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태식(왼쪽), 수지 김 | ||
보름 전인 크리스마스 때였다. 시누이 숙경은 수지의 딸에게 직접 짠 보라색 스웨터와 바지를 보냈다. 예쁜 구슬을 달아 한껏 솜씨를 발휘한 선물이었다. 아이는 수지의 충주 친정에서 자라고 있었다. 열흘 전쯤 홍콩의 수지에게 고맙다는 국제전화가 왔었다. 친정에서 알린 모양이었다. 그런 수지가 간첩일 리가 없었다. 더구나 방송에서는 수지가 동생 태식을 납치하려다 죽임을 당했다고 나오고 있었다.
언제 귀국했는지 동생 태식이 공항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었다. 초췌하고 불안한 얼굴이었다. 몸이 불편한지 가슴에 손을 대고 있었다. 숙경의 5남매 중 동생 태식은 맏아들이었다.
뭔가 앞뒤가 맞지 않았다. 숙경은 다른 동생들을 급하게 불러 공항으로 달려갔다. 이미 기자회견이 끝났는지 조명시설을 철수중이었다.
“기자회견을 한 윤태식이라는 사람 어디 갔는지 아세요?”
숙경은 남아 웅성거리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아무도 동생 태식의 소재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다음날도 뉴스에서는 올케인 수지가 여간첩이었다는 특집보도가 계속 나오고 있었다. 도대체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태식은 두 살 차이인 누나 숙경과 특히 가까웠다. 귀국하면 전화 한 통 안할 동생이 아니다. 모처럼 살아보려던 동생 태식에게 먹구름이 낀 느낌이었다.
아버지는 평생 직업이 없었다. 어머니가 과일행상도 하고 강 건너 잠실 밭에서 품팔이도 했다. 먹기 위해 5남매가 어려서부터 일했다. 비닐봉투가 없던 그 시절 5남매는 가게에서 물건을 담아주는 종이봉투를 만들었다. 태식은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면서 헌 신문지나 시멘트 포장종이를 주워 왔다. 먼지를 턴 후 그걸 녹슨 무딘 가위로 크고 작게 규격별로 잘랐다. 판잣집 단칸방에 형제들이 둘러앉아 밀가루 풀로 봉투를 붙였다. 손가락에 풀을 묻혀 수없이 거친 종이들에 문지르는 바람에 지문이 닳고 피가 배어나오기도 했다. 1백 장씩 한 묶음으로 만들었다. 봉투뭉치가 만들어지면 어머니는 그걸 머리에 이고 가게마다 돌았다. 그걸로 쌀도 조금 바꾸어 오고 새끼줄에 꿴 연탄을 산꼭대기로 들고 오기도 했다.
김치를 잔뜩 썰어 넣은 죽을 형제들은 쟁탈전을 하면서 먹었다. 멀건 국물에 밀가루반죽을 대충 손으로 뚝뚝 뜯어 넣어 만든 수제비를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으려고 형제들은 몸살을 했다. 그래도 5남매는 재잘거리며 즐거웠다. 봉투를 만들면서 깔깔거리고 장난쳤다. 한 이불 속에 모두 다리를 집어넣고 서로 잡아당기고 싸우면서 컸다. 태식은 어려서도 장남답게 속이 깊었다. 어머니 앞에 놓인 빈 그릇을 보면 동생들 밥을 갹출해서 넌지시 어머니 그릇에 담곤 했다.
태식은 누나인 숙경을 유난히 따랐다. 숙경이 동네 여자아이들과 고무줄놀이를 하는 곳까지 따라다녔다. 태식은 성격이 여렸다. 누구하고 싸우면 얻어맞곤 했다. 화가 치민 누나 숙경이 대신 가서 머리채를 잡고 악다구니를 했었다. 5남매는 도시락을 쌀 수 없는 소풍 때가 괴로웠다. 다른 아이가 가져온 노란 단무지가 든 김밥을 보면 저절로 침이 흘렀다. 숙경이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아버지가 숙경을 불러 타일렀다.
“네가 이제부터 일을 해서 동생 태식이를 가르쳐라. 맏이 태식이 저 놈은 배우기만 하면 뭐가 되어도 될 거다.”
맏아들을 위하는 아버지의 명령이었다. 그러나 그 시절 숙경이 할 수 있는 일은 버스차장이나 가발공장, 방직공장에 나가는 정도였다. 숙경은 앞이 뻔히 보이는 그 삶이 싫었다.
“싫어. 난 죽어도 고등학교에 갈 거야. 성공할 거야.”
