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서 기타를 치면서 전도하는 황씨는 범인과 잠시 친했었다고 했다. 황씨는 그를 보면 항상 부러웠다고 말했다. ‘얼마나 성경을 많이 읽었으면 저럴까’ 하고 탄복하곤 했다는 것이다. 그의 행동도 성스러웠다. 새벽기도에 이어서 낮에는 노동과 봉사를 했고, 저녁이면 청소년들에게 성경을 가르쳤다. 따르는 여신도가 많은데도 그는 눈길 한 번 흐트러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직 젊은 분이 여자 생각이 나지 않아요?”
황씨가 한번은 짓궂게 그를 놀렸다. 중매를 해볼 속셈이었다.
“은혜를 받았는지 이상하게 전 여자생각이 별로 나지 않아요.”
그가 낮은 어조로 경건하게 대답했다. 그는 어머니의 똥오줌을 치우면서 임종을 지킨 지극한 효자라고도 알려졌다. 이따금 어머니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그의 눈에는 맑은 이슬이 맺히면서 이렇게 혼잣말을 했다.
“어머니가 꼭 목사가 되라고 하셨는데….”
그는 흠 한 점 없는 청교도였다. 그러나 완벽할수록 위선도 강했다.
그곳에서 차로 10여분 갈 거리의 이웃동네에는 원룸아파트들이 밀집해 있었다. 2000년 10월30일 오전 11시경. 혼자 문을 열어놓고 청소를 하던 여대생이 누군가 들어오는 기척을 느꼈다.
“이 집 전기가 잘 들어옵니까?”
전기검침을 하러온 것 같았다. 키가 후리후리한 그는 흘낏 주위를 돌아보고 여대생 혼자인 걸 알고는 바로 그녀를 덮쳤다.
그 며칠 후 밤 12시30분경, 이웃의 젊은 부인이 잠이 들려는 순간이었다. 눈에 강한 불빛이 비쳤다. 괴한이 들어와 플래시로 그녀의 눈을 비추는 것이다.
“누, 누구세요!”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본능적으로 움츠렸다.
“가만있어!”
남자는 조용히 명령을 하고 그녀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저 임신중인데 용서해 주세요.”
그녀가 어둠 속의 괴한에게 애원했다. 그러자 괴한은 잠시 생각하더니 옷을 입고 조용히 나갔다.
독신여성들이 많이 살던 그 동네는 일주일에도 이런 일이 몇 번씩 발생하곤 했다. 1년 동안 관할 경찰서에 신고된 피해만 해도 1백 건이 넘어가고 있었다. 마침내 한 주민의 신고로 1년 만에 범인이 잡혔다. 범인은 가까운 교회에서 전도사로 일하던 신학대학생이라고 했다.
변호사인 나는 교도소 접견실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이 성욕을 이기기란 불가능한 것 같다. 성경은 그런 모습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모세는 이디오피아 여인과의 스캔들로 비난당했다. 다윗은 부하의 아내를 겁탈했다. 솔로몬도 수많은 첩을 거느렸다. 어떤 영웅도 원초적 본능 앞에서는 무너졌다. 그래서 성경은 본능보다 중요한 게 참회라고 가르치나 보다.
이윽고 훤칠한 키에 아름다운 눈을 가진 청년이 들어왔다. 하얗고 긴 손가락은 마치 예술가의 그것 같았다. 난 그의 참회를 기대했다.
“부끄럽습니다. 정말 하나님께 헌신하려고 했는데….”
그가 아나운서 같은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를 보는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순간 나는, 그가 입고 있는 죄수복만 의식하면서 연기를 하는 느낌이 들었다. 화가 치밀었다.
강간을 하고 바로 설교대에 올라서는 그 때, 그의 양심은 쇠꼬챙이에 찔린 듯 아팠어야 했다. 그리고 지금은 차라리 후련해야 맞았다. 걸리고 안 걸리고보다 중요한 건 영혼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는 안 걸렸으면 성직자로 계속 위선적인 생활을 했을 것이다.
“잡히기 전과 지금과 본질이 달라진 게 뭐 있습니까? 전도사에서 죄수로 입은 겉옷만 달라지지 않았나요? 왜 내 앞에서만 눈물이 나야 하나요?”
내 말에 그는 고개를 푹 숙였다. 인간은 사랑해야 해도 죄와 위선은 미웠다.
“정말 성욕을 참기 힘들었다면 창녀촌이 있잖아요?”
자신의 욕망을 위해 남의 아내나 딸들을 겁탈하는 건 극도의 이기주의다.
“정말 자제할 수 없는 쾌감이었어요. 섹스를 하고도 몇 시간만 지나면 또 생각나고 또 생각나곤 했어요.”
그의 솔직한 고백이었다. 정상적인 교제나 창녀에게서는 그런 짜릿한 쾌감을 얻지 못한다고 했다.
“변호사님, 제 형량이 어떻게 될 것 같아요? 내 사건이 매스컴을 타서 그런지 여기 재소자들이 모두 궁금해 하는 거 같아요.”
범죄인도 매스컴을 타면 스타라고 착각들을 했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저는 싫다는 여자는 안했어요. 어떤 여자는 일부러 엉덩이도 들어주고 소리도 내고 좋아했어요. 한번은 미운 여자를 보고 도로 나오려고 하니까 그 여자가 ‘옷 벗으면 될 거 아니야?’ 하면서 잡더라고요. 그리고는 나중에 형사 앞에서는 울면서 강간당했다고 거짓말해요.”
