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참이 괴롭히면 자살” 신병 때 ‘예고’
김 일병은 지난 8월18일 용인 3군사령부 보통군사법원 재판장에서 열린 첫 공판에서 사건 당시의 정황과 범행 동기를 묻는 군검찰과 변호인, 재판관들의 신문에 일일이 답했다.
이번 공판에서는 김 일병이 신병 교육대 시절 수양록에 ‘고참이 괴롭히면 자살할 것 같다’는 심정을 표현한 바 있고, 교육대에서 실시한 KMPI(다면적 인성 검사)에서도 경쟁심과 자신감, 의욕이 부족하고 비활동적이라는 평가를 받아 GP 투입이 불가능한 병사였다는 점 등이 새롭게 부각됐다.
신문을 시작한 군검찰은 범행 계획 단계에서 범행 종료 시점까지의 공소 사실을 공개하고 김 일병에게 이를 확인했다. 전체적인 내용의 윤곽은 <일요신문>이 지난 692호에서 공개한 군검찰 공소 기록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일부 공소 내용을 검찰이 부연 설명하는 과정에서 그간 알려지지 않은 범행 당시 김 일병의 의도와 행동이 세세하게 공개됐다.
우선 김 일병이 GP 화장실에서 수류탄을 만지작거리다 범행을 결심하고, 내무반에서 들고온 장아무개 상병 소총의 탄창을 끼워 넣는 도중, 약실에 탄알이 두 개가 들어가 다시 노리쇠를 전진한 뒤 조정간을 ‘단발’이 아닌 ‘연발’로 맞춰 놓았다는 수사 결과는 매우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이날 김 일병의 총격으로 취사장에서 사망한 조정웅 상병의 부친인 조주하 유가족 대표가 연발 사격에 대한 검찰 기소 내용에 의문을 제기해 차후 군검찰과 유가족 사이에서 사격 방법을 놓고 상당한 논란이 일 전망이다.
조씨는 재판이 끝난 후 “아들의 시신과 취사장 바닥과 벽 등에서 단발 사격의 흔적이 있다”며 검찰 수사 내용을 반박했다. 이와 함께 조씨는 “아들이 취사장에서 최종적으로 숨을 거둔 것으로 조사됐는데 현장을 가보니 식당과 복도까지 아들의 핏발자국이 발견됐다”며 추가 의혹을 제기했다.
상황실에 총격을 가한 뒤 정전이 되자 내무반으로 이동해 문을 열고 사격을 할 당시에는 김 일병이 차아무개 상병, 이아무개 상병 등 수류탄이 터진 후 사고 수습을 위해 내무반에서 움직이는 병사 네 명의 모습을 정확히 보고 조준 사격을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사고 직후에는 후임 소초장인 이아무개 중위가 경계 근무를 서던 병사 5명을 따로 불러 “미안하지만 너희들이 가장 의심이 갈 수 밖에 없다”며 근무자들의 손에 화약 냄새가 나는지를 확인하는 등 용의자를 선별하려 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이 과정에서 이 중위가 김 일병에게 “내무반에 근무자 깨우러 갔는데 총소리를 듣지 못했냐”고 묻자 김 일병이 “잠시 화장실에 있는 동안 총소리를 들었고 무서워서 화장실에 그대로 있었다”고 발뺌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결정적으로 정아무개 상병이 “너 내 총 갖고 사람 죽인 거 아니냐”고 묻자 그제서야 김 일병이 “그렇다”라고 대답해 ‘상황’이 종료됐으며, 그 순간 이아무개 상병이 김 일병의 손목을 잡고 대성통곡을 했던 것으로 검찰은 전했다.
변호인 신문에서는 김 일병이 자살까지도 생각했으며, 사단 신병 교육대에서 관심 사병으로 분류될 만한 정황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기욱 변호사(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위원·법무법인 창조 대표변호사) 등은 “김 일병이 고참들의 반복되는 지적과 욕설은 물론, 동기인 천아무개 일병과 자주 비교된다는 것에 큰 상처를 입고 자살까지 생각했었다”고 밝혔다.
