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월 취임사를 하는 최문순 MBC 사장. | ||
MBC가 현재 개국 44주년 만에 최대의 위기를 맞이했다. 물론 쟁점은 “PD수첩”의 황우석 교수 관련 취재. 그러나 이로 인해 노출된 심각한 내부 갈등이 더 큰 위기라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이런 내부 갈등의 한 가운데에는 최문순 사장이 있다.
“이번 일이 아니었더라도 3년 임기를 채우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미 최문순 체제는 붕괴 조짐을 보여 왔고 이번 사안이 기폭제가 되고 있을 뿐이다.”
MBC 내부에서 최문순 사장 체제에 대한 비판론을 펴고 있는 이들의 입장이다. 심지어 ““PD수첩”취재 내용이 전부 사실이라 할지라도 최 사장의 퇴진은 막지 못할 것”이라는 극단적인 의견도 있었다.
가장 강력한 비판 세력은 15년차 이상의 고참급 직원들. 익명을 요구한 MBC 보도국 관계자 A씨는 “최 사장이 MBC를 위기에서 구해낼 구체적인 계획이 있기는 한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하며 “마스터플랜은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구도는 갖고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취임 이후 행태를 보면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고 개탄한다.
MBC 고참급 B기자는 최 사장의 리더십의 부재를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돌발사고 발생이 사장 탓은 아니지만 사태 대응 능력은 갖춰야 하는 게 기본”이라 언급한 그는 “강하게 나갔어야 하는 X파일 보도에선 머뭇거렸고 이번에는 너무 세게 나가는 바람에 사태를 악화시키고 말았다”고 지적한다.
‘코드 인사’가 최 사장 체제를 위기로 몰아갔다는 의견도 접할 수 있었다. MBC의 간부인 C씨는 “노조 출신 CEO에 대한 반대 의견이 상당했지만 노조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최 사장 취임은 분명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는 점은 인정했다. 그러나 “문제는 검증되지 않은 CEO라는 부분인데 이는 누구와 함께 일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런데 최 사장은 노조 출신을 적극 기용해 능력이 아닌 코드 인사를 단행했고 이는 좋은 기회를 위기로 바꾸고 말았다”고 주장한다.
사실 최 사장에게 기대감이 집중된 까닭은 그가 MBC의 개혁을 이끌 수 있는 인물이라는 평가 때문이었다. 하지만 최 사장 체제 비판 세력은 이 부분에서 가장 강력한 불만을 토로했다. A씨는 “최 사장이 실행한 개혁은 나이를 낮춘 것뿐이다. 이것도 개혁이라면 분명 개혁이지만 MBC에 도움이 되는 개혁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그는 “프로그램의 질을 높이고 수익 구조를 개선하는 등 전반적인 부분에서의 개혁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취임 1주년이 되는 내년 2월에 구체적인 계획을 내놓겠다는 데 정말 뭐가 있기는 한 건지 의심스럽다”는 의혹을 개진했다.
최 사장 체제에 대한 비판론은 노조로 이어졌다. 최 사장과 최근 논란의 핵심인 “PD수첩”팀 최승호 CP는 모두 노조위원장 출신이다. 막강 세력을 자랑하는 노조위원장 출신으로 노조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이들이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MBC의 한 관계자는 “이번 사안으로 회사뿐만 아니라 온 나라, 아니 전 세계가 들썩이는 데 노조는 조용하다. 침묵은 곧 최 사장과 “PD수첩”팀의 입장에 동조한다는 의미 아니냐. 예전 같으면 벌써 난리가 나도 수천 번 났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취재가 있은 지 며칠이 지난 8일 MBC 노조는 공식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를 통해 취재윤리 준수 여부 검증 미비를 사과한 노조는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C씨는“회사 주식의 70%를 갖고 있는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가 별다른 영향력을 갖지 못한 상황에서 기자회마저 내홍을 겪다 최근에서야 정상화됐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회사를 움직이는 세력은 노조”라고 지적한다. 그는 “최 사장 체제가 붕괴되면 그 책임은 노조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벌써부터 사내 보수 세력은 ‘앞으로 노조 출신 CEO는 절대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회사나 노조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라 얘기한다.
