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스포츠투데이’는 돌아온 어음 4억원을 막지 못해 27일 최종 부도 처리됐다. ‘스포츠투데이’는 이미 2005년 4월 공시된 외부감사보고서에서 2004년 순손실만 1백15억2천7백만원에 이르고, 총부채가 총자산보다 16억8천6백만원이 더 많아 회계법인으로부터 불확실성을 경고 받은 바 있다. 2005년 감사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경영악화가 더 심화됐을 것임은 뻔한 상황이다.
올해 들어서만 3명의 기자가 퇴사하자 임진국 ‘스포츠투데이’ 편집국장은 지난달 23일 편집국 전체 회의에서 “회사 사정이 여의치 않아 1월26일이 일하는 마지막 날이 될 수 있다”고 언급하며 “각자 알아서 살길을 찾아갈 준비를 해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날짜까지 정확한 예측이었다.
지난 27일 상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스포츠투데이’의 한 고위 간부는 “당시 회사는 1차 부도는 막을 수 있었지만 수 일 내로 돌아올 더 큰 어음들을 버텨낼 자신이 없어 남은 자금으로 어음보다는 차라리 지난해 체불했던 월급을 지급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말했다. ‘스포츠투데이’는 한 달 보름치 월급이 밀린 상황에서 지난해 12월 월급이 다시 체불돼 편집국 평기자들이 지난달 3일 이에 항의하는 집단 연차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며칠 뒤인 11일 회사는 12월 월급을 지급했고 27일 최종부도 직전에 남은 한 달 보름치 월급도 모두 지급했다. 편집국의 한 기자는 “회사 사정이 나아졌다는 아무런 소식도 없이 갑자기 모든 급여가 지급되는 것을 보고 오히려 이상한 징후를 느꼈다”고 말했다.
고위 간부들과 재경부 직원들을 제외한 대다수 직원들은 이렇게 회사의 정확한 상황 파악을 못한 채 고향길에 몸을 실었고 31일자 신문을 만들기 위해 다시 출근하기 시작한 30일이 돼서야 회사의 최종 부도 소식을 접할 수 있었던 셈이다.
설 연휴가 완전히 끝난 31일 이정우 ‘스포츠투데이’ 사장은 오후 5시 사원 전원이 모인 편집국에서 “지금의 사태를 초래한 것에 대해 최고 경영자로서 미안할 따름”이라며 직원들에게 거듭 사과했다. 하지만 이 사장은 사원들에게 “아직 포기하긴 이르다”며 “다음주까지는 기다려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책이 있느냐’는 한 직원의 질문에는 “아직까지 투자자나 제3의 인수자는 전혀 나서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열쇠를 쥐고 있는 곳은 ‘국민일보’의 지주회사인 ‘국민지주’다. ‘스포츠투데이’에 35억여원의 채권이 있는 국민지주가 ‘스포츠투데이’에 대한 지원을 약속한다면 회생의 길은 있다. 하지만 평소 스포츠신문 콘텐츠의 부도덕성을 지적하고 있는 국민지주 이사진들이 이를 허락할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지난 2004년 7월 최종 부도 처리된 ‘굿데이’도 12월 파산 때까지 여러 곳에서 인수설이 끊이지 않았다. 일반 기업체를 비롯해 ‘동아일보’, ‘세계일보’ 등 종합 일간지의 인수설도 나돌았다. 하지만 이들 모두 아주 싼 가격이 아니라면 굳이 부도난 회사를 사서 힘들게 회생시킬 이유가 없었다고 말한다. 이번에도 똑같은 상황이 재현되고 있다.
‘스포츠투데이’의 부도가 열흘 남짓 지났지만 벌써부터 거론되는 기업체와 언론사만 대여섯 군데다. 하지만 이들 역시 “차라리 새 브랜드를 만드는 편이 더 경제적”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인 가운데 실제 3자 인수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스포츠투데이’ 경영진과 ‘회사 살리기 대책위원회’도 제3의 인수자보다는 국민지주를 설득하는데 공을 들이고 있다.
