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때 국내 최대 폭력조직의 보스로 군림했던 김태촌씨가 사회보호법 폐지 예고에 따라 ‘완전석방’을 눈앞에 두고 있다. 사진은 지난 연말 모습. | ||
“무슨 소리냐? 최근 김씨가 완전 석방된다고 하니 왕년의 주먹들이 다시 들썩거린다는 얘기가 벌써부터 들려온다. 암흑 세계에서는 여전히 김씨는 전설적인 존재로 통한다.”(경찰 관계자의 반박)
한때 국내 최대 폭력조직의 보스로 군림했던 김태촌씨의 ‘완전 석방’이 임박해지면서 검찰과 경찰 등 수사 당국이 아연 긴장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16여년간의 형기를 마치고 87년 내려진 보호감호 처분(7년)에 따라 수감생활을 해온 김씨는 지난달 30일 법원의 구속집행정지 결정으로 일시 석방된 상태. 얼마 전 국회가 보호감호의 근거가 되는 사회보호법을 폐지하기로 의결한 터라 이달 안에 자유의 몸이 될 예정이다.
서울지방경찰청의 조폭 담당자는 “그런 위험 인물을 이렇게 갑자기 내놓으면 어떡하느냐”며 최근 국회의 사회보호법 폐지 결정에 대한 노골적인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요즘 다시 예전의 범서방파 조직 계보를 정리하고 있는 중”이라며 기자에게 ‘자료 협조’를 요청하기도 했다.
경찰 일각에선 김씨의 석방으로 과거 70~80년대 밤세계 주도권을 놓고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벌인 소위 ‘조폭 3대 패밀리’(범서방파, 조양은씨의 양은이파, 이동재씨의 OB파)의 전 보스가 모두 세상에 나옴으로써 ‘조폭 지도’에 새로운 변화가 일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3대 패밀리 계보의 세력들이 암중 충돌할 가능성도 무시 못하고 있다는 것.
과연 경찰의 우려대로 이른바 3대 패밀리는 아직도 밤세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걸까. 또 ‘왕년의 보스’인 김씨가 아직도 조폭세계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만한 ‘파괴력’을 지닌 걸까. <일요신문>은 수사 당국에서 확보하고 있는 자료와 주변의 여러 증언들을 통해서 3대 패밀리의 전 보스들과 그 최측근으로 이뤄진 부두목과 행동대장들의 최근 동향을 취재했다.
현재 수사 당국에서 가장 예의주시하는 조직은 단연 왕년의 범서방파 계보다. 특히 경찰 내부에선 일부 핵심 측근들은 여전히 김씨와 밀착되어 있을 것이라는 얘기도 들리고 있다.
우선 가장 먼저 거론되는 이는 조직의 부두목이자 김태촌씨의 절친한 친구로 알려진 손아무개씨. 손씨는 현재 병원에 입원중인 김씨의 병실을 자주 찾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손씨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우리가 아무 거리낄 행동을 할 것이 없는데 일부러 (김씨를) 피할 필요가 뭐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오히려 언론에서 우리를 너무 키워주는 느낌이 있다. 조직이니 보스니 하는 것도 다 힘이 있을 때 얘기지, 이제 우리는 힘이 다 떨어졌다”고 덧붙였다.
역시 범서방파의 부두목이자 김씨의 절친한 친구로 알려진 이아무개씨는 서울의 유명 놀이동산을 경영하면서 회사공금을 횡령한 혐의로 지난해 4월 구속되기도 했다. 수사 당국은 “이씨가 김씨를 평소에도 자주 면회 다니는 등 최근까지도 교류가 잦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혀 그에 대한 수사가 김씨와 범서방파 조직원에 대한 동향 관리 차원일 가능성도 내비쳤다. 보석으로 풀려나온 이씨에 대해 최근 다시 수사당국이 내사에 들어갔다는 소문도 나오고 있다.
범서방파의 행동대장 출신으로 역시 김씨의 심복으로 알려진 양아무개씨에 대해서도 경찰은 예의주시하고 있다. 조폭 담당자들은 그를 김씨가 89년 재수감된 이후 사실상 조직을 대신 관리해온 인물로 보고 있다. 최근에도 김씨와 연락을 취하고 있을 것이라는 게 한 담당자의 귀띔이다. 김씨 주변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양씨는 서울의 한 나이트클럽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김씨와는 간혹 전화 연락을 하는 정도로 전해지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이씨의 경우처럼 과거 범서방파 핵심 인물이라는 이유로 수사 당국의 요주의 대상이 된 사례는 더 있다. 특히 김씨의 형량이 만기되는 시점이었던 지난해 10월을 전후로 해서 수사 당국은 과거 범서방파 조직원들의 동향을 집중 체크하기도 했다.
강남에서 큰 식당을 경영하던 행동대장 출신의 나아무개씨는 조세포탈 사실이 드러나면서 지난해 10월 구속됐다. 나씨는 현재 보석으로 풀려난 것으로 밝혀졌다. 역시 행동대장 출신이었다가 최근 사업가로 변신한 정아무개씨 역시 범서방파 조직원 동향 파악 도중 사기 도박극을 벌인 혐의가 포착돼 지난 1월 쇠고랑 신세가 되기도 했다.
