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태우 전 대통령. | ||
수사당국은 노씨 은닉재산이 더 나올 것으로 보고 조사를 진행중이며 정치권이나 법조계 안팎의 예상도 마찬가지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노씨 일가가 소유한 재산목록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이뤄질 경우 노씨 추징금 환수에 대한 추가 수확을 거둘 수 있을 것이란 의견도 나오고 있다.
노씨 일가 재산 중 우선 관심이 쏠리는 대목은 아들 재헌씨 명의 재산이다. <일요신문>은 이미 696호(2005년 9월18일자)에서 재헌씨 명의 서울 이촌동 소재 아파트와 주식가치를 합해 총 40억원 상당의 재산 목록을 소개한 바 있다.
<일요신문>이 이번에 새로 찾아낸 재헌씨 명의 부동산은 노태우씨 고향인 대구에 있다. 대구 동구 지묘동 소재 팔공보성아파트 101동 1××5호가 재헌씨 소유로 돼 있다. 이 아파트는 70평형으로 현지거래가는 평당 3백50만원으로 2억4천5백만원 선에 거래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재헌씨 명의로 된 이 아파트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부분이 있다. 재헌씨 명의 부동산 바로 옆에 있는 101동 1××3호가 노태우씨 명의인 것. 이 아파트는 검찰이 이미 11년 전에 찾아내 추징보정명령을 내려놓은 상태다. 노태우씨가 임의로 처분할 수 없도록 조치를 취해놓은 것이다.
재헌씨 명의로 된 아파트 등기부에서도 역시 눈에 띄는 부분이 발견된다. 재헌씨 직전 소유주가 노태우씨 동생인 노재우씨인 것. 노재우씨는 이 아파트를 지난 1994년 10월6일에 사들였다. 노태우씨가 101동 1××3호를 매입한 시점과 일치해 ‘공동구매’ 가능성을 보여준다.
노재우씨 아파트가 재헌씨 명의로 변경된 것은 지난 1999년 4월. 이때 노재우씨는 이른바 ‘노태우 비자금’과 관련해 수사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었다. 지난 1995년 수사당국이 ‘노태우 비자금’을 수사하기 시작하면서 당시 주무부서였던 대검 중수부는 이 아파트에 대해 ‘노재우씨가 검찰조사과정에서 형(노태우씨)에게 받은 돈으로 구입한 팔공보성아파트 등의 부동산을 매입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고 공개했다.
검찰은 노재우씨가 노태우씨 대통령 재임기간에 형에게 총 1백29억7천만원을 받아 부동산 매입에 사용한 것으로 발표한 바 있다. 결국 지난 1999년 6월 국가(원고)는 노재우씨(피고)를 상대로 ‘1백29억7천만원을 국가에 반환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1999년 1심에서 국가가 승소하자 노재우씨는 항소했고 2001년 9월 2심 재판부는 ‘노재우씨가 국가에 50억원을 지급하라’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다음달인 2001년 10월 재판부는 70억원을 추가로 포함해 모두 1백20억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당시 노재우씨는 상고장을 냈지만 재판부는 각하명령을 내렸다. 재판을 담당한 서울고법 민사합의18부는 “당시 상고 각하명령으로 종결된 사안”이라 밝혔다. 결국 노재우씨가 1백20억원을 국가에 반환하는 것으로 최종결정 됐다는 것이다.
즉 노재우씨 명의였다가 재헌씨 명의로 바뀐 아파트는 수사당국으로부터 노재우씨가 형 노태우씨 은닉자금을 받아 매입했다는 의혹을 받은 부동산이다. 그런데 1백20억원 반환에 대한 재판이 시작되기 두 달 전인 1999년 4월에 이 아파트 명의가 노태우씨 아들 재헌씨 명의로 변경된 것이다.
