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정배 법무장관(오른쪽)이 강정구 교수 사건과 관련, 검찰총장에 대한 지휘권을 공식 발동한 가운데 김종빈 검찰총장이 13일 오전 서초동 대검청사에 도착해 승용차에서 내리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열린우리당의 한 의원실에서 나온 말이다. 지난 국정감사 때는 여당 법사위 소속의 의원실에서 “엄격히 말해 검찰은 행정부서의 기구 아닌가. 그렇다면 검찰이 수사권을 침해받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정부의 정책 변화에는 어느 정도 따라줘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얘기도 나왔다.
여권 일각에서 제기되는 검찰의 ‘구시대적 답보’와 ‘비 개혁성향’에 대해 비판하는 분위기가 고조될 즈음 12일 천정배 법무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이라는 강경 카드가 나왔다. 이에 맞서 김종빈 검찰총장이 14일 총장직 사퇴라는 초강경 카드로 맞대응을 했다. 이쯤 되면 검찰의 조직적인 집단 반발까지 예상되는 상황이지만, 오히려 현재 검찰의 관심은 향후 불어닥칠 참여정부의 개혁 드라이브가 어떤 강도로 계속 전개될지에 쏠려 있는 상황이다.
잠시 주춤하는 듯하던 검찰 개혁에 대한 여권의 강력한 재의지를 이번 지휘권 발동에서 읽었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 입성 당시 들고 들어왔던 ‘검찰 개혁 시나리오’가 다시 본격적으로 꺼내 펼쳐지는 순간이다. 이런 시각으로 본다면 김 총장 사퇴 또한 어쩔 수 없는 개혁 시나리오의 한 수순에 불과한 셈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부산 지역의 인권변호사로 활약하던 1987년 당시. 그는 대우조선 노동자 이석규씨 사망사건에 개입했다는 이유로 검찰에 구속됐고 자신의 변호사 업무마저 정지당했다. 당시 부산지검 공안부는 하룻밤에 세 차례나 판사와 법원장 집을 찾아다니는 탈법적 행태까지 불사해 가며 기어이 노 대통령을 ‘제3자 개입’ 혐의로 구속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로부터 15년 만에 구속됐던 변호사는 대통령이 되어 검사들 앞에 섰다. 하지만 그 시작은 볼썽사나웠다. ‘검사와의 대화’에서는 “이쯤 되면 막 가자는 것이냐”라는 험악한 말까지 나왔다. 강산이 한 번 하고도 반이 더 바뀌었을 시간도 변호사 출신 대통령과 검찰의 뿌리 깊은 불신의 골을 메워주지는 못했다.
지난 2002년 대선은 우리 헌정 사상 최초의 법조인 출신 대통령이라는 새로운 이정표를 남겼다. 여야 유력 후보 두 사람이 모두 판사 출신이었기 때문. 하지만 실상은 판이했다. 이회창 후보가 대법관까지 지낸 엘리트 코스를 밟아 왔다면 노무현 후보의 판사 경력은 고작 대전지방법원 형사합의부 말단 좌배석 판사가 전부였다. 그나마도 적성에 맞지 않는다며 8개월 만에 법복을 벗어버렸다.
아무튼 법조인 출신 대통령을 맞는 사법부와 검찰의 긴장감은 남달랐다. 특히 검찰이 갖는 위기의식은 더했다. 당선자 시절부터 검찰 개혁에 대한 심상찮은 분위기가 공공연히 감지됐기 때문이다.
당시 대통령직인수위의 한 관계자는 “노 대통령의 검찰 개혁에 확고한 방침은 두 가지다. 권력으로부터의 검찰 독립이 하나고, 검찰 권력에 대한 견제 장치가 또 다른 하나”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상 개혁의 무게 중심은 후자쪽에 쏠려 있었다. 검찰의 권력을 견제할 필요가 있다는 의지였던 것. 검찰이 긴장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참여정부가 지난해부터 줄기차게 신설을 검토하고 있는 공수처(공직자비리수사처)가 바로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당선자 시절 노 대통령의 검찰 개혁에 대한 일성도 상당히 강경했다. 그는 2003년 2월 “나는 검찰을 절대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을 것이므로 당당하고 떳떳하게 개혁을 단행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는 “검찰 내부의 조직적 반발이 있더라도 뛰어넘겠다”며 “법무부 또한 더 이상 검찰을 위한 법무부가 되어선 안된다”는 말로 법무부를 개혁의 전위대로 삼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민변 출신 강금실 변호사의 법무장관 임명은 그 첫 신호탄이었다. 한차례 ‘검란’ 파동이 몰아쳤지만 강 장관은 강단있게 버텨냈고, 청와대를 흡족케 했다. 하지만 강골 송광수 검찰총장의 취임은 청와대의 거침없는 개혁 구상에 난기류를 몰고 왔다.
강력한 국민적 지지 여론을 등에 업은 검찰의 대선 비자금 수사가 휘몰아치면서 노 대통령이 구상했던 검찰 개혁 시나리오는 사실상 ‘올 스톱’ 상태에 빠지게 됐다. 일각에서는 ‘검찰은 일단 내버려두고 사법부부터 우선 손 보자’는 우회론까지 거론될 판이었다.
