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통화는 보안사로 통했다
장태완 전 수경사령관은 “어떻게 된 것이 내가 사태 진압을 위해 다른 부대장들과 통화만 하고 나면 귀신같이 선배 장성들이 이를 알고 내게 전화해서 부대 출동하지 말라고 말리곤 했다”고 전했다. 하소곤 당시 육본 작전참모부장도 12·12쿠데타 진압 실패 이유로 “당시 보안사에서 육본을 감청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치 육본은 보안사의 손아귀에서 놀아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육본의 동향을 낱낱이 파악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심지어는 신군부에 의해 후임 육군참모총장으로 옹립되었던 이희성 전 계엄사령관도 지난 94년 검찰 조사에서 “전두환 사령관의 요청으로 참모총장에 취임하고 계엄사령관이 됐지만 전 사령관이 주도하는 군부에서 내 의사대로 업무를 추진한다는 것은 원초적으로 불가능했다. 그 무렵 전두환이 내 관사를 도청하지 않나 몹시 불안에 떨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문홍구 전 합참본부장 역시 한 시사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12·12 당시 수경사령관실에서 통화하는 내용이 모두 녹음되었다는 사실을 조사과정에서 알았다”며 “12·12 전에 노재현 국방장관과 장군 인사 문제를 전화로 논의한 적이 있었는데 보안사 수사관이 그 사실까지 다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12·12쿠데타’를 승리로 이끈 신군부 세력의 핵심으로 전두환 소장 외에 노태우 정호용 박준병 허화평씨 등의 이름이 거론되지만 실제 공신 중의 공신은 정도영 보안사 보안처장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그는 육사 14기 출신의 하나회 멤버였다. 전군의 통신망을 통제 감시하고 각 지구의 보안부대를 지휘해 일선 군대의 동향파악을 하는 것이 평소 임무였던 그는 12일 밤과 13일 새벽에도 육본 측의 진압군 부대 동원을 미리 봉쇄해 무력화시켰던 장본인이었다.
그는 12·12 당시 자신의 사무실에 임시 상황실을 설치하고 각 부대의 통신 감청을 통해 육본 및 군부대의 작전과 이동 사항을 손바닥 보듯이 한눈에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는 그 상황을 체크하는 대로 신군부 측에 보고 또는 지시했다. 그리고 진압군이었거나 또는 진압군 편에 서서 부대 출동을 시도하려는 것을 모두 막았다. 그의 감청 능력이 없었으면 도저히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12·12 당시 육본 측은 육본 벙커 혹은 수경사에 모여서 진압에 대한 대책을 논의했고, 전화로 일선 부대에 직접 지시를 내렸다. 그런 통화 내용이 보안사 보안처장실에 의해 모조리 감청된 것이다.
당시 육본 측은 윤성민 육군참모차장이 정병주 특전사령관 등과 통화를 해서 윤흥기 9공수여단장으로 하여금 병력 출동을 지시했다. 장 수경사령관은 26사단과 수도기계화사단 30사단 등에 병력 출동을 요청했다. 이건영 3군사령관과도 수시로 통화했다. 김진기 육본 헌병감은 전두환 합수본부장의 체포 가능성을 묻는 전화 통화를 했다. 이 모든 내용은 속속 보안사에 의해 모두 감청됐고, 쿠데타 세력으로 하여금 대책을 강구토록 하는 빌미를 제공한 것이다.
군 정보기관인 보안사의 감청 능력은 탁월했다. 합법적 감청을 내세워 그들은 무차별적으로 감청을 실시했고, 그것이 결국 12·12에서는 최대한의 빛을 발했던 셈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보안사내 감청은 모 보안부대의 통신감청팀이 전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진압군 측에 섰던 한 예비역 중령은 “장태완 수경사령관의 주장대로 수경사 일부 병력만이라도 동원해서 보안사를 향했다면 딱히 실병력이 없었던 보안사의 신군부 측은 당연히 본부를 실병력이 있는 다른 곳으로 옮겼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보안사의 그 막강한 감청능력을 무력화시킬 수 있었음에도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패배의 큰 원인이었다”고 아쉬워했다.
그렇다면 당시 진압군 편에 섰던 육본 수뇌부들은 부대 전화가 모두 보안사에 의해 감청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왜 중요한 작전 지시를 전화로 한 것일까. 이는 비화기를 사용하면 감청이 안된다고 믿었던 탓이다. 김수탁 예비역 중령은 “당시에 휴대폰이 있나. 뭐가 있나. 부대 전화가 아니면 딱히 연락을 취할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또 비화기를 사용하면 감청이 안된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실제 당시 이건영 3군사령관 등은 비화기를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보안사의 감청 능력은 이런 비화기 사용을 무력하게 했다. 정도영 보안처장도 지난 95년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그쪽에서 비화기를 쓰더라도 이쪽에서 같은 종류의 비화기를 가지고 있으면 된다. 보안사는 비화기를 사용하고 비밀사항을 얘기하는지를 감시하는 것이니까. 하지만 비화기도 100% 다 보안이 유지되지는 않는다”는 말로 비화기를 사용해도 감청이 가능함을 밝힌 바가 있다.
이에 대해 한 예비역 장성은 “보안사가 달리 무서운 것이 아니다. 자기네들은 합법을 주장하면서 일선 군부대 지휘관의 전화를 자기 맘대로 무차별적으로 감청하기 때문에 무서운 것이다. 사실상 불법 도감청 아닌가. 불법인 줄 뻔히 알면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보안사의 힘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은 바로 그런 정보 능력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전두환 사령관은 보안사령관이 되면서 날개를 달았고 그 막강한 감청 능력이 희대의 하극상 반란 사건을 성공으로 이끈 것이다.
감명국 기자 kmg@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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