한편 현재 이름을 유지하고 있는 스포츠신문들은 상황이 어떨까. ‘스포츠투데이’의 부도소식에 가장 먼저 몸을 떨었던 곳은 ‘스포츠서울’이다. 이 신문사의 한 기자는 “‘굿데이’, ‘스포츠투데이’, 다음은 우리 아닌가하는 불안감이 크게 확산됐다”고 한다. 실제로 최근 4명의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도 또 다시 정리해고가 예정돼 있어 불안이 현실화되고 있다. 37년 전통을 자랑하는 ‘일간스포츠’는 대부분의 취재 인력을 거리로 내몰고서야 ‘중앙일보’를 대주주로 맞이했다. ‘최고 전통의 스포츠신문’ 스타일이 구겨졌지만 ‘굿데이’ 같은 파산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라는 평가다. 업계 최고의 부수와 영향력이라고 평가되고 있는 ‘스포츠조선’도 최근 상황에서 ‘조선일보’와의 관계가 끊어진다면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들을 이토록 쇠락의 길로 걷게 만든 대표 장본인은 인터넷 연예·스포츠 뉴스 공급 업체다. 기존 스포츠신문에 있던 인력들이 뛰쳐나와 만든 ‘마이데일리’, ‘스타뉴스’, ‘뉴스엔’ 등의 업체는 인기 포털 사이트의 뉴스난을 독식했다. 이는 당시 스포츠신문 5개 업체가 2004년 7월 문을 연 KT의 계열사 ‘파란닷컴’과 뉴스 콘텐츠 독점 계약을 한 것이 화근이 됐다는 분석이다. 파란닷컴의 파격 대우로 일단 독점계약을 체결한 스포츠신문들이 파란닷컴의 기존 포털 벽을 넘지 못하고 실패하면서 이 틈을 인터넷 연예·스포츠 뉴스 공급 업체들은 놓치지 않았다. 여기에 우후죽순처럼 나타난 무가지들도 스포츠지의 영역을 잠식했다.
하지만 이제 2년이었던 파란닷컴과의 계약기간이 끝나자 스포츠지들은 네이버와 다음, 네이트 등 다른 포털들과의 관계 개선에 나섰고 이는 인터넷에 맞는 취재 환경 변화로 이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스포츠신문 편집국에서부터 종이가 아닌 인터넷에 기반을 둔 취재 동선을 검토하고 있는 것이다. 현장에서 취재와 동시에 기사를 생산하자는 것이 요지다. 지금까지 행하던 취재 후 회사에 복귀해 그야말로 신문 제작을 위한 기사를 쓰는 시스템을 과감히 버리자는 것. 작년 6월 ‘분홍신’이라는 영화 시사회장에서 한 인터넷매체 기자가 노트북 작업을 하다가 관객들과 실랑이를 벌인 일이 기억난다. 이제는 스포츠신문 기자들도 이들 인터넷매체와 포털에서의 한 판 승을 위해 모두 시사회장에서 LCD모니터를 켤 준비를 하는 것이다.
또한 ‘일간스포츠’에서 실시하는 기사의 양분화도 주목을 끌고 있다. 기존의 취재인력 90%를 중앙엔터테인먼트앤스포츠(JES)에 넘긴 ‘일간스포츠’는 속보와 일반취재를 JES에 맡기고 일부 기자를 전문기자 형식으로 키우겠다는 방침을 갖고 있다. 김석현 편집인은 “마니아보다 앞서가야 스포츠신문 기자라는 명함을 내밀 수 있다”고 말해 그 의지를 천명했다.
스포츠신문에는 분명 미래가 있다.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거대 종합 일간지들을 제외하고는 발행 부수도 상위권이다. 하지만 현재로선 속 빈 강정에 그치고 있다. 이제 그들의 거대 인력과 전문성을 살리지 않고는 하나 둘 부서진 강정이 될 것이다.
윤정식 미디어 오늘 기자 happysik@media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