숙경은 아버지에게 반항했다. 무섭던 아버지였다. 화가 치민 아버지는 숙경의 책들과 가방을 밖에 내던지기도 했다. 옆에서 묵묵히 보고 있던 동생 태식이 그런 아버지를 말렸다.
“아버지! 누나 먼저 학교에 보내세요. 전 남자니까 돈 벌어서 내년에 다시 다니면 돼요.”
그렇게 태식은 중학을 그만뒀다. 당시만 해도 등록금을 내지 않은 아이들은 집으로 돌려보냈다. 이후 태식은 신문배달도 하고 통을 메고 ‘아이스케키’도 팔러 다녔다. 어느덧 숙경은 여자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무원으로 취직을 했다. 태식도 중장비기술을 배워 공사장에서 일했다. 숙경은 회사생활 7년 동안 조금씩 저축한 돈으로 뒤늦게 대학에 진학했다. 영리한 동생 태식도 산업체에서 일하면서 그 안에 있는 비정규 기술학교를 다니기도 했다. 틈틈이 책도 많이 읽는 것 같았다.
해외여행이 제한됐던 그 시절, 제대 후 태식은 일본과 홍콩을 다니기 시작했다. 수단 좋은 동생이었다. 태식은 홍콩스타들과도 교제를 하고 있었다. 외국영화 수입을 해보겠다는 것이다. 석 달 전인 지난해 10월경이었다. 동생 태식은 홍콩에서 만난 수지를 역곡에 있는 그녀의 작은 아파트로 데리고 왔다. 숙경이 처음 본 수지는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몸매를 가진 미인이었다. 나이는 태식남매보다 많았지만 속이 탁 트인 여자 같았다. 동생 태식이 수지를 소개했다.
“홍콩에서 알았어요. 서로 상처가 있는 사람끼리 만났는데 앞으로 잘 살아 볼게요. 누나! 우리 결혼하려고 해요.”
태식이와 수지는 진정이었다. 두 사람 다 아이 하나씩을 가지고 이혼경력이 있었다. 수지가 찾아온 신혼의 숙경 집은 초라했다. 조그만 장식장에는 몇 권의 요리책이 꽂혀 있었을 뿐이다. 눈치 빠른 수지의 눈길이 그 책에 가서 멎었다.
“전 객지생활을 오래해서 살림을 잘 못해요. 밥도 못하고 반찬도 잘 만들지 못해요. 여기 좋은 요리책들이 있네.”
수지는 상대방이 부끄러워하는 곳을 알고 화제를 돌리는 센스를 가진 여자였다. 숙경은 올케가 될 수지에게 그 책을 얼른 선물했다. 그러면서도 숙경은 은근히 걱정이 됐다. 아마도 수지가 행당동 산꼭대기의 쓰러져 가는 판잣집인 시가를 보면 놀라서 달아날 것만 같았다. 그러나 태식은 누나 숙경과 함께 수지를 데리고 굳이 그 판잣집으로 갔다. 있는 그대로 다 보이고 수지의 결정을 따르려는 태도였다.
“우리 집은 원래 이래.”
함께 간 숙경이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의외로 수지의 대답이 당당했다.
“아무 걱정 마세요. 태식씨가 어떤 집에 살았건 그건 문제가 안돼요. 앞으로 태식씨와 열심히 벌어서 우리 잘 살 거예요.”
태식의 가족들은 그 말에 모두 감동했다. 수지는 내오려는 주스조차도 사양했다. 서로 말이 없어도 마음에 흐르는 게 있었다. 태식과 수지는 바로 혼인신고를 했다. 태식은 수지 전 남편의 아이마저도 자신의 딸로 아예 호적에 올렸다. 그리고 수지와 함께 충주의 새로운 처가에 인사를 다녀왔다.
태식부부는 홍콩에서 비디오숍을 준비중이었다. 숙경에게 한국에서 잘나가는 영화테이프들을 종류별로 구해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숙경의 남편이 마침 비디오테이프 판매회사에 다녔기 때문이다. 수지가 한국에 온 길에 며칠 일본에 다녀왔다. 돌아오는 길에 수지는 시누이가 된 숙경을 호텔 커피숍으로 불러냈다. 귤색의 캐시미어 코트와 스커트를 세련되게 입은 수지는 커피숍을 환하게 만들 정도였다.
숙경이 부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일본에 갔다가 갑자기 추워서 샀어요. 전 필요 없으니까 언니 가질래요?”
말인사가 아니었다. 숙경은 수지의 따뜻한 마음에 감사했다. 가난이 뭔지 수지는 정말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야. 괜찮아.”
숙경이 사양했다. 시누이라고 해도 수지가 나이가 위였다.
