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은 지난 수개월간 법조브로커 윤씨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수십명에 달하는 그의 주변 인사들을 만났다. 이들의 입을 통해 확인된 윤씨의 인생은 한편의 드라마를 방불케 했다. 특히 그의 방대한 인맥과 그가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크고 작은 사건들은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윤씨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그로 인해 크고 작은 피해들을 본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는 인생을 망쳐버린 경우도 있었다. 건국 이래 최대 브로커로 불리는 윤상림. 그를 둘러싼 의혹은 이제 막 출발점을 통과했을 뿐이다. 그의 삶과 인맥을 취재했다.
“글도 잘 모른다. 자기 이름도 겨우 쓰는 사람이다.”
한때 윤씨를 운전기사로 고용한 적이 있는 김아무개씨는 이렇게 말한다. 그는 또 “아주 경망스럽고 가벼운 사람인데 높은 사람들이 어떻게 그와 그렇고 그런 관계가 되는지 알 수 없다”고 덧붙였다.
전남 보성이 고향인 윤씨가 본격적으로 사업가이자 로비스트로 성장한 것은 70년대 말. 정확히 1978년 청계세운상가에서 석유와 얼음 장사를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당시 청계세운상가에서 청소년 선도사업을 하며 체육관을 운영하던 서아무개씨는 “78년 언젠가 평소 안면이 있던 남대문경찰서 보안과장이 ‘성실한 사람이 하나 있으니 도와주라’며 윤씨를 나에게 소개했다. 그래서 선도사업의 일환으로 20대의 윤상림을 처음 만났다”고 회고했다.
이곳에서 ‘윤사또’라는 별명도 얻었던 그는 당시 나이트클럽 사장이었던 A씨의 도움을 크게 받았다. 당시 군위문공연 등을 다니며 군내에 상당한 인맥을 가지고 있던 A씨를 따라다니며 처음으로 권력을 접하게 된 것. A씨는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당시 윤씨는 나를 따라다니면서 5공화국의 핵심 멤버들, 특히 하나회 핵심멤버들을 만나 본격적으로 군 인맥을 넓히기 시작했다. 군 행사가 있을 때면 자기 돈으로 소도 잡고 돼지도 잡아 환심을 샀다. 나중에는 나보다도 더 아는 사람이 많아졌고 힘도 세진 것 같더라”며 껄껄 웃었다.
윤씨는 1992년 13대 총선 당시에는 이들 군 출신 인사들의 선거운동을 도왔고 이후 이들의 도움으로 군 관련 사업에서 막대한 이익을 취했다. 그러나 20여 년이 지난 현재 당시 윤씨를 도왔던 A씨는 윤씨의 카지노 돈세탁을 도와주었다는 혐의를 받고 검찰의 수사를 받는 신세가 됐다. 앞서 언급한 서아무개씨도 윤씨로부터 많은 피해를 입고 청계세운상가를 떠난 이후 현재는 목사의 길을 걷고 있다.
80년대초, 30대 초반에 불과했던 윤씨는 1993년 하나회 명단을 공개해 유명세를 탔던 B 전 장군, DJ정부 당시 국정원장을 지낸 C 전 의원, D 전 의원, E 전 국방장관, 합참의장을 지냈고 DJ정부 당시 공기업 사장을 지낸 F 전 사장 등을 만나 오랫동안 친분을 유지해 왔다. 그러한 그의 넓은 군 인맥 때문인지 군 장성들 사이에선 “군 인사, 사업에 대해서는 윤상림을 통하면 안 되는 것이 없다”는 말도 나올 정도였다. A씨는 “C 전 원장은 춘천에서 2군단장을 할 때부터 윤씨와 친하게 지냈다. 우리나라 장성 출신 중에 윤상림 이름 석자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정계 인맥도 하나씩 실타래가 풀리고 있다. <일요신문>이 ‘이 총리와 골프’ 기사를 보도한 이후 <조선일보>는 “열린우리당 전병헌 대변인이 그의 카지노 출입정지를 풀어줬다. 그와는 오랜 친분관계를 맺어 온 사이였다”는 보도를 한 바 있고 비슷한 내용으로 연관된 인사들의 이름도 하나씩 흘러나오고 있다. 지난 <일요신문>의 보도과정에서도 총리실의 이강진 공보수석은 “윤씨는 구 민주당 시절 호남지역 의원들과 대부분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고 밝힌 바 있다. 윤씨의 주변 인사들은 그가 “목적을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현재 거론되는 정치인들이 윤씨와 어떤 관계를 유지했는지 궁금증을 낳고 있다.
특히 그는 DJ정부 시절 경찰청장을 지낸 G씨와는 아주 가까운 사이였다고 한다. 80년대 종로경찰서장을 지낸 G씨는 심지어 윤씨의 도움으로 청장에 올랐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여기에는 현재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이자 DJ정부 당시 청와대 고위직을 지낸 H씨가 깊이 관여했다는 증언도 윤씨 주변에서 나오고 있다.
그가 회장으로 있는 지리산스위스관광호텔도 경찰 출신인 I씨가 건설을 맡았다. I씨는 80년대 을지로 파출소장을 지내며 윤씨와 알게 된 인물. 윤씨 주변인사들이 피해자 중 한 사람이라고 지목하고 있는 I씨는 그러나 “윤씨에 대해서는 별로 말하고 싶지 않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며 즉답을 피하고 있다.
취재과정에서 듣게 된 윤씨의 검찰과 법원 인맥도 상상을 초월했다. 주변인사들이 공통적으로 전해 준 그의 가장 가까운 검찰인사는 고검장을 지낸 J씨, 차관을 지낸 K씨 등이었다. 특히 J씨는 최근까지도 그와 막역한 관계를 유지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이 외에도 그로부터 장학금(?)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현직 검사 L씨, M씨 등의 이름도 심심찮게 거론되고 있다.
판사들의 경우도 그에게는 소중한 ‘관리대상’이었던 것 같다. 윤씨의 주변인사들은 하나같이 “그는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유독 판사들에게는 최선을 다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일요신문>이 지난달 26일 보도한 ‘매년 판사들과 망년회’와 관련, 거론된 모기업 N회장은 “보도내용은 사실과 다르다. 지인의 소개로 인사를 했던 정도다”라고 관련설을 극구 부인했지만 여전히 윤씨의 최측근 인사들은 “윤씨가 N회장을 이용해서 판사들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다”는 증언을 쏟아내고 있어 관심을 끈다. 현재 그와 가까웠던 것으로 거론되는 판사들은 대부분 단독판사들로 숫자만 10여 명에 달한다. 윤씨의 한 측근 인사는 “만약 윤씨가 이들 중 한명의 손에 의해 재판을 받게 된다면 재판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는 입장까지 보이고 있다.
재계 인사들과의 관계도 그에게는 중요했던 것 같다. 그는 재계 인사들을 이용해 고위 인사들과 접촉해 왔다. 특히 국내 굴지의 그룹 출신 인사들인 O씨, P씨와는 “공생을 하는 정도였다”는 말이 나올 정도. 또한 윤 씨는 대기업 총수인 70대의 Q회장에게는 “평소 ‘아버지’라 부르며 친분을 유지”해 온 것으로 윤씨 주변 인사들은 털어놓고 있다.
한상진 기자 sjine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