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삼 전 대통령(아래왼쪽)의 딸을 낳았다고 주장하며 위자료청구소송을 제기한 이경선씨가 지난 3월 미국현지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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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이씨측은 “눈앞에선 딸임을 인정하면서도 밖으로는 우리 모녀의 존재를 부정한다”며 “그렇다면 DNA 친자 감식을 통해 딸임을 떳떳이 밝히겠다”고 밝혀왔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친자 감식이 어려워지면서 소송을 위자료 청구 쪽으로 선회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 가장 큰 이유는 당사자인 주씨가 친자확인 소송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는 것. 그녀는 현재 미국에 거주중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최근 생모 이씨와의 관계가 무척 소원해진 때문이라고 이씨 변호인은 밝혔다. 따라서 친딸 논란의 당사자인 주씨의 향후 입장 표명이 이번 소송건에 주요 변수로 등장할 전망이다.
그동안 정치권에서 YS의 숨겨진 딸 소문은 끊임없이 떠돌았다. 특히 87년과 92년 대선 시점마다 불거지던 이 소문에 대해 YS측은 “정치적 음해”라며 강력하게 대처해 왔다. 뿐만 아니라 지난 92년에는 이 사실을 보도한 한 언론인이 구속되기까지 했다.
하지만 지난 3월 이씨가 자신의 신분을 직접 공개한 인터뷰가 한 시사월간지에 실리면서 소문은 보다 구체성을 띠게 되었다. 국민들이 이번 파문을 의혹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은 이 논란에 대한 상도동측의 소극적인 태도 때문이다. 상도동측은 “돈 욕심에 눈이 먼 이씨의 노욕에 불과하다”며 불쾌감을 표시할 뿐, 주씨의 존재에 대해 강력한 부정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씨의 이번 소장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자신과 YS와의 과거 관계 부분을 비교적 상세히 밝힌 대목이다. 그녀는 소장에서 ‘원고(이씨)는 1961년 5·16 군사혁명이 발발한 직후 우연한 기회에 피고(YS)를 알게 되었는데 유부남인 피고가 원고의 집을 자주 심방함으로써 원고와의 연을 거듭하던 중 마침내 62년 11월12일 딸을 생산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피고는 신민당의 요직자로 있으면서 장차 대통령 후보가 되겠다는 포부를 간직하고 있었고 이러한 사정과 장차의 정치적 입지를 내세워 출생 직후 여식에 대한 인지를 지체하면서 오랜 세월을 버텼고, (YS 호적으로) 입적을 요구하는 원고를 그때마다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달래면서 93년 마침내 14대 대통령으로 취임하기에 이르렀는데 이때 원고의 딸은 이미 31세의 노처녀 신세가 되어 있었으니 그간 30년 이상을 사생아 신세로 서러움을 씹어 삼켰다’고 밝히고 있다.
이씨는 또 ‘그간 딸은 스님이 지어준 이름인 김○○란 이름으로 6년간을 살다가 그 후 대만인의 딸로 위장되어 주○○란 새 이름으로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었고 그 몇 년 후에는 일본여성의 양녀로 운명이 돌변하다보니 가○○ ○○○로 변성명되는 기구한 인생살이 신세가 되어 버렸다’며 ‘그동안 딸은 (생부인 YS에게) 공부 잘하라는 말만 두 번 들었을 뿐, 딸 대접을 받아본 일도 아버지라고 불러보지도 못한 채 40년을 넘겼다’고 아픔을 전했다.
이씨는 ‘딸은 43세의 중년 노처녀가 되었고 독신녀로 인생의 반절을 보내게 되었는 바, (YS는) 입으로는 딸임을 인정하면서도 친자확인이나 호적입적을 요구하면 전혀 딴 사람이 되어 동문서답은 물론 언제 내가 딸로 인정했었더냐는 투로 남의 일처럼 냉랭하였다’며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법의 힘으로써만 딸의 생부를 밝힐 수밖에 없게 되었다’고 소송 이유를 밝혔다.
그녀는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면 대통령이 되도록 모든 고통을 참으면서 무정세월을 흘려보낸 원고와 딸에 대해서 대통령이 된 후 그리고 그 임기가 끝난 지도 7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서는 어째서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이냐’라며 ‘여전히 친생자임을 부인한다면 DNA 유전자 감식으로 염색체 감정을 통하여 딸이 피고의 자식임을 준엄하게 밝힐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씨는 ‘그간 피고의 도움으로 딸을 양육하고 교육을 시켰으나 원고는 이제까지 딸을 돌보는 생활로 피고로부터 받은 도움은 모두 소비되고 원고 자신도 70세 고령으로 활동불능인 바, 위자료 금 30억원 가운데 일부금으로 우선 1억원을 청구한다’고 덧붙였다.
