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생의 성을 코믹하게 다룬 영화 <색즉시공>의 한 장면.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 ||
지난 9일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 한나라당 안명옥 의원이 보도자료를 통해 “전국의 여대생 3백18명을 상대로 한 인터넷 설문조사 결과 여대생 48.4%가 성관계 경험이 있다”면서 “그러나 ‘반드시 피임한다’는 응답은 47%에 그쳐 한국 여대생의 성지식 수준은 F학점”이라고 주장했다. 안 의원측은 이 조사가 동서리서치에 의뢰해 9월2일부터 13일까지 온라인조사방식으로 이루어졌다고 밝혔다.
이 내용은 주요언론에 대대적으로 소개됐고 그 쇼킹한 내용 때문에 화제를 불렀다. 그러나 한 언론사에서 통계조사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새로운 논란이 제기됐다. 과연 여대생 절반이 성경험이 있다는 통계를 믿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일부 전문가들과 네티즌들은 “안 의원의 부실한 인터넷 설문조사를 어떻게 믿느냐” “어떻게 표본조사를 설명도 없고 오차영역도 밝히지 않고 무작정 발표만 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3백18명을 조사하고 어떻게 전체 여대생의 결과라고 확대할 수 있나”라며 강한 불만을 제기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안 의원이 보도자료를 배포한 다음날인 지난 10일 <세계일보>의 자매지인 대학전문지 <전교학신문>도 ‘대학생 성의식’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전교학신문>이 인터넷 취업포탈 잡링크(www.joblink.co.kr)와 공동으로 9월7일부터 25일까지 대학생 1천6백34명(남 8백57명, 여 7백77명)을 대상으로 한 이 설문조사에서는 성경험 여부를 묻는 질문에 ‘있다’고 응답한 사람이 29.6%에 그쳤고 성별로는 남학생이 34.4%, 여학생이 24.2%였다. 안 의원이 공개한 여대생 성경험 수치의 절반에 불과한 수치였다.
비슷한 시기에 설문조사한 결과가 왜 이토록 큰 차이를 보이는 걸까. 취재결과 두 설문조사는 조사방법과 표본집단의 상이한 차이로 인해 다른 결과가 나온 것으로 확인됐다.
안 의원측은 “우리가 공개한 내용은 포털 사이트의 온라인 투표와 다른 것이다. 이번 조사는 다음(Daum)의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해 전국의 여대생 40만 명에게 이메일을 보내 회신이 온 여대생 3백18명에 대한 통계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잡링크는 “우리 사이트의 회원들을 상대로 온라인 조사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즉, 두 조사결과 모두 표본집단의 차이로 전국 여대생을 대표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안 의원이 공개한 자료는 다음의 여대생 회원 40만 명 중 설문에 응답한 여대생 3백18명 가운데 절반이 성경험이 있는 것이고 <전교학신문>이 발표한 자료는 잡링크 회원 중 여대생 24.2%가 성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정말로 우리나라 대학생의 성경험 수치는 얼마나 될까? 정답은 아직은 ‘모른다’다.
<주간조선>이 지난 5월 서울과 수도권의 17개 대학에 재학중인 1∼4학년 대학생 1천2백76명을 대상으로 성의식 조사를 한 결과에 따르면 대학생들 10명 중 3명은 성경험이 있고, 이들은 만난 지 6개월 내에 첫 성관계를 갖고 한달 평균 5회가량 사랑을 나누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27.7%(남 45.6%, 여 15.6%)가 성경험이 있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 숫자는 <전교학신문>의 조사결과보다도 낮다.
또 조금 오래된 것이긴 하지만 지난 1998년 대한가족계획협회 부설 한국성문화연구소(소장 이시백)가 연세대 간호학과 장순복 교수팀에 의뢰해 전국 10개 대학생 1천7백9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미혼대학생 성행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남학생의 54.5%와 여대생 18.4%가 성경험이 있다고 밝혔고 유경험자의 경우 임신을 시켰거나 임신한 적이 있다고 답한 사람은 남학생 31.3%, 여대생 16.5%였다.
그런가 하면 대학생이 아니라 일반 20대 남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는 이보다 훨씬 높다. 지난 2000년 8월부터 4개월 동안 20대 남녀 1천1백28명(남 5백87명 여 5백41명)의 성실태를 이메일로 설문조사해 펴낸 <엘로우 파일>(이성환 지음)에 따르면, 20대 남성의 83%가 성경험이 있고, 여성은 53%가 성경험이 있었다. 성경험이 있는 남성의 40%가 19세 이전에 성경험을 가졌으며 평균 첫 경험 연령이 19.5세인 반면, 여성은 평균 20.5세에 첫 성경험을 가졌다.
또 서울시 여성발전기금의 지원으로 전국의 20∼30대 미혼 여성 5백명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조사 결과에 따르면 36.4%가 ‘성관계’를 가졌다고 답했다.
이처럼 믿거나 말거나 식의 성의식 조사에 대해 여론조사전문기관의 한 관계자는 “우리 사회의 민감한 주제 중 하나인 성에 대한 설문조사는 신중하게 이루어져야한다”‘며 “대체로 사람들이 성에 대한 솔직한 입장을 밝히길 꺼려하고 특히 여성의 경우가 더욱 그렇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성의식에 대한 조사는 비슷한 시기에 설문조사를 해도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먼저 설문방법에 따라 면접자가 직접 응답자를 만나 조사하는 경우와 인터넷이나 전화를 이용해 조사하는 경우 차이가 많이 나는 편이다. 후자의 경우 응답자의 익명성이 보장되어 전자보다 솔직한 응답을 기대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성의식에 관한 조사를 누구를 상대로 한 것인지에 따라 차이가 많이 난다. 서울지역 대학생들을 상대로 조사한 것인지, 지방대학까지 포함된 것인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서울지역이라도 도심에 소재하는 대학인지 변두리에 소재하는 대학인지에 따라 다른 결과를 보여준다고. 특히 조사대상에 여자대학이 포함됐느냐에 따라서도 상이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여론조사나 설문조사를 볼 때 결과 수치만을 볼게 아니라 모집단이 무엇인지, 표본집단 추출은 잘 되었는지, 오차영역은 어떠한지를 따져보아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