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원랜드가 돈세탁 등 각종 범죄의 온상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높지만 정치권은 ‘이상하게도’ 강원랜드에 대해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사진은 강원랜드 메인카지노와 국회의사당을 합성한 모습. | ||
도박의 메카로 불리는 강원도 정선 ‘강원랜드’의 현주소는 더욱 심각했다. 도박 중독에 빠진 사람들이 모여 서로 발버둥치고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강원랜드가 도박뿐만 아니라 신종 범죄의 온상지가 되어가고, 또 정확히 그 실태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는 자살사건과 범죄가 판을 쳐도 그 심각성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목소리는 듣기 힘들다.
이를 견제하고 감시해야할 정치권도 사회 분위기에 편승해서 목소리 한번 높였다가 슬그머니 물러서고 만다. 강원랜드 측은 “불법 카지노와 오락실 때문에 매출이 줄어들어 큰 일”이라며 마치 자기들을 건드리지 말라는 식이다. 수익 창출을 위해서라면 그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져도 상관없다는 식이다. 강원랜드의 현주소를 집중 조명했다.
지난해 10월. 국회 산자위원회의 강원랜드에 대한 국정감사장은 시종일관 고성이 오갔고 다소 살벌한 분위기까지 감돌았다. 김용갑 산자위원장(한나라당)은 김진모 강원랜드 사장에게 “내가 여러번 국감을 해봤지만, 이렇게 김 사장처럼 불성실한 답변으로 일관하거나 (의원들에 대해) 불손한 자세로 나오는 것은 처음 본다”며 질타했다. 당시 산자위는 “강원랜드에 의혹이 많다”며 “감사원에 감사를 요청하겠다”는 합의에 이르렀다. 이에 김 사장은 거칠게 항변하면서 “내가 사장을 사퇴하겠다”고 배수진을 쳤다.
결과적으로 감사원의 감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대신 산자부에서 자체 조사하는 것으로 대체됐다. 국감장에서 여야 의원들로부터 숱한 질타와 의혹을 받았던 강원랜드는 어떻게 감사원 감사를 피해갈 수 있었을까. 서슬 퍼렇던 국회는 왜 또 어물쩡 감사원 감사 카드를 집어넣었을까.
여당의 산자위 소속인 노웅래 의원은 이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당시 김 사장이 책임을 지고 사퇴하겠다고 나서면서 감사원 감사에서 산자부 자체 조사로 방향이 바뀐 듯하다”고 밝혔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산자위 소속 의원들 가운데 일부는 강원랜드가 감사원 감사를 받았는지 여부도 정확히 모르는 이가 있다는 것. 한나라당 소속의 한 의원은 “감사원 감사 요청했는데… 받지 않았나?”라며 오히려 기자에게 반문했다. 한 여당 의원은 “산자부 자체 특별조사를 받았는지에 대해서도 미처 모르는 의원들이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강원랜드에 대해 우려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많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노 의원은 “연 매출액이 7천억원이 넘고 순이익만 3천억원에 달하는 ‘공룡기업’인 강원랜드가 회계감사 한번 제대로 받지 않고 있다”며 “감사원 감사를 요청하거나, 혹은 도박 피해에 따른 사회적 병리현상을 줄이고자 각종 규제 장치를 만들려고 하면 ‘사업장을 위축시켜 매출액이 급격히 감소될 것’이라는 강원랜드의 앓는 소리에 슬그머니 정치권 또한 꼬리를 감추는 식이 반복되어 왔다”고 한탄했다.
또 다른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번에 윤상림 사건이 터지면서 강원랜드 내에서 벌어지는 돈세탁 비리가 불거졌고, 각종 자살 사건으로 도박 중독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가 나온 지 오래됐지만 여전히 강원랜드는 철옹성이고, 정치권 또한 강원랜드에 대해서는 이상하게 목소리를 크게 내지 않는다”고 밝혔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강원랜드가 위치한 강원도 정선이 지역구인 열린우리당의 이광재 의원의 힘을 은근히 부각시키기도 한다. 산자위 소속 모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강원랜드에 대해 지나치게 공격을 하면 이 의원실에서 ‘좀 살살 해달라’고 슬쩍 부탁하는 경우도 솔직히 있었다. 지역구 의원으로서 그럴 수도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또 다른 한 정치권의 관계자는 “솔직히 막대한 부를 창출하는 강원랜드는 정부 여당의 입장에서 보면 효자 기업이다. 굳이 건드릴 필요가 없는 셈이다”고 자인했다.
