이 안될 경우 증거로 채택하며 ▲현재 재판 모두(冒頭)에 하는 피고인 신문을 증거조사 이후 실시하는 것 등이다.
이에 대해 검찰은 겉으로는 “조서 작성에 제한조건이 많이 붙고, 영상녹화물도 증거로 채택되기가 쉽지 않은 등 문제가 있다”며 여전히 아쉬움을 표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검찰의 ‘표정관리’라는 것이 법조계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피고인이 부인하는 검찰 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을 무조건 폐기하고, 영상녹화물의 증거채택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으며, 재판에서 피고인 신문을 완전 폐지한다던 사개추위 초안에 비해 이번 타협안은 ‘엄청나게’ 검찰측 주장을 수용했기 때문이다. 특히 신문조서의 경우에는 지난해 12월 대법원이 전원합의체의 판례변경을 통해 피고인이 부인할 때 증거능력을 부정키로 한 것에 비해서도 후퇴한 셈이다. 당장 참여연대는 다음날 성명을 내고 이번 합의안이 “공판중심주의와 구두재판주의 원칙을 포기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처럼 검찰이 형소법 개정에서 극적인 역전승을 얻어낼 수 있었던 것은 사활을 걸고 매달렸기 때문이다. 평검사들은 ‘항명’이라는 비난을 받으면서까지 강하게 사개추위를 비판했고, 검사장들은 잇달아 대책회의를 여는 등 전국의 검찰이 상하를 막론하고 적극 대응에 나섰다.
김종빈 검찰총장과 김승규 전 법무장관도 “사개추위 초안으로는 부정부패 수사를 할 수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주무 부서인 대검은 긴급 대책반을 구성, 사개추위 초안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공청회를 열고 자료집을 내, 대언론·대국민 선전전을 펼치며 사개추위를 압박했다. 결국 이 같은 전방위적인 ‘압박’ 속에서 사개추위 5인소위는 검찰측 주장을 대폭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검찰은 사개추위와의 싸움에서 역전승한 기세를 경찰과의 수사권 조정 싸움으로 몰고간다는 생각이다. 사실 검찰에게 경찰과의 싸움은 사개추위와의 싸움보다 훨씬 불리하다. 검찰 인원의 10배에 가까운 15만 명에 이르는 경찰이 수사권 독립에 ‘올인’하고 있어 검찰이 대국민 설득에 힘이 달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허준영 경찰청장의 끊이지 않는 ‘공격적인 마케팅’도 검찰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특히 경찰은 이미 국회의원들을 설득, 자신들에게 유리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국회에 발의해 놓은 상태다.
이에 “어떻게 경찰과 대등하게 다툼을 벌이느냐”며 그동안 체면을 챙기던 검찰도 뒤늦게 조직적이고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 먼저 대검은 지난달 말 박상옥 공판송무부장(검사장)을 경찰과의 수사권 조정 협상팀 책임자로 임명하면서 협상팀을 대폭 강화했다. 이후 대검은 지난 3일 ‘수사권조정에 대한 검찰의 입장’이라는 팸플릿을 발간하면서 본격적인 홍보전을 시작했다.
이 팸플릿에는 “경찰은 검찰이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제 서민들에게 무소불위의 대상은 방대한 정보·보안·교통·방범 권한을 갖고 있는 경찰”이라는 등 경찰의 논리를 공격하고 검찰의 입장을 설명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지금까지 국민이나 언론을 상대로 공식적 대응을 하지 않던 검찰의 첫 번째 반격인 셈이다.
검찰은 이와 함께 간부들이 친분이 있는 주요 언론사 관계자들을 만나 자신들의 입장을 설명하는 등 여론을 유리한 방향으로 돌리려는 물밑작전도 전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수사권 조정과 관련된 형소법 개정의 칼을 쥐고 있는 정치권과 국회에도 적극적으로 발걸음하며 검찰의 논리를 설득한다는 방침이다. 실제 대검의 수사권 조정 협상팀은 최근 열린우리당의 수사권조정위원회에 참석, 검찰 입장을 설명했다.
그러던 와중에 검찰에게 역전의 발판을 마련할 만한 ‘서광’이 비쳤다. 바로 지난 5일 노무현 대통령이 수사권 조정을 둘러싼 검찰과 경찰의 공개적 논쟁을 중단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여론을 상대로 한 ‘선전전’에서 도저히 경찰을 이기기 어려웠던 검찰로서는 상대적으로 숨을 고를 수 있는 유리한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검찰 관계자는 “감정적이고 피상적으로 보면 경찰측 주장이 그럴듯해 보이지만 논리적으로 차분히 설명하면 검찰 얘기가 맞다는 것을 국회나 국민들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제 해볼 만한 상황이 됐다는 얘기다. 전선을 옮긴 검찰의 전략이 이번 경찰과의 싸움에서도 효과를 발휘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진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