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우석 서울대 석좌교수는 지난 24일 서울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연구원의 난자 제공 사실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모든 공직을 사퇴하겠다며 ‘백의종군’의 뜻을 밝혔다.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황우석 서울대 수의학과 석좌교수가 끝내 눈물을 글썽였다. 그는 지난 11월24일 서울대 수의대 강당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모든 책임은 내게 있으며 따라서 돌팔매는 내게만 향해 달라”고 거듭 머리를 숙였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은 착잡함과 안타까움에 빠져 들었다. 그리고 그 분노의 목소리가 황 교수 연구팀의 윤리 문제를 집중 제기한 MBC
하지만 이번 파문을 바라보는 많은 학계 전문가들은 “보건복지부와 서울대, 그리고 청와대 등 정부기관이 바로 황 교수를 지금의 곤경에 빠트리게 한 주범”이라며 “지금껏 자신의 직무가 무엇인지조차 인지 못하고 손 놓고 있다가 막상 문제가 되자 황 교수에게 모든 것을 미루고 자신들은 마치 상관없다는 듯이 뒤로 빠져 있다”고 맹비난을 퍼붓고 있다.
학계의 한 관계자는 “보건복지부와 서울대 수의대 연구윤리심의위원회(IRB), 박기영 대통령정보과학기술보좌관, 노성일 미즈메디병원 이사장, 그리고 언론이 이번 파문을 키운 주범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고, 또 다른 한 관계자는 “과학이 앞서가려 해도 우리 정부의 지원과 선도 능력이 그를 쫓아가지 못했다”며 울먹이기도 했다.
황 교수의 기자회견이 열리기 직전인 24일 오전. 보건복지부는 황 교수 연구팀의 난자 기증과 관련한 윤리 논란에 대한 조사 결과라면서 서울대 수의대 연구윤리심의위원회(IRB)의 보고 내용을 발표했다. 복지부 측은 “황 교수팀이 법이나 윤리 규정을 위반한 사실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사태가 이렇게까지 확산되도록 지금껏 복지부와 IRB는 뭘 하고 이제서야 뒷북을 치느냐”는 비난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IRB는 세계보건기구가 정한 생명의료연구의 국제 규범에 따라 생명의료연구기관에는 필수적으로 설치해서 운영해야 하는 기구다. 이 기구는 생명의료 연구계획을 사전 검토해 윤리성을 따지는 역할을 맡는다. 서울대가 수의대에 이 기구를 설치한 것은 지난 1월12일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기구는 복지부의 관리감독을 받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그 이후 지금까지 IRB가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해 왔는지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심지어는 이 기구가 존재는 해 왔는지조차도 의심쩍다는 지적이다. 황 교수 연구팀의 난자 기증에 대해서 제대로 된 조사나 심의 절차를 거쳤는지도 여전히 의문 속에 빠져 있다.
학계에서는 “<네이처>에 의해서 황 교수팀의 난자 윤리 의혹이 제기된 것이 지난해 5월이었고, 그 이후로도 계속 의혹이 끊이질 않았는데 그동안 복지부나 IRB가 한번만이라도 제대로 이 문제를 자체 조사해서 황 교수팀에게 지적이나 조언 또는 경고를 했더라면 이 사태까지 왔겠는가”라고 개탄하고 있다.
그동안 IRB의 존재에 대한 의혹은 해외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심심찮게 제기되어 왔다. 지난 9월 국정감사에서 민주노동당의 최순영 의원은 “황 교수팀의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윤리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서라도 IRB의 심의자료와 회의록을 열람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정운찬 서울대 총장은 “열람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답변했다.
