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신이 C그룹 창업주 장남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이아무개씨의 어린 시절 모친과 함께 찍은 사진. 유전자 감식 결과 친자일 확률이 99.9%로 나왔다. 아래는 <일요신문> 638호 지면. | ||
이갑씨는 국내 굴지의 재벌그룹 창업주의 장남.
이갑씨는 슬하에 을과 병 등 두 아들과 딸 하나를 두고 있고, 장남인 을씨가 현재 C그룹 회장으로 올라있다. 즉 이갑씨가 혼외정사로 둔 아들이 바로 정씨이고, 그가 부친을 상대로 친자확인 소송을 낸 것이다.
지난해 6월 이정씨는 친자확인 소송을 냈지만 우여곡절이 많았다.
무엇보다 친자확인소송 당사자인 이갑씨의 행방이 오리무중이었던 것이다. ‘행방불명’인 이갑씨를 대신해 장남인 이을씨와 차남인 이병씨가 나서야 했고 ‘피고’가 행방불명이기에 사건은 제자리 걸음을 했다.
결국 담당 재판부는 지난해 12월 이갑씨의 주민등록지인 부산지방법원가정지원으로 사건을 보냈다.
지난 봄 부산지법가정지원 담당재판부는 유전자감식을 할 것을 결정했다. 행방불명인 피고 이갑씨 대신에 아들인 이을씨와 이병씨가 유전자감식에 응하게 됐다.
유전자 감식은 지난 9월14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이뤄졌다. 원고인 이정씨는 먼저 검사를 마쳤고, 이어 몇 시간의 간격을 두고 이병씨가 병원에 도착해 검사에 응했다.
관심을 모았던 그룹회장인 이을씨의 검사 수용 여부는 불발로 끝났다. 업무상 ‘해외 출장’ 때문에 응할 수 없었다는 게 이을씨쪽의 입장으로 알려졌다.
유전자 감식에 응한 이병씨는 이정씨와 안면이 있다.
이병씨는 이정씨보다 한 살이 더 많고, 이정씨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무렵 둘은 만나기도 했다. 즉, 이병씨는 정씨가 동생임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이병씨는 이정씨의 손모양이나 다리 모양을 보고 “우리식구 맞네”라는 얘기를 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 뒤로도 두 사람은 전화연락을 하며 알고 지내다 이정씨가 고교를 졸업한 뒤 외국 유학을 가면서 연락이 끊겼다. 이번 친자확인소송을 내기 전 이정씨쪽에선 예전 연락처로 연락을 했지만 연락이 되지 않았다.
그러다 근 20여년 만에 유전자 감식 현장에서 둘이 마주친 것. 하지만 별다른 대화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잠깐 얘기 좀 하자”, “바쁘다”는 식의 토막대화가 전부였고 두 사람은 악수도 나누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어색한 해후였던 셈이다.
이날의 유전자 감식 결과는 지난 10월18일 속개된 재판에서 당사자들에게 정식으로 통보됐다. 결과는 이병씨와 이정씨의 유전자가 99.9%로 일치한다는 것.
유전자 감식 결과로 미루어 보아 재판부는 친자관계를 확인해 줄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중견 인테리어 사업자로 활동하고 있는 이정씨는 친자확인소송을 제기하기 전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돈보다는 내 아이들에게 제대로 뿌리를 알려주고 싶기 때문”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어릴 때부터 부친이 부재하는 환경에서 자랐지만 커서는 늘 아버지 이름란에 ‘이갑’이라는 이름을 쓰고 다닐 정도로 ‘아버지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강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재산분할 문제도 주요 이슈로 떠오를 전망이다.
그가 엄연히 세 번째 아들로 호적에 오르면 아들로서 법적인 권리도 당연히 인정받기 때문이다.
현재 C그룹은 이갑씨의 장남인 이을씨가 완전히 물려받은 상태다. 이을씨가 회사를 창업한 게 아니라 할아버지가 창업한 회사를 물려받은 것인 만큼 C그룹의 이을씨 지분은 대부분 부친이나 할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때문에 이정씨가 재산분할청구소송을 낼 경우 C그룹의 경영권에 일대 혼란이 올 수도 있는 상황이다. 물론 아직 이갑씨가 생존해 있기에 상속 재산에 대한 분할청구소송을 낼 형편은 아니다.
이정씨도 재산 찾기보다는 부친 찾기에 먼저 나설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이정씨는 이을씨 집안에 수차례에 걸쳐 부친의 안부를 물었지만 대답을 듣지 못했다. C그룹측에서도 이갑씨가 ‘신병치료차’ 중국 등 외국에 머문다는 식으로 대답을 할 뿐 구체적으로 그가 어디에 있는지 밝히지 않고 있다. 이정씨도 자신이 아버지를 찾고 있다는 것을 부친이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며 답답해하고 있다.
때문에 ‘아들’ 지위를 확보한 그가 친권자로서 수사 의뢰를 통해 부친 찾기에 나설 가능성을 그려볼 수 있다.
이정씨는 10대 후반 때 부산에 머물고 있는 부친을 부산과 서울에서 만나본 뒤 그동안 연락이 끊어져 만나지 못하고 있었다.
C그룹 이을 회장측이 11월15일 법원의 선고 이후 어떤 대응을 할지, 재계의 전면에서 사라진 이갑씨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주목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