이 아파트와 관련해 서울고법 민사18부는 2001년 10월 판결 당시 “노재우씨가 검찰조사 과정에서 형에게 받은 돈으로 구입한 아파트를 국가에 내놓을 것을 약속하고 포기각서까지 썼던 사실에 비춰볼 때 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나중에 이를 거부한 것은 신의원칙에 위배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아파트 등기부엔 수사당국이 추징보정명령이나 가압류 조치를 취한 흔적이 없다.
▲ 노태우씨 아들 재헌씨가 소유하고 있는 서울 이촌동의 한강 자이아파트. | ||
그런데 이 땅이 재헌씨 명의가 되기 직전 소유주인 최아무개씨는 검찰의 ‘노태우 비자금’사건 수사 당시 노재우씨의 동서로 알려진 인물이다. 최씨는 ‘노태우 비자금’사건과 관련해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기도 했으며 당시 검찰 안팎에서 노태우씨 재산관리인으로 알려진 바 있다. 연희동 108-2 토지는 노태우씨가 재임 시절 가건물을 지어 접견과 경호를 위해 사용하는 등 노씨 재산처럼 다뤄지던 땅이다.
한편 노재우씨가 1백20억원 반환 판결을 받은 이후 국가가 그 돈을 다 환수했는지에 대해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는 점도 눈길을 끈다. 수사당국은 환수과정에 대한 정확한 내역 공개를 꺼리고 있다. 당시 노재우씨를 변론했던 변호사는 “서울고법 확정판결 이후 노재우씨 재산 일부가 추징된 것으로만 알고 있으며 이후 상황은 잘 모르겠다”고 밝혔다. 한 법조계 인사는 “노재우씨에 대한 1백20억원 환수조치가 상세하게 이뤄졌다면 언론에 공개됐을 텐데…”라며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당사자인 노재우씨측 역시 이에 대한 자세한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자신을 ‘노재우 회장님 모시는 사람’이라고 밝힌 인사는 <일요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2001년 확정판결 이후 상황에 대해 “모른다”고만 밝혔다. 1백20억원을 국가에 다 헌납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대법원 인터넷 사이트 사건내역에 지난 1999년 노재우씨(피고)가 1심 재판을 받을 당시 피고측 증인으로 올라 있다.
수사당국은 현재 추가로 환수할 수 있는 노씨 명의 부동산 목록을 어느 정도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4월 검찰은 노태우씨 소유 부동산에 대한 추가압류 조치를 발표했던 바 있다. 3년으로 제한된 공소시효의 안정적 연장을 위해 미리 발견한 노씨 명의 재산에 대해 순차적으로 압류과정을 밟으려는 것이다. 만약 한번에 다 몰수한 다음에 추가로 노씨 명의 재산을 찾아내지 못하고 3년을 넘기게 되면 추가 몰수의 기회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노씨 명의로 된 부동산은 주로 노씨 고향인 대구에 위치해 있다. 지난해 검찰이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은 대구 소재 노씨 명의 부동산 중 <일요신문>이 파악한 곳은 앞서 언급한 대구 소재 아파트를 포함해 총 4필지다. 대구시 동구 송정동 64번지와 신용동 648번지 685번지 그리고 지묘동 팔공보성아파트 101동 1××3호다. 이 부동산들 등기부엔 검찰이 지난 1995년 12월 추징보정명령을 내려놓은 것으로 나와 있다. 땅주인이 임의로 처분할 수 없게 해놓은 것이다.
송정동 64번지와 신용동 648번지 685번지의 면적을 합하면 1천4백 평 정도이며 지목은 모두 전답으로 나와 있다. 인근 부동산업자들에 따르면 신용동 일대의 전답은 평당 시세 30만원선이며 송정동 일대 전답은 평당시세 30만원에서 1백50만원을 호가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 노씨 명의 전답을 모두 평당시세 30만원으로만 놓고 환산해도 4억2천만원에 이른다.
지묘동 소재 노씨 명의 아파트는 앞서 거론한 재헌씨 명의의 아파트처럼 70평형으로 2억4천5백만원선이다. 대구 동구 소재 노씨 명의 재산만 다 쳐도 6억6천5백만원가량의 추가 몰수가 가능한 셈이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