▲ 지난 5월19일 황우석 교수와 제럴드 섀튼 교수가 함께 기자회견을 하던 모습. 섀튼 교수는 난자 제공 문제로 최근 황 교수와 결별했다. 사진제공=동아일보 | ||
이 기구의 존재 자체에 대한 의문은 여러 군데서 불거지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8명의 위원에 대한 의혹이다. 민노당 한재각 정책위원은 “지난 국감을 준비하면서 복지부에 요구한 자료에서 IRB 위원의 명단을 확보할 수 있었다”며 “그런데 놀랍게도 이영순 위원장을 비롯, 절반에 해당하는 4명이 서울대 수의대 교수들로 채워져 있었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외부인사 4명 가운데서도 정아무개 교수와 김아무개 목사는 황 교수와 개인적인 친분이 돈독한 인사들이었다는 것. 그리고 나머지 두 명은 서울대 법대의 박은정 교수와 한 스님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런데 더욱 한심한 것은 박 교수의 경우 자신이 IRB 위원에 포함된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었다는 점이다. 박 교수는 “지난해 말 휴대전화로 IRB 위원을 맡아달라는 요청이 와서 황 교수를 직접 만나 ‘맡을 수 없다’는 뜻을 정식으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후 박 교수는 황 교수 측의 요구로 사임계를 쓰기까지 했다는 것. 정식으로 임명을 허락하지도 않았는데 사임계부터 쓴 이상한 형태가 된 셈이다.
이에 대해 한 위원은 “자신의 연구팀을 심의할 IRB 위원의 구성에 심의 대상자인 황 교수가 직접 나선 것도 문제가 있지만 정작 자신이 위원인지도 모르는 인사가 버젓이 명단에 올라 있는 것도 문제”라면서 “과연 지금껏 이런 심의기구가 제대로 된 활동을 했는지 의아함을 떨칠 수가 없다”고 밝혔다.
IRB가 스스로 의혹의 시선을 받게 된 데는 이 기구의 철저한 폐쇄성도 한몫을 했다. 이 기구의 이 위원장은 기자의 인터뷰 요청에 “규정상 우리는 언론과 인터뷰를 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하지만 관련 규정에 그와 같은 내용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 기구의 유명무실을 황우석 연구팀의 일원마저 인정했다는 점이다. 노성일 미즈메디병원 이사장은 21일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던 도중 “IRB는 아직 미비한 점이 있다. 성숙한 연구환경을 갖추지 못한 절차상의 문제가 있다”며 사실상 자신들의 난자 제공에 대한 내용이 IRB의 통과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점을 인정했다.
의학계의 한 관계자는 “원칙대로라면 IRB는 황 교수 윤리 논란의 핵심인 ‘난자 제공처’격인 노 이사장 팀을 제대로 감시 감독했어야 하는데 사실상 그런 기능을 생략한 것으로 보인다”며 “자신의 책임을 제대로 하지 못해 이런 큰 문제를 야기한 IRB는 결과적으로 어떤 변명도 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뿐만 아니다. 민노당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황 교수팀의 의혹에 대해 질문을 하면 복지부 측은 ‘그런 것은 황 교수에게 직접 물어 보라’는 어처구니 없는 대답을 한다”며 “우리 복지부 공무원의 수준이 이 정도인가”라고 어이없어 했다.
이번에 황 교수 파문이 확산되자 뒤늦게 진상 조사에 나섰던 복지부는 그나마도 ‘구태’를 벗지 못한 안일한 태도로 일관, 비난을 스스로 자초하고 있다. 복지부는 IRB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정작 그 자리에는 IRB 관계자를 한 명도 배석시키지 않아 취재진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심지어는 IRB의 보고서 전문도 공개하지 않고 복지부에서 재정리한 축약본만 돌린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관련된 부분이 있어 전문을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프라이버시 부분은 빼고 주면 될 것 아닌가’라는 질문에도 “프라이버시 때문에 그럴 수 없다”며 앵무새처럼 ‘프라이버시 타령’만 계속 되풀이했다.
이에 대해 학계의 한 관계자는 “김근태 복지부 장관이 황 교수팀의 윤리 의혹과 관련해서 ‘국익보다 진실이 무엇인지 밝히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부하 직원들은 여전히 진실이 무엇인지 자기 알 바 아니라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라며 “복지부의 ‘복지부동’은 가히 수준급”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감명국 기자 km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