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재 및 건설 자재 업계에서 국내 최정상으로 꼽히는 D기업의 S명예회장(85)이 그 주인공. S회장이 조아무개(53)라는 여성과 거액의 재산 증여 문제를 놓고 민·형사 소송을 벌이고 있는 것.
두 사람의 승패는 1승 1패. 형사 사건에서는 일단 조씨가 피고인 신분에서 항소심까지 가는 접전 끝에 무죄를 받아냈고, 1심이 끝난 채 항소심이 진행중인 민사에서는 사건의 피고인인 S회장이 승리했다. 내연 관계로 알려진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법원 판결문 등에 따르면 두 사람은 10여 년 전 A구청장이 주관하는 한 국악회 행사에서 우연하게 만났다. 고령에 지병이 있는 S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은퇴한 채 거의 혼자 생활하다시피하던 상황이었고 당시 이혼한 상태였던 조씨는 지역 여성단체의 회장 직함을 갖고 있었다.
조씨는 그 자리에서 뇌출혈 및 당뇨 후유증으로 거동이 불편한 S회장을 돌보아 주었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최근까지 가깝게 지냈다. 주변에서는 당연히 두 사람을 내연관계로 여겼다. 당시 S회장은 지난 70년 첫 부인과 사별한 뒤 78년 자신보다 24세 연하인 D아트센터 대표 K씨와 재혼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회장은 해외여행이나 모든 대외 활동을 조씨와 함께했다. 조씨도 누가 보더라도 성실히 S회장을 보필했고 이런 마음을 고맙게 여긴 S회장은 조씨 자녀의 등록금을 대주기도 했으며 본인 소유의 땅인 장충동 1XX-XXX, 1XX-XXY 두 필지를 저렴한 가격에 조씨에게 매도했다.
이런 두 사람이 서로 원수로 변해버린 발단은 S회장이 조씨에게 자신의 재산 일부를 증여하겠다고 서명한 확인 각서 한 장 때문이었다.
S회장은 수년간 자신을 뒷바라지 해오면서 재산 관리에 일정 부분 역할을 한 조씨를 위해 2002년 7월 본인 소유의 장충동2가 산 1X-X 임야 한 필지와 19X-XXX 토지를 그해 12월31일까지 조씨에게 무상으로 소유권 이전, 증여하겠다는 내용 등이 기재된 확인 각서에 서명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1년 후 이 부지가 서울시 공공용지로 취득되면서 지급된 보상금을 S회장이 수령해버리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조씨가 이에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앞서 S회장이 서명한 재산 증여 확인 각서를 작성한 것은 조씨였다. 각서에는 S회장이 두 필지 땅을 조씨에게 무상으로 소유권 이전한다는 사항 외에도 ▲2002년 8월31일까지 3000cc이상의 승용차를 조씨 명의로 구입해주고 ▲2002년 8월31일까지 S회장이 소유, 경영하고 있는 S골프장의 회원권을 조씨에게 무상으로 이전하며 ▲조씨 자녀의 대학 학비와 수업료 일체를 졸업시까지 부담하고 결혼비용까지 대준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두 차례에 걸쳐 대리인 입회하에 S회장으로부터 서명과 무인을 받은 조씨는 S회장이 보상금을 받아가자 거세게 항의했다. 그러나 S회장은 각서 내용이 위조됐다고 버텼다. 결국 조씨는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소유권 이전 등기 절차 이행 및 보상금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약정금 액수는 토지 보상금인 약 32억원.
그러나 법원은 지난해 5월 조씨의 청구를 기각하고 S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확인 각서의 수기 부분이 자신의 필적이지만 각서에 조씨에게 저렴하게 매도했던 장충동 임야 두 필지의 양도와 조씨 자녀의 학자금 보조, 그리고 본인 소유 A골프장 회원권을 부여하겠다는 내용만이 들어있는 줄 알고 서명한 것이라는 S회장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
법원은 ▲각서에 서명하기 한 달 전까지 조씨에게 매도한 땅의 잔금을 조씨로부터 철저하게 받아낸 S회장이 보상금이 32억에 달하는 임야와 대지를 증여한다는 것은 선뜻 이해할 수 없고 ▲뚜렷한 이유도 없이 약정 내용을 알지도 못하는 호텔커피숍 직원 등을 대리인으로 해 서명 확인 문구를 기재하도록 하고 확인 각서에 복사 문서를 덧대 S회장의 무인을 받은 점 역시 쉽사리 수긍이 가지 않는다며 조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S회장도 약정금 소송이 진행중인 지난해 1월 조씨를 사기 미수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고 형사 1심 재판부는 S회장의 손을 들어줘 조씨는 실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지난 2월9일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조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대기업 명예회장으로 거래 경험과 지식이 풍부한 S회장이 서명 무인을 할 때 확인 각서에 어떠한 내용이 기재됐는지 등 당시 상황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납득이 가질 않는다”며 “서명 진위에 대한 S회장의 진술이 수시로 번복되는 기록 등으로도 볼 때 S회장이 확인 각서에 수기로 서명한 후 증여하기로 한 임야 및 토지의 가치가 상당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재산증여약정 사항의 이행을 모면하기 위해 허위로 조씨를 고소한 것이 아닌가라는 의심을 버릴 수 없다”고 판결했다.
법원은 S회장이 지난 2003년 5월 주식회사 이유니크를 상대로 제기한 소유권 말소 등기 청구 소송에서도 증여 계약 당시 자신에게 의사 능력이 없었다고 주장했으나 패소한 바 있다는 사실도 판결 근거로 제시했다. 이유니크는 D기업 전산실에서 분리되어 나온 통합경영관리 전문 기업이다.
형사 사건에서 패소한 S회장 측은 지난 2월15일 다시 상고한 상태. 형사 사건 상고심 결과를 지켜보기 위해 선고 기한을 무기한 연기한 민사 항소심 재판부가 과연 어느 쪽의 손을 들어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유재영 기자 elegan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