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4일 늦은 밤, 여 씨는 7개월 된 딸아이를 업고 청주의 한적한 길거리에서 김 아무개 씨(여·30)를 기다렸다. 여 씨가 인터넷 포털에 ‘아이를 입양할 사람을 찾습니다’라는 글을 올린 지 일주일도 채 지나기 전에 메신저를 통해 아이를 데려가겠다며 연락이 닿은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시간과 장소를 합의했다. 이렇게 직접 만나는 데는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약속된 장소에서 아이를 건네주던 여 씨는 김 씨에게 돈을 요구했다. 일주일간 메신저로 대화를 나눴지만 돈 얘기는 오가지 않았던 터라 김 씨는 적잖이 당황했다. 처음에 여 씨는 아내가 자궁암에 걸려 수술비가 필요하다며 김 씨에게 110만 원을 요구했다. 김 씨가 그러한 여력이 없다는 뜻을 내비치자 여 씨는 80만 원을 요구하며 흥정을 시작했다. 결국 김 씨는 여 씨에게 60만 원을 건네고 나서야 아이를 데려갈 수 있었다. 단돈 60만 원에 7개월 된 아기를 거래하게 된 것이다. 여 씨에게 돈을 건넨 김 씨는 아이를 업고 황급히 자리를 벗어났다.
그런데 여 씨의 아이를 데리고 갔던 김 씨에게는 4명의 친자녀와 1명의 또 다른 입양아가 있었다. 김 씨는 남편과 이혼 후 별다른 직업 없이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데만 골몰했다. 김 씨의 친 어머니가 한 집에 거주하긴 했지만 식당일이 바빠 5명 아이의 육아를 많이 도울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김 씨의 상황을 알고 가끔 지인인 A 씨가 김 씨의 집에 들러 육아를 도와주고는 했다.
60만 원을 내고 아기를 데려가는 김 씨(왼쪽)와 경찰에서 조사를 받는 아기의 아버지인 여 씨. KBS 뉴스 캡처.
여느 때처럼 김 씨의 집에 들른 A 씨는 아이가 한 명 더 늘었음을 알게 됐다. 김 씨는 A 씨에게 “아들이 많아 딸을 더 입양했다”고 설명했다. 김 씨와의 대화를 이어가던 A 씨는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된다. 아이를 입양했다는 김 씨가 아이를 데려오는 과정에서 돈을 지불했다는 것이다. 정상적인 입양절차는 아니었다. 이상한 낌새를 느낀 A 씨는 이 같은 사실을 아동보호기관에 신고했다.
영원히 묻힐 것 같았던 여 씨와 김 씨의 은밀한 거래는 A 씨의 신고를 받은 아동보호기관이 경찰에 제보를 하면서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됐다. 어째서 여 씨는 자신의 친딸을 단돈 60만 원에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팔아넘기려 한 것일까.
여 씨는 고3이던 2012년 10월부터 사회생활을 하던 이 아무개 씨(여·21)를 만나 자취방을 얻어 동거를 시작했다. 동거를 지속하던 두 사람은 지난해 6월 이 씨가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다. 원치 않던 임신을 하게 된 동거녀 이 씨는 이 같은 사실을 알고 낙태를 하기위해 산부인과를 찾았지만 거절당했다. 이미 뱃속의 태아가 많이 자란 상황이었다. 결국 이 씨는 지난해 10월 여자아이를 출산했다.
아이가 생기면서부터 모든 것이 현실이 됐다. 여 씨와 동거녀 이 씨는 자취방을 정리해 돌려받은 보증금으로 생활하며 여관을 전전했다. 아빠가 된 여 씨는 학업도 접고 막노동을 하며 생활비를 벌었지만 생활과 육아는 녹록지 않았다. 부모에게는 아이가 태어났다는 사실도 알리지 못해 손을 벌릴 수도 없었다. 부모님이 눈치 채는 것이 두려웠던 여 씨는 아이의 출생신고도 하지 못했다. 결국 생활고와 육아를 감당하지 못한 동거녀 이 씨는 여 씨와 아이를 남겨두고 집으로 돌아갔다.
청주상당경찰서 고범식 지능범죄수사팀장은 “아이 엄마(이 씨)가 입양을 못 하게 해서 입양기관에 미혼부로 보내려고 하니 아이 엄마 없이는 안 된다고 했다고 한다. 여 씨는 정상적인 입양 절차에서 (아이를) 가족관계등록부에 입적을 시켜야 하고, 부모님이 알게 되는 것이 두려워 불법입양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여 씨는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여 씨의 아이를 입양하겠다고 나타난 김 씨도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서 아이를 5명이나 기르고 있는 상황이었다. 5명의 자녀가 있는 상황에서 또 다시 정상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무리하게 입양을 진행한 김 씨는 또 다른 목적이 있을 수도 있다는 의심을 사기도 했다. 5명 이상의 자녀가 있을 경우 국민연금과 연말소득공제에서 받는 혜택이 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씨는 경찰에서 “다른 목적은 없었고, 아이가 너무 좋아서 그랬다”고 진술했다. 아이를 데려간 김 씨는 불구속 입건된 상태다.
청주상당경찰서 고범식 팀장은 “김 씨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치밀한 계획을 세우는 타입은 아니었다. 김 씨는 평소 착하고 아이를 좋아해 지인들도 육아를 도와줬던 것 같다. 왜 김 씨가 아이를 그렇게 좋아하는지는 설명할 수가 없다”며 “아이는 여전히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상황이다. 현재는 보호시설에서 보호 중이다”고 말했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