“언니, 이거 선물인데.”
수지는 외국에서 산 버버리 코트를 선물로 내놓았다. 잠시 만났지만 세심한 배려였다. 이런 여자라면 동생 태식도 이제 일어설 수 있을 것 같았다.
동생내외가 홍콩으로 돌아가고 숙경부부는 그들에게 보낼 영화테이프를 열심히 구했다. 당시만 해도 잘나가는 영화를 종류별로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가격도 비쌌다. 숙경의 남편이 보증을 서서 구입한 테이프들을 배편으로 홍콩에 부쳤다. 새해 초로 잡은 비디오숍 개업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태식이 일하던 서진통상의 사장님도 개업일에 맞춰 비행기표를 예약해 놓고 있었다.
그런데 동생 태식은 갑자기 귀국해 수지가 간첩이었다는 기자회견을 하고 실종된 것이다. 날벼락이었다. 빚을 얻어 보낸 비디오테이프들이 숙경의 집에 반송되어 왔다. 사정을 알아볼 길이 없이 세월만 흘렀다. 역곡동 야산에 진달래가 붉게 핀 4월 무렵이었다. 갑자기 낯선 남자로부터 숙경에게 전화가 왔다.
“윤태식을 데리고 있을 수 있어요?”
전화 저쪽의 남자는 다짜고짜 위압적으로 물었다.
“저… 누구신가요?”
숙경이 겁먹은 어조로 물었다.
“여기 안기부요. 그동안 윤태식이 여기 있었는데 나가면 누나 집에 있겠다고 하던데….”
끊겼던 동생 태식의 최초 소식이었다. 어머니의 판잣집에 태식이 있기는 당연히 힘들었다. 이럴 때는 그래도 핏줄밖에 없었다.
“네. 제가 데리고 있겠습니다.”
숙경이 황급하게 대답했다. 전화 저쪽의 남자는 그걸로 끝이었다. 어디로 데리러 오라는 말도 없었다.
며칠 후 태식이 탈진한 얼굴로 숙경의 집으로 혼자서 걸어 들어왔다.
“도대체 무슨 일이니? 수지가 정말 간첩이야?”
숙경이 물었다. 그 말에 윤태식이 정색을 하면서 못 박았다.
“누나! 앞으로 보도된 얘기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도 말고 궁금해 하지도 말아. 알았지?”
동생 태식의 얼굴은 공포가 가득했다. 그날부터 태식은 집에 틀어박혀 꼼짝하지 않았다. 먹고 자고 먹고 자고 했다. 잘 때면 가위가 눌렸는지 헛소리를 하고 진땀을 흘렸다. 조금 정신이 들면 텔레비전을 멍한 눈초리로 보곤 했다. 아무리 봐도 예전의 낙천적이던 동생이 아니었다. 집에 박혀 있던 윤태식은 조카들과 텔레비전 채널을 가지고 싸우곤 했다.
“처남이 안기부에서 많이 맞아서 그럴지도 몰라.”
한밤중에 일어나 걱정하는 남편의 말이었다. 태식은 이따금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숙경은 한약방에서 약을 지어다 동생에게 먹였다. 그래도 숙경은 더러 궁금증을 견딜 수 없었다.
“정말 수지가 간첩이야? 그리고 죽은 게 맞아?”
“큰일 나니까 알려고 하지 말라니까 누나. 다쳐.”
윤태식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누나를 막았다. 안기부에서는 계속 규칙적으로 태식이 집에 있는지 확인전화가 왔다.
초겨울의 냉랭한 공기가 도는 그해 11월 어느날 해거름이었다. 숙경이 서울에 가서 일을 보고 집에 들어가는 길이었다. 집 앞 세탁소 아줌마가 손짓을 하면서 그녀를 불러 세웠다.
“이봐 새댁. 동생이 아침에 집 앞에 쓰러져서 앰뷸런스를 불러달라고 그랬어. 많이 다쳤는지 꼼짝을 못하더라고. 앰뷸런스가 와서 데리고 갔어.”
숙경은 119로 연락해 동생이 있는 병원을 찾았다. 태식은 부천의 세종병원 응급실에 있었다. 전신이 멍투성이었다.
“왜 이랬어? 누가 그랬어?”
숙경은 속으로 대충 짐작을 하면서 물었다. 태식이 수지의 형부이던 안철수에게 몰래 전화를 걸어 이런저런 얘기를 했었다. 그게 도청되는 바람에 끌려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아니야. 누구랑 좀 싸우다가 다쳤어.”
윤태식은 그렇게 얼버무렸다. 치료비는 누군가에 의해 이미 지급되어 있었다.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