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경선씨가 YS에게 쓴 편지의 일부분. | ||
타이핑으로 된 주씨의 편지는 ‘마음속 깊이 묻어두고 외롭게 42년을 살아온 가○○입니다’로 첫머리를 시작하고 있었다. 그녀는 ‘한국 이름은 김○○, 미국 이름은 C○○, 그리고 일본 이름은 가○○, 한국 미국 일본을 오가며 국적도 없고 뿌리도 없는 고아로 살아왔다. 그러나 나는 분명한 한국인이며 나의 조국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지낸 김영삼의 딸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살아왔다’고 밝혔다.
그녀는 ‘27년 전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서울 남산동 집에서 미국 유학을 떠나는 저에게 “열심히 살아라” “고생이 되더라도 조금만 참아라” “너와의 상봉이 꼭 이뤄지리라” 하셨으나, 지금까지 단 한 차례의 연락도 받지 못했다. 무정하신 아버님, 잔인하신 아버님’이라고 원망을 나타냈다.
그녀는 ‘축복받지 못하고 태어난 아버님의 딸은 지금 무척 외롭고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아직 결혼도 못하고 있다.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성년이 되어 아버님과의 관계, 아버님의 정치적 야망 등 모든 것을 알고 난 후 결심한 것은 “나는 나의 뿌리를 찾고 부모님의 축복이 없는 결혼은 안할 것”이라는 다짐이다’라고 밝혔다.
그녀는 편지 말미에서 ‘이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고 사랑하는 아버님, 그리고 제일 증오하고 원망스러운 아버님, 꼭 한번만이라도 아버님 용안 앞에 앉아서 “아버님”하고 불러볼 수 있는 기회가 꼭 오기를 간절히 기도한다’는 말로 끝을 맺었다.
한편 생모 이씨는 편지에서 YS를 ‘가○○ 아버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렀다. 그녀는 이 편지에서 ‘그동안 수도 없이 찾아 보고자 노력을 하였다. 가시는 곳마다 찾아 뵈올려고 하였지만 밑의 분들과 경호원들의 저지로 그저 얼굴만 멀리서 뵈올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녀는 ‘요즘 가○○는 직장에 다니며 제 생활을 하고 있으나 나이가 들어도 결혼을 안 하고 있어 걱정을 하던 중에 다행히 결혼할 사람이 있어 만나고 있다’면서 ‘하지만 어미된 저로서는 현재의 제 생활로는 걱정이 앞선다. 딸 결혼비용조차 준비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그녀는 ‘한국에서 적응을 못해 일본에 귀화신청을 했지만 가진 재산과 예금이 없다하여 거절당했다’면서 ‘가○○는 호적 정리를 한 후에 떳떳이 아버님 자식으로 결혼을 하겠다고 하면서 매번 고집을 부려 제 속을 상하게 하였다’고 밝혔다. 그녀는 ‘모든 것이 부끄럽고 죄송하고 송구하기만 하지만, 딸의 결혼 비용과 내가 일본에 귀화하여 여생을 일본에서 보낼 수 있도록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바란다’며 끝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