노 대통령으로서는 “검찰의 수사권에 최고 권력자가 개입하지 않겠다”는 자신의 약속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청와대 내부에까지 수사 범위가 미치는 검찰의 강공책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당시 여권에서는 “당시 송 총장과 안대희 중수부장이 스타덤에 올라 각광을 받으면 받을수록 오히려 검찰 권력이 무소불위로 통제되지 않는다는 정치권의 문제의식은 더욱 고조된 셈”이라며 “특히 이런 과정에서 빚어진 검찰의 일련의 ‘오버’를 보면서 청와대와 여권의 검찰에 대한 견제 장치 의지는 더욱 강화된 셈”이라는 의미심장한 견해도 제기됐다.
특히 지난해 6월 공수처 신설 움직임에 대해 송 총장이 반발하며 “이는 검찰권 행사에 불만을 품은 세력이 검찰의 힘을 무력화하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고 언급해 청와대를 분노케 했다. 당시 법조인 출신의 여당 의원도 “검찰이 정말 오만 방자하다. 도대체 언제까지 저럴 것인가”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당시의 상황에 대해 특검 출신의 한 중진 변호사는 “검찰은 검찰대로 ‘권력이든 뭐든 눈치보지 않고 우리는 법과 원칙대로 당당히 나간다’는 자부심에 빠져 있는 반면, 청와대와 여권으로서는 ‘검찰이 과거의 그릇된 관행에서부터 비롯된 잘못을 반성할 줄은 모르고 스스로의 권력화에 빠져 있다’고 보고 있어 그 시각이 완전히 다르다”고 진단한 바 있다.
검찰에 대한 여권의 불만과 위기의식은 결국 지난해 7월 강 장관의 전격 경질 카드라는 우회적인 방법으로 표출됐다. 당시 여권에서는 “강 장관이 대중적 인기가 높아져서인지 점차 개혁성이 후퇴하고 오히려 검찰의 문화에 동화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강하게 불거져 나왔다. 무엇보다 송 총장의 강성에 오히려 강 장관이 현격히 밀린다는 의식이 지배적이었다. 당시 이런 여론을 주도한 이가 바로 천 장관과 여권의 C의원 등이었다.
당시 차기 법무장관 인선을 앞두고 여권에서는 두 가지 목소리가 나왔다. 밖에서의 개혁과 안으로부터의 개혁이 그것. 즉 강력한 개혁성 인사를 임명해서 주춤했던 검찰 개혁 드라이브를 다시 가동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고, 검찰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 무시할 수 없는 만큼 검찰 조직을 잘 아는 내부 인사를 통해 큰 파란이 없는 점진적 개혁을 진행해 나가야 한다는 의견이 맞섰다.
결과적으로 부산고검장 출신의 합리적 성품으로 알려진 김승규 장관의 임명은 노 대통령이 후자쪽 의견을 택했음을 반영하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또다시 김 장관에 대해 여권의 불만이 쏟아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장관의 검찰 개혁 의지 자체가 의심스럽다는 불만이 팽배했다. 하지만 장관직 수행이 오랜 것도 아니고 특별한 결격 사유도 없는 장관을 단순히 여권 일각에서 제기되는 불만만 가지고는 경질할 수 없었다. 호남 민심 배려 차원도 한몫을 했다.
국회 주변에서는 송 총장과 최종영 대법원장이 물러나는 2005년을 기점으로 해서 참여정부 후반기에 본격적인 사법부와 검찰의 개혁 회오리가 단행될 것이란 전망이 심심치 않게 불거져 나왔다.
특히 검찰에 대해서는 송 총장이 퇴임하는 4월 이후를 주목하는 시각이 우세했다. 정치권의 분위기를 감지한 검찰 내부에서도 차기 총장 선임을 예의주시했다. 개혁성향이 강한 외부 인사 영입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조직의 안정을 우선시하는 김종빈 총장으로 결정되자 조직은 차분해졌다. 하지만 이는 반대로 강한 개혁 성향의 법무장관 임명을 예고하는 인사였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김 총장의 성품이 강한 뚝심보다는 차분하고 합리적인 편이어서 강성 성향의 장관과 잘 조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란 기대 때문이었다. 실제 김 총장 취임 두 달 만에 김 장관이 국정원장으로 옮겨가고 법무장관 자리를 비워 둔 것은 사실상 여권의 검찰 개혁 시나리오를 위한 포석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제 더는 검찰 개혁 드라이브를 늦출 수 없다는 여권의 의지 반영이었던 셈. 때맞춰 개혁 성향이 강한 이용훈 대법원장의 임명으로 인해 사법부 개혁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는 시점이어서 이런 분위기는 더했다. 지지부진하던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와 함께 공수처 신설 문제도 빨리 매듭지어야 할 분위기였다.
천 장관의 임명은 이런 여권의 의도를 숨김없이 드러낸 카드였다. 대검의 한 관계자는 “정치 성향이 강한 천 장관의 임명에 대해 기대반 우려반의 심정이었지만 솔직히 강한 소신과 정치적 배경으로 우리 검찰의 입장을 반영해줄 것으로 기대한 것이 더 컸다. 천 장관이 취임 이후 ‘밖에서 보든 검찰과는 달리 막상 들어와서 보니 다르다’는 말을 할 때에는 ‘제 2의 강금실’로 보기까지 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강 전 장관과 천 장관은 확연히 달랐다. 인사 자체만으로도 파격적 성격을 띤 전격적 조치로 인해 갑자기 검찰 개혁의 총대를 멘 강 전 장관에 비해 천 장관은 한마디로 준비된 장관이었다. 참여정부 출범 전부터 노 대통령의 검찰 개혁에 대한 밑그림을 그렸던 주인공인 천 장관. 그의 강한 원칙과 소신은 지휘권 발동과 검찰총장 사퇴라는 충격적인 상황을 통해 비로소 구체화되고 있는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