현재 이 사건을 수임한 용태영 변호사는 “이씨에 따르면 그동안 YS측으로부터 23억원이라는 적지않은 도움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 돈은 딸의 양육비와 교육비조로 지급된 것이라고 볼 때 이씨 자신이 당한 피해와 고통에 대한 위자료는 받을 수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현재 상도동측은 이 문제에 대해 애매한 부인으로 피해가고 있다. 비서진들은 “딸에 대해서 (YS에게) 들은 바도 없고, 확인해 줄 입장도 아니다”라며 발을 빼고 있고, 정작 YS는 철저하게 침묵으로만 일관하고 있다는 것. 다만 상도동측은 이씨에 대해서는 “그 여자가 원하는 것은 오로지 돈이다. 비서들이 시달리고 있다. 딸을 빙자해서 돈을 얻겠다는 칠십 난 노인에게 연민의 정을 느낀다”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용 변호사는 “이제 와서 딸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은 그야말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라며 “DNA 유전자 감식을 통해 이 진실은 금방 드러나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최근 돌발 변수가 생겨 이씨측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딸이라고 주장하는 당사자 주씨가 생모 이씨와의 갈등으로 이 소송에 적극 협조하지 않고 있는 것. 이들 모녀는 최근 1년여 이상을 서로 연락도 않고 지낼 정도로 사이가 극도로 나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용 변호사는 “아마도 금전적인 문제 때문인 것 같다”고 밝혔다. 즉 생모 이씨가 그동안 YS측으로부터 23억원이나 되는 돈을 받았으면서도 그 돈을 자신을 위해서만 쓰지 않고 다른 용도로 사용한데 대해 서운함을 갖게 됐다는 것.
이씨는 딸을 만나기 위해 미국을 직접 방문하기도 했으나 전화 통화를 피할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은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용 변호사는 “당초는 친자확인소송과 위자료청구소송을 병행할 예정이었으나, 현재 미국에 거주중인 주씨가 친자확인소송에 대한 위임장을 금방 보내줄 것처럼 했다가 아직까지 보내주지 않고 있어 좀 곤란에 처해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서울 역삼동에 주소를 두고 있는 이씨는 현재 자신의 집과 휴대폰 전화번호도 모두 끊은 채 외부 접촉을 아예 않고 있다. 그동안 딸 주씨를 YS의 호적에 입적시킬 목적으로 상도동을 여러 번 찾았으나, 철저히 외면당한데 대해 많은 상처를 받았기 때문인 듯. 더군다나 지난 3월 자신의 인터뷰가 보도된 이후 “어쨌거나 23억원씩이나 받았으면 YS도 할 만큼 한 것 아니냐”는 일부 여론의 역공을 맞았고, 또 이 문제로 딸과의 사이까지 금이 가자 무척 마음고생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가 국내에서의 생활을 힘들어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전직 대통령을 상대로 싸운다는 것이 여전히 지난한 일임을 깨달았기 때문. 그녀는 당초 지난 2000년 강금실 양인석 변호사를 통해 YS를 상대로 친자확인소송을 제기했지만, 실제 소장은 제출하지 못한 채 내용증명만 보내는 선에서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강 변호사측의 수임 거부로 새로운 변호사를 찾아 나서야 했던 이씨는 그동안 10여 명이 넘는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지만 한결같이 사건 맡기를 기피한 탓에 절망감을 느꼈다고 한다.
이번에 뒤늦게 사건 수임을 맡은 용 변호사는 “전직 대통령을 상대로 이런 건으로 싸운다는 것이 변호사로서 썩 달가운 일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이 일을 맡을 변호사가 국내에 한 명도 없다는 것은 대한민국 법조계의 수치라고 생각해서 내가 맡았다”고 밝혔다.
이씨는 소송을 제기하기 직전까지도 YS 측의 수용 가능성에 대해 일말의 희망을 버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계속 냉대가 이어지자 “이렇게 나온다면 친자확인소송을 하겠다”고 밝혔고, 이에 상도동측은 “마음대로 해 보라”라고 했다는 것. 자신에게 돈을 전달했다는 전직 안기부 간부 출신의 김아무개씨 또한 “아주 당신한테 질렸다”며 머리를 흔들었다는 전언이다. 용 변호사는 “전직 대통령이기에 앞서 남자로서, 아버지로서 금전적인 도움 외에 마음으로나마 조금의 성의라도 보였더라면 이렇게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며 “막판에 몰린 이씨로서는 이 방법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실제 상도동측은 기자의 질문에 대해 여전히 “그에 대해서는 우리(비서진)는 아무것도 모른다. 어른(YS)도 언급이 없으셨다”는 기존 입장만 계속 되풀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