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의 한 ‘카지노바’ 내부. 초기엔 재미삼아 카지노의 ‘맛’을 보여주는 수준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실제 카지노처럼 변했고 결국 당국의 철퇴를 맞고 있다. 간판에 ‘CASINO’라고 쓰는 것도 불법이다(작은 사진). | ||
하지만 지난 10일 검찰의 기습단속으로 드러난 강남의 M카지노바는 이미 재미 수준을 넘어서 있었다. 가수 겸 MC 신정환씨가 포함된 연행 대상자들은 더 이상 술손님이 아닌 ‘도박꾼’이었다. 수천만원의 판돈이 오가는 카지노바는 ‘바(BAR)’라기보다 차라리 ‘카지노(CASINO)’였던 것이다.
강남경찰서의 한 관계자는 “이번 단속에서 소문으로만 나돌던 카지노바의 실체가 여실히 드러났다”며 “강원랜드와 마찬가지로 이곳에서 돈을 탕진하고 빚더미에 올라앉은 사람이 속출하고 있다”고 그 실태의 심각성을 전했다.
카지노바 단속의 배경에 대해 이 관계자는 “이곳에서 도박판을 벌이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고만 밝혔다. 이어 “조사 과정에서 거액의 돈을 잃은 사람이 일부 드러나기는 했지만 돈 잃은 사람의 신고를 받고 단속을 벌인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일반음식점으로 허가받은 카지노바가 영업장 내에서 업종과 관련 없는 시설을 설치하면 식품위생법상 시설기준 위반행위에 해당된다. 뿐만 아니라 업종구분에 혼동을 줄 수 있는 ‘CASINO’라는 문구를 넣어 간판으로 사용하면 식품위생법상 영업자 준수사항을 위반한 것이 된다. 또 카지노바에서 주고받는 칩을 현금으로 환전해주는 행위는 관광진흥법 위반에 해당한다.
이처럼 현행법이 엄연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카지노바는 도대체 어떤 식으로 도박판을 벌이는 것일까. 그 실체를 확인해 보기 위해 <일요신문>은 이번 검찰과 경찰의 합동 단속 철퇴에서 운 좋게 비켜난 카지노바 몇 곳을 직접 잠입 취재했다.
먼저 신촌부근에 위치한 A카지노바. 입구에는 A라는 상호와 함께 작은 영문으로 ‘CASINO BAR’라고 적혀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의외로 한산한 분위기였다. 영업이 정점에 오를 시간인 10시40분을 넘어서고 있었음에도 널찍한 바를 차지한 손님은 10명이 채 되지 않았다.
이곳에서 일한 지 석 달째로 접어들고 있다는 바텐더 김아무개(여·25)씨는 “원래 이 시간 쯤에는 사람들이 정신없이 북적였는데 요즘에는 싹 빠져나가고 손님이 들지 않는다”며 “지금 같은 시기(단속 기간)에는 다들 몸을 사리는 게 당연하다”라고 말했다.
김씨에 따르면 카지노바는 주말보다 평일에 사람이 더 많았고 초저녁부터 사람들이 들어차기 시작했다는 것. 김씨는 이어 “언젠가는 경찰이 한번 뜰 것이라는 소리가 계속 있긴 했다. 그런데 이렇게 크게 터질 줄은 아무도 몰랐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주변에는 7개의 카지노바가 있는데 이 가운데 5개 업소가 경찰의 기습적인 단속에 걸려 문을 닫은 상태다. 단속대상이 된 업소 모두 게임을 통해 딴 칩을 상품권이나 현금으로 교환할 수 있게 한 곳이었다는 게 그녀의 설명이다.
김씨는 “여기서 일하던 딜러는 일을 이미 그만둔 상태”라며 “딜러는 카지노 관련학과를 나온 이를 고용했었는데 단속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일을 그만뒀다”고 전했다.
A카지노바를 찾은 사람들은 텅빈 카지노 테이블을 힐끔거리기만 할 뿐 섣불리 그곳에 앉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자리를 옮겨 강남에 위치한 N카지노바를 찾았다. 이곳 역시 손님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매우 고급스러운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이곳은 연예인들도 한번씩 찾는 곳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일하는 한 여종업원은 “연예인 누가 이곳을 찾는지에 대해 사장님이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했다”며 밝히기를 꺼렸다. 경찰 단속에 대해 언급하는데도 극히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했다.
자신을 이아무개(여·24)라고 밝힌 이 여성은 “경찰 단속이 시작됐다는 소리가 들리자 사장님이 카지노 테이블 중 몇 개를 아예 치워버렸다. 원래는 5개 정도 있었는데 지금은 보시다시피 3개밖에 없다”며 “지금은 포커하고 블랙잭만 할 수 있다. 다른 것은 위험의 소지가 있어서 다 치웠는데 그 때문인지 단속에 걸리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살펴보니 테이블에 앉아 카드를 즐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룸에서 재미로 배우고 있는 이들이 몇 명 있을 뿐이었다.
