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2월15일 개성공단 리빙아트공장 첫 제품 생산 기념식에 참석한 정동영 장관(왼쪽)이 첫 제품을 전달하고 있다. 공동사진취재단 | ||
당시 개성에서 열린 첫 제품 출시 기념식에는 정동영 통일부 장관을 포함, 우리측 참가단 3백80여 명이 함께했다. 언론은 환호했고 정부는 개성공단이 만들어줄 장밋빛 미래를 홍보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개성공단에서 첫 제품을 생산한 지 채 6개월도 되지 않은 지난 5월 이후 리빙아트가 사실상 부도 위기에 처한 사실이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엄격한 기준으로 개성공단 입주 업체들을 선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공단 입주업체 선정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개성공단 사업지원단을 운영중인 통일부측은 이 같은 사실을 파악조차 하지 못한 채 당혹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리빙아트의 주거래은행 중 하나인 기업은행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초부터 1년 이상 대출금을 연체한 리빙아트의 채권이 올해 5~6월 사이 ‘적색(특수)채권’으로 분류됐다. 현재 리빙아트는 금융거래가 모두 막힌 여신불능 상태로 사실상의 부도 상태”라며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기업채권이 적색으로 분류되면 해당기업은 곧 신용불량회사로 등록돼 모든 금융거래가 중지된다. 주거래 은행의 배려가 없다면 사실상 부도를 맞게 되는 셈이다.
기업은행은 리빙아트의 대출을 적색채권으로 분류한 후 34억여원의 대출금 중 29억7천만원을 보증회사인 신용보증기금으로부터 변제받았다. 그러나 보증이 안 돼 있던 5억원은 고스란히 떼일 처지에 놓이게 됐다. 기업은행의 한 관계자는 “현재 변제받지 못했던 5억원은 ‘회수불가능 채권’으로 분류되어 있다”고 전했다. 올해 초 작성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이 회사는 2004년 한 해 총매출 72억여원에 24억원이 넘는 당기순손실을 냈을 정도로 경영상황이 좋지 않았다.
또한 지난해 여름까지 이 회사의 주거래은행이었던 산업은행의 한 관계자는 “리빙아트가 대출금을 연체하기 시작한 것은 이미 2003년도부터였다. 2004년도에 들어와서는 사실상 정상적인 기업활동이 어려웠던 것으로 기억된다”고 말했다.
은행 관계자들의 얘기대로라면 리빙아트는 개성공단에 입주하기 전과 후 모두 재무상태가 매우 안 좋았던 셈이다. 그렇다면 이같이 경영이 어려웠던 리빙아트가 남북경협의 또 다른 상징인 개성공단 입주업체로 선정된 배경은 무엇일까. 의문은 여기서부터 싹트게 된다.
지난해 정부와 현대아산측은 개성공단 사업이 시범사업임을 감안해 기업의 안정성, 성공여부를 업체선정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분양공고를 낼 당시 토지공사가 밝힌 평가항목만 보더라도 유동비율, 부채비율 등을 포함한 해당 업체의 감사보고서에 대한 배점이 25점(1백점 만점)에 달했다. 당시 토지공사측은 “까다로운 북한 환경에 버티려면 단단한 회사가 가야 한다. 시범단지의 경우 그야말로 시범인 만큼 성공 가능성을 중시할 생각”이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리빙아트는 당시 토지공사측이 밝힌 ‘단단한 회사’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토지공사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입주 업체 선정과정에서) 다양한 기준이 평가항목에 포함되어 있었다. 기업의 재무상태도 큰 요소였고 사업성, 고용창출 효과, 적은 시설투자 등 많은 요인을 종합적으로 판단했다. 당시 리빙아트는 재무상태가 좋은 회사는 아니었지만 기술력이 있고 브랜드 인지도가 높았던 것에 좋은 평가가 내려진 것 같다. 당시 업체를 결정하는 과정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최근 리빙아트의 경영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 만약 잘못되면 첫 제품을 생산한 기업이라는 점 때문에도 문제가 될 수 있지 않겠나. 금융권 여신이 정지됐다는 말은 처음 듣는다”고 덧붙였다.
리빙아트가 개성공단 시범단지 입주업체로 선정된 것은 지난해 6월 말이었다. 입주업체 선정은 한국토지공사가 맡았다. 15개 업체를 뽑는 선정과정에 지원한 업체의 수는 무려 1백36개에 달했다. 그러나 처음 업체가 선정될 당시 탈락했던 리빙아트는 한 기업이 자격요건 미달로 자격이 박탈되면서 기회를 잡게 됐다. 지난해 6월30일 리빙아트는 15개 업체 중 마지막으로 토지공사와 개성공단 입주계약을 맺게 된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당시는 이미 회사의 경영이 악화돼 은행권의 대출금 연체가 시작됐던 시점이었다.
입주업체로 선정된 이후 리빙아트는 개성공단에 입주한 다른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한국수출입은행으로부터 남북경제협력기금(30억원·금리 3.10%)을 지원받은 후 공장건설에 들어갔고 그해 12월 개성공단에 입주한 업체 중 가장 먼저 제품을 생산했다. 가장 마지막에 입주가 결정된 기업이 가장 먼저 제품을 출시하게 되는 영광을 얻게 된 것이다.
개성공단 진출과 동시에 국내 자산을 모두 매각한 리빙아트는 현재 국내 생산활동은 접은 채 개성공단 생산품의 국내외 유통만을 담당하고 있다. 이 회사의 한 관계자는 “개성공단 사업이 지연되고 거래처 어음에 문제가 생기면서 경영이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내부적으로 해결하려고 노력중이고 곧 회사가 정상화될 예정이다. 사실상의 부도라는 말은 어불성설이다”면서 “지난해 12월부터 개성공단에서 생산이 시작된 이후 공장은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다. 한 달에 6만 개 정도의 상품을 생산해 국내외에 유통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개성공단 사업을 총 관리하고 있는 통일부측은 이 같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당혹스럽다는 입장만 보이고 있다.
통일부 개성공단 사업지원단의 한 관계자는 “자금 등에서 큰 문제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당황스럽다. 시범단지 입주기업의 경우 남북협력기금으로 이미 지원을 받았기 때문에 추가로 운영자금 등을 지원할 계획은 없다. 업체를 선정하는 작업을 토지공사가 다 맡아서 했기 때문에 통일부는 자세한 내용은 잘 몰랐다”며 “그러나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큰일이다. 첫 제품을 생산한 기업이 잘못되면 통일부 입장에서도 난감할 수밖에 없다. 리빙아트 경영이 어렵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경제전문가들은 “리빙아트의 경영 악화가 개성공단 입주로 인해 더 심화된 것인지 아니면 입주 업체 선정 자체에 문제가 있었던 것인지에 대해선 보다 정확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국민의 혈세와 다름없는 막대한 남북경협기금이 투입되는 만큼 한푼의 기금도 허투로 쓰여서는 안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