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정에 들어서는 전두환 전 대통령. | ||
김영삼 정권이 들어서고 12·12사태를 일으킨 핵심세력들이 군사반란범으로 재판에 회부됐다. 나는 그때까지 그들을 재판하는 공판 30회가량을 하루 종일 법정의 방청석에 앉아 꼼꼼히 체크했다. 12·12 후 이학봉씨에게 간접적으로 운동권의 핵심이던 친구 J의 석방을 부탁한 지 15년이 흐른 후였다. 처음에는 전화로 간접적인 말만 전해 들었다. 이번에는 대법정 방청석 뒤쪽에서 먼발치로 하늘색 피의자복을 입은 그의 모습을 보았다. 부수수한 머리에 약간 부은 듯한 얼굴이었다.
나는 제대를 하고 조그만 법률사무소를 차렸다. 그리고 작가 변호사가 되기로 마음먹고 이미 몇 권의 책을 내놓았다. 법정의 복잡한 흐름은 작가 변호사만이 바로 쓸 수 있는 영역이기도 했다. 수많은 보도진과 방청객들이 보는 가운데 검사가 준열하게 말하는 소리가 법정에 울려 퍼졌다.
“전두환 피고인! 12월12일 밤 정승화 참모총장을 연행할 때 상대방은 막강한 계엄사령관이기도 했는데 어떻습니까? 다른 보신책을 강구해 놓았었죠?”
피고인이 된 전두환 전 대통령이 조금도 기가 죽지 않고 즉각 되받아쳤다.
“검사님! 검사님은 상대방이 강할 때 보신책을 강구하면서 수사합니까?”
심각한 법정의 기자석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순간 검사가 머쓱해했다. 전두환 피고인의 입에서 말이 계속 터져나왔다.
“저는 말이죠, 원래 머리가 나빠서 보신책 같은 걸 착안하지 못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용감히 덤빈 거 아닙니까? 솔직히 말해서 정승화 참모총장 연행 계획을 짜면서 상당히 긴장하긴 했죠. 그렇지만 보신책이라는 게 뭐 다른 게 있습니까? 장관이나 대통령을 내 편으로 만드는 외에 뭐가 더 있어요?”
그날 밤 그는 대통령에게 결재를 받으러 갔었다. ‘반란범이 결재를 받고 (반란)하나’ 하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검사가 오히려 주춤하며 밀리고 있었다. 검사가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전두환 피고인은 최규하 대통령에게 하야 성명을 8월15일에 하지 말고 그 다음날 하라고 했다면서요?”
검사가 하극상을 부각시키려는 의미인 것 같았다.
“그렇습니다.”
“왜 그랬죠?”
“광복절은 경축일 아닙니까? 좋은 날인데 그날 하야하면 어떻게 합니까?”
전두환 피고인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답했다.
“전두환 피고인! 최 대통령이 하야할 때 1백75억원을 줬다는 시중의 소문이 있는데 사실입니까?”
법정에서 시중의 소문까지 추궁하는 건 지나치다는 느낌이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전두환의 얼굴이 붉어지면서 흥분하는 것 같았다. 이윽고 그가 격앙된 어조로 따졌다.
“내가 돈을 주고 안 주고 간에 그런 말은 최규하 대통령을 모욕하고 저를 모욕하고 이 나라 국민에게 수치스런 일입니다. 검사님! 검사님은 돈을 주고 대통령직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검찰이 그런 말을 꺼냈는데 확실한 증거를 대주셔야겠습니다. 증거를 제시해 달라 이겁니다.”
전두환 피고인이 분노로 몸을 떠는 것 같았다.
검사는 그를 무시하면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전두환 피고인은 죽은 박 대통령 비서실에서 나온 2억원 상당의 수표를 정승화 참모총장에게 줬지요?”
“그렇습니다.”
“나중에 그 수표를 다시 몰래 찾아 써 버렸다면서요?”
검사는 인격적인 모욕을 가하고 있었다.
“당시 계엄 상황이라 돈이 많이 쓰일 것 같았습니다. 정승화 총장이 그 돈을 잘 받아썼습니다. 그 다음은 모르겠습니다.”
“전두환 피고인은 최규하 대통령에게 당시 정승화 총장을 연행하려는 재가를 요구했지만 거절당했죠?”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최 대통령 그 분 아직 살아계십니다. 물어보세요. 다만 국방장관이 배석하면 재가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때 국방장관을 찾는 두 시간 동안 시국 문제 등 이런저런 얘기를 대통령과 했습니다.
제가 사령관으로 있던 보안사령부는 그 전신이 자유당 시절 김창룡의 특무대입니다. 그 시절부터 군의 주요 지휘관을 조사하는 문제는 다른 사람을 통하지 않고 직접 대통령에게 보고해 왔습니다. 40년 가까이 그게 전례가 되어 왔습니다. 최규하 대통령도 그걸 잘 알고 있어요. 그런데 최 대통령이 외교관 출신이라 의전과 절차를 중시하기 때문에 절차상 국방장관을 찾은 거죠.”
“전두환 피고인은 1989년 12월30일 국회에서 증언을 한 적이 있지요?”
백담사에서 나오기 위해 5공 청문회장에서 진술한 일이었다.
“그렇습니다.”
“당시 이미 12·12사태 이전에 황영시 차규헌 노태우 유학성 등과 접촉하면서 정승화 총장 연행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눈 사실이 있다고 증언하셨죠?”