▲ 탁 트인 공간에 각종 게임 테이블이 마련돼 있는 한 카지노바 게임룸 전경.(아래사진) 카지노바 대부분이 썰렁한 가운데 한 테이블에서 손님 몇이 카지노를 배우고 있다. | ||
이씨의 말대로라면 연예인 신씨가 당초 주장한 바와 같이 아는 사람 덕분에 우연히 도박판에 합류하게 됐다는 것은 애초 불가능한 셈이다. 이씨는 “신씨가 나중에 도박사실을 시인한 것은 이런 시스템에 대해 잘 아는 검찰의 추궁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녀는 또 “압구정동이나 삼성동 쪽 카지노바 중에는 거의 매일 연예인들이 찾아와 늦게까지 놀다가는 곳도 있다. 여기도 이따금 한 번씩 찾아왔는데 대부분 술을 마시러 온 게 아니라 게임을 즐기기 위해 오는 것”이라며 “신씨는 하필 단속할 때 카지노바에 있어 재수 없게 걸린 것”이라고 안타까워 하기도.
이씨는 카지노바로 크게 한탕하고 접으려는 이들이 문제를 키웠다고 볼멘소리로 말했다. 실제로 이씨의 말처럼 일부 업주들은 카지노바를 운영하면서 도박판을 유치해 큰돈을 쓸어 담은 것으로 검찰 조사결과 드러났다(28면 하단 기사 참조).
이번에는 일산에 위치한 P카지노바를 찾았다. 이곳 간판에도 역시 ‘CASINO BAR’라는 영문이 씌어져 있었다. 이 카지노바는 개업한지 한 달이 조금 넘었는데 단속이 실시되는 바람에 손님의 발길이 끊어져 울상을 짓고 있었다. 일산 신도시 번화가에 자리 잡은 카지노바들 중 이곳을 제외한 대부분이 이미 단속에 걸려 문을 닫았다.
이 업소도 강남의 업소와 마찬가지로 룰렛이나 바카라 등의 게임 테이블을 치워놓은 상태였다. 이곳의 딜러도 며칠 전 그만둔 상태였다.
이 업소의 바텐더 강아무개씨(여·24)는 강남과는 달리 업계의 소식들을 비교적 거침없이 들려주었다. “단속 때문에 사장님이 마음고생이 많지 않느냐”고 기자가 슬쩍 운을 때자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연예인이 걸려드는 바람에 더 이슈화됐다. 연예인들 중에 카지노바를 이용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는데 그중 신씨가 있을 줄은 몰랐다”라며 놀라움을 표시했다.
강씨는 “카지노바라고 해서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아예 테이블에 돈뭉치를 수북이 쌓아 놓고 게임을 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 그에 비하면 게임에서 딴 상품권을 돈으로 교환해 주는 건 약과”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또 일부 카지노바의 경우 조직폭력배와의 연계설에 대해서도 강씨는 “나도 처음에 이 일 시작할 때 그 점을 우려했다. 직접 현금이 오가거나 멤버십제로 운영되는 카지노바는 대부분 조폭이 개입돼 있는 걸로 알고 있다”며 “이번에 단속된 곳들 중에도 조폭이 개입된 곳이 많다고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기자가 “단속이 있기 전에 게임은 주로 어디서 이루어졌는가”라고 질문하자 강씨는 바의 구석진 곳으로 안내했다. 기자는 그곳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홀과는 달리 탁 트인 공간에 각종 게임 테이블이 마련돼 있었고 장식 또한 고급스럽게 돼 있었다. 소규모 카지노를 그대로 재현해놓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사진촬영은 삼가 달라고 부탁했다.
강씨는 “현재로서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단속이 풀리면 다시 손님들이 몰려올 것으로 본다. 매일같이 오는 분들이 한두 분이 아닐 정도로 카지노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의외로 크더라”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과 경찰은 앞으로 카지노바에 대해 지속적으로 단속을 펴서 불법 영업행태를 뿌리 뽑겠다는 입장이다. 검찰은 오락을 사칭한 도박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전에 관련 규제법을 만들어 카지노바를 보다 효율적으로 단속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현재 카지노바의 수는 전국적으로 급속히 늘고 있는 추세”라며 “카지노바 창업을 전문으로 하는 컨설팅 회사도 있고, 이쪽(카지노바)에 인력을 전문적으로 공급하는 업체까지 등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윤지환 프리랜서 tangohunt@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