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교수는 “유골 발견 첫날에는 사체가 4구였다. 그런데 왜 한 구만 다음 날 뒤늦게 발견됐는가”라며 “당시 유골을 감식했던 법의학팀이 열쇠를 쥐고 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유골을 감식했던 교수들이 전직 경찰로부터 고소를 당한 일도 의문스럽다”고 덧붙였다. 당시 법의학팀 일원으로 유골을 감식했던 채종민 교수는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전직 경찰로부터 여러 번 고소를 당한 것은 사실이지만 기각됐다. 고소한 이유는 우리가 ‘타살’로 결론을 내렸기 때문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채 교수는 “유전자 감식 결과 5구의 사체는 모두 부모의 DNA와 일치했다”며 뒤늦게 발견된 한 구의 사체에 대한 의혹을 일축했다.
최근 실화소설을 펴낸 것에 대해 김 교수는 “2002년 9월 아이들의 유골이 발견됐을 당시 나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세상이 진실을 밝혀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국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개구리 소년 실종 사건의 추적 과정을 밝혀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의 주장과 책 내용을 살펴보면 여전히 그는 범인의 실체에 대해 나름대로 확신을 갖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주고 있다.
양하나 프리랜서 hana010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