변호인단은 “김 일병이 사단 신병 교육대에서 작성한 ‘나의 성장기’를 보면 ‘고참이 괴롭히면 자살할 것 같다’는 내용이 나오며, KMPI(다면적 인성 검사)에서는 경쟁심과 의욕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김 일병이 GP 근무를 자원했을 때 이러한 부분이 전혀 검증되지 않았다”며 군내 사병 자원 관리 시스템의 허점이 있음을 지적했다.
변호인단은 “김 일병이 고문관으로 고참들에게 인식됐고, 이 때문에 나중에는 불면증, 우울증 증세를 겪기도 했다”고 밝혔고, 김 일병도 “사소한 시비거리가 생기면 고참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나를 질책했고, 한 번은 하루 40여 차례까지 질책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김 일병은 “구형 GP에서 신형 GP로 옮겨오면서 혼자 쉴 공간이 적어져 힘들었으며, 계속 구형 GP에서 생활했다면 범행을 안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했으며, “사고 며칠 전 소속 연대에 도착한 어머니의 소포를 받았다면 범행을 일으키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도 되풀이했다(이 소포에는 김 일병이 부탁한 건전지와 과자, 쪽지 등이 들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불침번이 있었다면 범행을 저지르지 못했을 것이라는 얘기도 털어놨다.
한편 유가족들이 제기한 공범 여부에 대한 변호인 질문에는 “공범은 없었다”고 잘라 답했으며, 폭행 여부에 대해서도 “맞은 적은 없고, 멱살 잡힌 적은 있다”고 말했다.
범행을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검찰과 변호인 신문 때마다 다르게 진술했다. 검찰 신문에서는 “범행 일주일 전부터 치밀한 계획까지 세워 놓지 않았느냐”는 검찰측 신문에 고개를 끄덕였으나, 변호인 신문 때는 “범행 전날까지 특별한 결심이 없었다”며 오락가락하기도 했다.
김 일병은 “사고 당시에는 별다른 생각 없이 내무반에 내려갔다가 부대원들이 잠든 것을 보고 화장실에서 고민하다 만지작거리던 수류탄 봉인지가 뜯겨져 나가면서 돌이킬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검찰이 재차 “6월13일 GP대원들을 살해하기로 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 사실을 조사 과정에서 인정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이를 부인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주임 판사가 언제부터 우울증세가 시작됐냐고 묻자 김 일병은 “지난 5월부터 아무것도 하기 싫고, 혼자 있고 싶고, 누가 말 걸어도 대답하기 싫었다”고 진술했다. 김 일병은 판사가 고참들과의 관계에 대해 재차 묻자 “내가 잘못한 일도 아닌데 고참들은 무조건 나를 질책했다. 선임병 질책이 범행에 반 이상 ‘기여’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14개 증거물을 채택 요청했고, 변호인단은 네 명의 동료 병사와 김 일병의 친구 1명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또한 변호인단은 김 일병의 정신감정을 의뢰,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인 상태다.
이기욱 변호사는 “죄값을 달게 받아야 하지만 초·중·고교를 거치면서 개근상과 봉사상 등을 여러 번 수상하는 등 평범하고 모범적으로 살아온 김 일병이 이처럼 끔찍한 범행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도저히 이해가지 않는다”며 범행 동기에 대한 철저한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변호사는 “지금으로서는 김 일병이 통제된 부대 환경에서 소대원들을 죽이는 극단적인 방법을 유일한 탈출구로 생각하지 않았을까라는 판단이 든다”며 “김 일병이 입대 직후부터 적응의 어려움을 보였고, 이 점이 객관적인 데이터로 나타났음에도 효율적으로 병사를 관리하지 못한 군 인사 시스템의 허점을 지적하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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