그는 또 “브로커 윤씨 사건에서도 보듯이 정치인이나 대기업이나 소위 한다하는 인사들 입장에서는 강원랜드 카지노장을 적절하게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좋은 측면도 있을 것”이란 의미심장한 말을 하기도 했다. 무슨 뜻일까. 그것은 최근 강원랜드 카지노장 내에서 벌어지는 돈세탁과 로비 행태 등의 실상을 통해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강원랜드가 ‘돈세탁의 명소’라는 사실은 이미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난 수년간 크고 작은 정·관계 비리사건마다 강원랜드는 ‘돈세탁 장소’로서 ‘약방에 감초’처럼 등장했다. 오죽하면 검찰이 불법 자금의 ‘블루오션’이라고 혀를 내두를 정도다.
브로커 윤상림씨의 경우, 일주일에 3~4차례 강원랜드를 찾는 VIP고객으로서 그는 1년에 평균 1백90여 차례 카지노를 방문, 이곳에서 1천만원권 이상 수표만 수십억원 이상 돈세탁한 것이 확인됐다. 그가 이곳에서 칩으로 환전한 액수는 무려 2백억원이 훨씬 넘는다고 검찰은 밝힌 바 있다. 현재 검찰은 윤씨가 불법으로 조성한 이 자금들이 윤씨가 개입한 각종 로비에 사용됐을 것으로 보고 자금의 최종 출구를 찾는 데 수사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 강원랜드 내부. | ||
이들은 주로 수표를 카지노에서 칩으로 바꾼 후 다시 칩을 강원랜드가 발행한 수표나 현금으로 바꾸는 방법으로 돈을 세탁했다. 처음 수표를 칩으로 바꿀 때만 기록을 남기고 게임 후 칩을 수표나 현금으로 교환할 때에는 별도의 기록을 남기지 않아도 되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기업인들에게도 강원랜드는 중요한 로비장소로 쓰이고 있다. 기업인들이 정ㆍ관계 인사들이나 기업에 대해 로비를 할 경우 로비 대상자들과 함께 카지노에 출입하며 대신 게임비를 내 주고 각종 접대를 하는 것이 신종 로비 수법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이런 수법은 특히 기업들간의 거래에서 많이 사용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기업인들 사이에서 강원랜드는 이미 오락과 유흥을 즐기는 곳이 아닌 로비와 돈세탁을 위한 장소라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을 정도다.
현실적으로 수표-칩-현금으로 이어지는 돈세탁 과정을 거쳐 나가는 자금에 대해서 거의 추적이 불가능하다는 점이 이들에게는 큰 메리트로 작용한다. 검찰의 한 관계자도 “범법사실을 밝히기 위해 계좌추적을 해도 카지노 등에서 이런 식으로 현금화되어 나가는 자금은 출처는 물론 행방을 찾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며 “누가 자금을 최종적으로 가져갔는지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수사가 막히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기업의 임원은 “하청업체 등이 대기업 임원들을 접대하거나 로비를 할때 가끔 강원랜드를 이용하곤 한다. 같이 가서 돈을 주면서 게임도 즐기게 하고 술도 먹고 하는 식이다. 환전하는 과정에서 자금의 출처가 완전히 감춰지니 주는 쪽이나 받는 쪽 모두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게다가 특급호텔 수준의 서비스를 받는 로비가 이뤄지다 보니 이만한 곳도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말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카지노 주변에선 돈세탁과 관련된 갖가지 흉흉한 소문들도 나돌고 있다. 카지노에서 만난 한 인사는 “정치인들이 돈세탁을 한다는 얘기는 더 이상 얘깃거리도 되지 않을 정도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정치인들이 돈세탁한 내용들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고 덧붙였다. 취재과정에서 기자가 듣게 된 전·현직 정치인의 숫자만 7~8명선. 그 중에는 전직 여당 대표를 지낸 A씨, 이전 정권에서 장관을 지낸 B씨, 전직 대통령의 친인척인 C씨 등도 있었다.
감명국 기자 kmg@ilyo.co.kr
정선=한상진 기자 sjine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