“아닙니다. 그때 국회 증언은 잘못됐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써 준 걸 그대로 읽었습니다. 그때 제가 있던 백담사는 아시다시피 겨울에는 걸어서도 잘 못 들어옵니다. 아들하고 사위들이 재료를 끌어모아 비서관 한 명이 급하게 작성한 겁니다. 그날 새벽 4시에 백담사에서 출발했는데 오후 1시에 비로소 해명서를 점검하기 시작했어요. 재료도 빈약하고 시간도 촉박했습니다. 읽어보지도 못하고 증언한 겁니다.”
▲ 12·12 관련 재판에 출두하는 이학봉. | ||
“전두환 피고인은 이 법정에서의 증언도 앞으로 그렇게 번복할 겁니까?”
“그야 그렇게 되면 처벌받으면 될 거 아닙니까?”
전두환 피고인이 느긋하게 맞받아쳤다.
“전두환 피고인! 본 검사가 안양교도소로 찾아가 조사할 때 모든 걸 다 시인하시지 않았어요?”
“그때는 단식중이고 피곤해서 검사들을 빨리 돌려보내려고 그냥 한 말입니다. 사실이 아닙니다.”
“단식 때문에 피곤하셨다뇨? 그날은 바로 단식 첫 날인데요.”
“하여튼 그때 답변은 실수였습니다. 죄송합니다.”
전두환은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말을 바꾸었다.
“전두환 피고인! 전재국을 알지요?”
검사가 갑자기 방향을 돌려 물었다.
“네? 누구요?”
전두환이 잘 알아듣지 못했는지 의아한 표정이었다.
“피고인의 아들 말입니다.”
“아, 그거야 당연히 내가 알지요. 아들인데….”
방청석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아드님이 대학시절 학교신문에 투고한 내용을 보면 아버지의 12·12 직전의 심정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결연한 표정을 지으면서 꿋꿋하게 살아야 한다고 했다는데 아십니까?”
검사는 군사반란의 고의성을 입증하려 묻는 것 같았다.
“애들한테 교육목적상 그렇게 한 것 같습니다.”
전두환은 가뿐하게 피해 나갔다. 그는 자신에 대한 사형이 예측되는 법정에서도 순간순간 비상하게 머리가 회전되고 있었다. 그리고 검사나 판사보다 몇 수 위에서 그들을 대하는 것 같았다.
일주일 후 참모총장이었던 정승화가 검찰측 증인으로 나왔을 때였다. 전두환 뒤에 앉아 있던 이학봉이 손을 번쩍 치켜들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재판장님! 한마디 하겠습니다.”
이학봉은 양 허리에 손을 얹었다. 도전적인 태도였다.
“뭡니까?”
이학봉을 보는 재판장의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이학봉 피고인! 손 내리세요!”
재판장이 날이 선 어조로 경고했다.
“네? 아! 예!”
이학봉이 비로소 자신의 자세를 보면서 손을 내렸다. 그러나 다시 말하려는 순간 다시 양손이 허리에 올라갔다. 재판장은 그 모습을 노려보면서 감정을 죽인 목소리로 힘주어 말했다.
“손 못 내리겠어요?”
어느새 재판장과 이학봉 피고인은 법정의 권위를 놓고 싸우는 모습이었다. 법정의 권위를 세우려는 법관과 자신이 범죄인이라는 의식이 없는 피고인의 싸움으로 보였다.
“뭐냐면 말입니다.”
이학봉이 본론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는 계속 양 허리에 손을 얹은 채 말했다.
“이학봉 피고인! 정말 그 손 안 내리겠습니까?”
재판장이 격노한 어조로 소리쳤다. 두 사람의 눈에서 파란 불길이 부딪쳤다. 이학봉은 마지못해 천천히 허리에서 손을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지금 우리는 모두 변호인이 없는 상태에서 정승화 증인을 대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무장이 해제된 채 적군이 쏘는 총을 맞고 있는 상태입니다. 우리들도 반대신문을 할 수 있도록 재판을 연기해 주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번에는 옆에 있던 장세동이 손을 들었다.
“재판장님. 오늘은 이 사건에서 정말 중요한 사람들의 증언입니다. 그런데 지금 여기 계시는 전두환 대통령각하와 저희들측 변호인은 한 명도 없는 상태에서 재판이 진행되면서 모든 게 그대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그들이 재판받는 이런 모습들은 어떤 신문이나 방송 그리고 잡지에도 보도되지 않았다. 검찰에서 미리 주는 보도 자료와 변호사들의 말을 대충 듣고 뉴스가 나갔기 때문이다. 마감시간이 가까운 오후 서너 시경이면 기자들은 썰물같이 법정을 빠져나갔다.
나는 전직 대통령들과 그 측근들이 법정에서 분노하기도 하고 반문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진실’에 대해 생각을 했다. 이학봉씨의 경우 이미 대세가 자신에게 얼마나 불리한지 알고 있으면서도 무모하고 저돌적으로 재판장에게 반응했다. 그 특유의 당당함이기도 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경우도 독특한 행동양식을 가진 것 같았다. 순간순간의 상황에 발 빠르고 과감하게 대응하고 융통성 있게 변신할 수 있는 사람인 것 같았다.
나는 내가 본 전직 대통령들의 군사반란죄 법정의 모습을 기록해 <피고인 각하>라는 제목으로 책을 냈다. 한국의 <월간조선>과 일본의 시사잡지 <문예춘추>에서도 그것을 모두 실었다. 그로부터 다시 10년의 세월이 흐른 후 나는 우연히 국가안전기획부의 수지 김 살해 은폐 사건과 관련해 이학봉의 변호사로서 인연을 맺게 된다.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