한때 범서방파의 2인자로 불렸던 이아무개씨는 2001년 2월 구속되었다가 5월 보석으로 풀려났다. 이씨가 구속될 당시 같이 들어간 이들은 한결같이 ‘3대 패밀리’의 명실상부한 2인자들이었다. ‘양은이파’의 강아무개씨, ‘OB파’의 김아무개씨 등이 그들. 당시 검찰은 이미 노출된 ‘3대 패밀리’의 보스들을 대신해서 실질적으로 조직을 이끄는 인물로 이들 세 명을 지목하기도 했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이씨의 경우 방대한 범서방파를 실질적으로 조직 관리하는 두목이었고, 해외 이민설이 나돌아서 위장 이민에 대해 예의주시한 바 있었다”고 밝혔다. 최근 확인 결과 이씨는 실제 말레이시아로 이민을 떠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가끔 국내에 들어오는지 어떤지 아직 정확한 동향 파악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수사 당국은 범서방파에서 갈라져 나온 방계 조직에 대해서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서울에서 여전히 조직세력이 남아 있는 ‘종○이파’, ‘대흥동파’ 등이 그들. 종○이파의 두목 이아무개씨는 출소한 상태고, 대흥동파의 두목 이아무개씨는 현재 수감중인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범서방파의 경우 서울 강남 등에서 워낙 그 세력이 오랫동안 득세한 까닭에 아직도 서방파와 김태촌이라는 이름만으로도 통하는 면이 있다. 따라서 새로운 자생조직이 출현할 가능성도 있다”면서 “실제 90년대 후반, 서방파 조직원 출신들이 자기들끼리 강남에서 B파라는 조직을 결성해서 마치 범서방파의 후예인 것처럼 행동하며 부동산업자들을 협박해 부당 이득을 취한 적도 있다”고 경계했다.
수사 당국은 “범서방파에 비하면 ‘양은이파’와 ‘OB파’의 경우 그 조직이 거의 와해됐고, 옛 보스와 조직원들의 결속관계도 상당히 느슨해진 것으로 알고 있다”며 “동향 파악 역시 특별히 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일요신문>이 확인한 바로도 전 양은이파의 보스 조양은씨와 전 OB파의 보스 이동재씨의 과거 핵심 측근들은 현재 구속 수감중이거나 아니면 출소 후 최근까지 수면 위로 잘 드러나지 않고 있었다.
한때 조씨의 핵심 심복으로 ‘양은이파 2인자’로 군림했던 강아무개씨는 20년간이라는 오랜 형량을 마치고 지난 2001년 2월 만기 출소했으나, 조씨와 사이가 소원해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후 강씨가 조씨를 대신해 조직의 새 보스로 군림한다는 소문이 돌아 한때 경찰 당국을 긴장시키기도 했으나, 이후에도 몇 차례 단순 혐의로 구속과 불구속을 반복한 것 외에는 특이 사항이 없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역시 강씨와 더불어 조씨의 핵심 측근으로 활약했던 양은이파 부두목 출신 오아무개씨는 2001년 2월 ‘3대 패밀리의 2인자 구속’ 때 함께 쇠고랑을 찬 바 있다. 오씨는 조직의 1, 2인자였던 조씨와 강씨가 80년 구속 수감된 이후 실질적으로 양은이파를 관리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역시 한때 조씨의 핵심 측근으로 알려졌던 ‘양은이파’ 부두목 출신 백아무개씨는 사업가로 변신했으나 2년 전 공갈 협박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OB파’는 옛 보스 이씨가 88년 쫓기다시피 미국으로 건너간 이후 부두목급이었던 김아무개씨와 조아무개씨 등이 사실상 조직을 양분하며 OB파의 1인자 행세를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가운데 이씨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김씨는 2001년 2월 ‘3대 패밀리 2인자 구속’ 때 역시 쇠고랑을 찼다. 특히 김씨는 뛰어난 사업 수완을 보여 사채시장에서 캐피탈회사 사장 명함으로 어음할인 등을 통해 상당한 돈을 벌어들인 것으로 밝혀졌다.
OB파의 행동대장 출신으로 한때 OB파의 실질적 두목으로까지 불렸던 조아무개씨 역시 사업가로 변신하는 듯했으나 지난 3월 공갈 폭력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당시 수원지검은 “조씨가 OB파의 실질적 보스라는 전국구 주먹의 명성을 십분 활용해서 부동산 각종 이권에 개입했다”고 밝혔다.
OB파가 와해 조짐을 보이자 98년경 ‘신OB동재파’라는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 서울 강남 일대에서 활동했던 유아무개씨는 3년전 폭력 및 이권 개입 혐의로 역시 구속됐다.
과거 3대 패밀리의 핵심 세력이던 이들 왕년의 ‘주먹’들 가운데엔 자신이 조폭세계에 몸 담았던 ‘원죄’ 때문에 손을 씻은 후에도 검·경의 타깃이 되고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과거의 굴레 때문에 아직까지도 ‘희생’을 당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검·의 조폭 담당 수사관들의 얘기는 다르다. 실제 상당수 조폭 수사관들에겐 ‘한번 조폭은 영원한 조폭’이란 인식이 박혀 있다. 과연 ‘진실’은 어떤 것일까. 완전 석방을 앞두고 있는 김씨와 이미 자유의 몸이 된 조씨 등 ‘손 씻은’ 왕년의 보스들의 향후 생활로 대답을 대신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