반면 최 사장 체제를 지지하는 세력도 만나볼 수 있었다. 비판 세력에 비해 비교적 젊은 층이고 보도국 기자들보다는 교양국 PD들이 주류를 이뤘다. 최 사장이 보도국 기자 출신임을 감안할 때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교양국 PD와 보도국 기자들의 갈등은 어느 방송국이나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문제점이다.
그런데 최 사장의 경우 취임 과정부터 지금까지 출신부서인 보도국보다 교양국의 지지를 받아왔다. 이는 최 사장의 특이한 이력 때문이다. 최 사장의 경우 출입 기자보다는 주로 고발 취재 영역에서 활동해왔다. 이런 과정에서 고발 취재를 담당하는 교양국 시사 PD들과 교감을 쌓게 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PD수첩” 최승호 CP와는 노조 활동을 같이 하는 과정에서 더욱 깊은 신뢰를 쌓아 상당히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있다.
또 다른 일각에선 현재 MBC의 위기가 최 사장의 책임이 아닌 MBC의 구조적인 모순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공영방송이 된 지 어언 25년이 지나면서 그 모순적인 상황이 한계를 불러왔다는 것.
“MBC는 공영방송이지만 KBS처럼 수신료가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수익원이 오직 시청률에 의존한 광고뿐이라 실질적으로는 상업방송의 모습”이라는 보도국의 D씨는 “시청률에 급급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MBC의 위기를 불러온 주범”이라고 주장한다.
실제 MBC의 시청률 저하는 “PD수첩” 논란이 불거지기 이미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드라마 왕국이라 불리던 MBC의 위상은 이미 몰락했고 <뉴스데스크>를 중심으로 한 보도 프로그램 역시 타사와의 시청률 경쟁에서 뒤쳐진 지 오래다.
드라마국 관계자는 “회사가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사이 능력 있는 PD 상당수가 프리랜서로 독립했다”며 “이제는 스타 캐스팅을 통해 시청률 경쟁에만 급급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안타까워한다.
또 다른 보도국 관계자는 “시청률 1위를 달리던 <뉴스데스크>의 위기는 90년대 초반부터 시작됐다”면서 “KBS의 물량공세에 밀렸고 편집 판단에서 허를 찔리는 경우가 연이어 발생하며 지금의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라 지적한다. 또한 “나눠 먹기식 잦은 인사교체로 능력 있는 보도국장을 갖지 못한 게 비극적인 현실”이라며 “MBC에는 1년 이상 자리를 지킨 보도국장이 거의 없다. 그나마 KBS나 SBS는 안정적”이라고 얘기한다.
이런 MBC의 구조적인 문제점에 대해서는 최 사장 비판 세력에서도 같은 의견이 개진됐다. 익명을 요구한 보도국 관계자는 “MBC가 겪고 있는 공영방송의 시스템 문제는 학자들도 선뜻 대답을 못하는 부분”이라며 “공영방송의 시스템만 만들면 BBC 같은 방송국이 튀어나올 것 같았지만 오히려 문제점만 양산하고 말았다”고 설명한다.
결론은 과연 최 사장의 거취가 어떻게 결정되느냐 하는 부분에 있다. 현재까지는 방문진이 2월에 열리는 주총까지 거취에 대한 결정을 유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비판 세력은 최 사장의 리더십 부재가 확인된 상황에서 이번 사태를 무사히 넘길 지라도 사장 퇴진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지지 세력은 사장 교체로 구조적인 위기를 탈출할 수 없다는 사실이 명확한 상황에서 또 다른 사장이 선임될 경우 혼란만 가중시킬 것이라는 의견이다. MBC의 내부갈등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신민섭 기자 ksim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