젊고 잘생긴 그의 말이 사실일 수 있었다. 육체는 정신과는 따로 놀았다.
“그럼 지금 잘했다는 겁니까? 여자들이 정말 좋아서만 그랬겠어요? 상황이 그러니까 체념하고 나름대로 살기 위해 슬기를 발휘했을 수도 있죠. 왜 사람이 미안해 할 줄을 모릅니까?”
내가 따졌다. 난 범죄인을 만날 때 “피해자에게 미안하다”라는 말이 나오는지를 먼저 살폈다. 그 말을 하는 사람은 그래도 괜찮은 사람이다.
“형량이 궁금하다고 했죠? 만약 강간당한 여자의 아버지나 오빠라면 당신을 용서하라고 하겠어요? 아니면 저런 놈은 죽여야 한다고 하겠어요?”
반대편 피해자의 시각을 알려줘야 했다. 내남없이 사람들은 외눈박이다. 자기한테는 무한히 관대하고 남에게는 바늘 들어갈 구멍조차 없다.
“자신을 사형에 처해 달라고 할 용기는 없어요?”
내가 소설 <죄와 벌>에 나오는 말을 떠올리며 다시 물었다. 참회하고 벌을 각오한 인간을 변호할 때라야 신이 났다.
“당신이 진짜 신출귀몰하게 여자들을 성폭행한다는 ‘발바리’ 맞아요?”
형사들은 한 명이 잡히면 덮어씌우는 수가 흔했다.
“담당형사가 저에게 잘 생각해서 1백 건만 불라고 했어요. 반장님도 그렇게 하면 검사한테 잘 얘기해 줄 테니까 걱정 말라고 했어요.”
“왜 숫자를 지정해서 1백 건을 불라고 형사가 그랬어요?”
“담당형사님이 하는 말이 그 동네 발바리라는 도둑놈한테 당한 신고건수가 그 정도 되는데 나보고 그걸 했다고 자백하라고 그랬어요.”
“하지도 않은 걸 뒤집어쓰라고 그래요?”
“네. 형사님 말이 범죄수가 많건 적건 어차피 죄값은 똑같으니까 자기네들을 도와달라고 했어요. 그 대신 죄질이 좋게 조서를 써 준다고 그랬어요.”
그는 졸지에 발바리가 됐다. 그 거품을 제거하는 건 변호사의 일이었다.
나는 30년 임상경험의 정신과의사에게 그의 정신상태를 감정해 보았다.
“그런 사람의 머릿속은 어떻게 이 로맨틱한 변호사를 이용해 먹나 하는 계산으로 꽉 찼을 거요. 이쪽에서 아무리 진지하게 도와주려고 해도 받는 쪽은 사기를 친다니까. 그게 내가 보아왔던 범죄인들의 정신세계지. 조심하쇼.”
수시로 당하는 일이었다. 나는 다시 젊은 정신과 의사를 만나 물어 보았다.
“성도착증 같아요. 이 병은 성장과정에서 잘못된 남녀관계에 대한 인식이 머릿속에 입력되는 경우 많이 일어나요. 여자들 팬티를 훔쳐가거나 길거리에서 성기를 노출하는 게 다 그 증세죠. 그런 환자들은 인격 장애를 수반하는 경우가 많아요. 겉으로는 어른이지만 속의 일부는 아직 어린애든가 기형이에요. 옆에 애인이라도 있어서 아이 키우듯 다시 키워야 해요.”
그는 불륜의 결과로 태어난 아들이었다. 그리고 여관을 하는 어머니에게서 자랐다. 사춘기 시절 손님들의 방을 몰래 보면서 그의 성의식은 비뚤어져 버렸다. 어머니 임종 때도 그는 성폭행범으로 감옥에 있었다.
세상에서 버림받고 철저히 혼자인 그에게 다가온 천사는 교인을 통해 소개받은 한 순결한 처녀였다.
“신문에서 떠들고 세상이 아무리 돌을 던져도 난 그 분과 결혼할 거예요. 그의 영혼을 꼭 다시 살리고 싶어요.”
“데이트 할 때 평소 그의 태도는 어땠어요?”
나는 그가 항상 여자에게 강한 성욕을 느꼈었다는 걸 떠올리며 물었다.
“저한테는 손도 제대로 잡은 적이 없어요. 너무 아껴줬어요. 보통 남자들 같으면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려고 했을 텐데 그러지 않았어요. 제게 최고로 접근한 게 볼에다 입을 맞추어 주는 정도였어요. 사람 좋고 남에게 베풀기 좋아하는 성격이었어요. 교회에서도 불쌍한 사람만 보면 뭔가 해주고 싶어 했어요. 제 입장에서 그 분은 절대로 그럴 짓을 할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뭔가 잘못됐을 거예요.”
포르노가 범람하고 채팅이 만연하면서 잠재적 성폭행범들이 늘고 있다. 불씨만 던져지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들이다. 변태와 원조 교제 등 비정상적인 방법이 아니면 쾌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안 걸릴 것 같아도 새가 그물에 걸리듯 어느 순간 검거된다. 그리고 끝없는 지옥으로 떨어진다.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