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태우씨의 은닉재산 중 일부는 그의 친인척들에게로 흘러들어갔지만 이 부분에 대한 추징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 ||
그러나 이것이 노 전 대통령의 은닉재산 전부일까. 이른바 ‘노태우 비자금’사건을 통해 노 전 대통령 비자금 관리인으로 밝혀진 인사들에 대한 추징 역시 아직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비자금 관리인’들은 노 전 대통령의 친인척들이다.
지난 1995년 대검 중수부는 노태우 전 대통령 동생 노재우씨와 노 전 대통령 사돈인 신명수 전 신동방 회장이 노 전 대통령 비자금을 관리해온 것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검찰은 노재우씨와 신명수씨가 노태우씨로부터 약 3백50억원을 받아 부동산 매입에 사용했다는 것을 밝혀냈다.
검찰 수사 결과 노재우씨는 형인 노태우 대통령 재임기간 동안 약 1백20억원을 노태우씨로부터 받아 서울 반포의 동호빌딩과 경기도 용인시 기흥의 미락냉장 부지 매입에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 강남구 반포동 53-3에 있는 동호빌딩의 소유주는 동호개발산업이며 노재우씨 일가가 이 회사의 주요 등기이사직을 차지하고 있다. 노재우씨가 실질적 소유주인 셈이다.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상하동 329-2에 위치한 미락냉장 부지의 소유주는 현재 오로라씨에스로 돼 있다. 이 회사 역시 노재우씨 일가와 측근들이 주요 등기이사직을 차지한 곳으로 노씨 일가 소유 회사로 볼 수 있다.
반포동 동호빌딩 부지는 지난 1990년 8월 노아무개씨와 최아무개씨 공동소유로 됐다가 1993년 1월 동호레포츠(현 동호개발산업)로 명의 변경된다. 최씨는 ‘노태우 비자금’ 사건 당시 수사당국에서 노태우씨 자금 관리인 명목으로 소환조사했던 인물이며 노재우씨와 동서지간이다. 최씨는 노태우씨 아들 재헌씨 재산형성과정에도 깊이 개입돼 있다(<일요신문>719호 보도). 지난 1990년부터 동호개발 부지가 사실상 노재우씨 일가 소유였던 셈이다. 경기 용인 미락냉장 부지는 지난 1990년 5월부터 미락냉장(현 오로라씨에스)의 소유가 됐다. 노재우씨는 문제가 된 부동산들 모두 노태우 대통령 재임기간 동안에 매입한 것이다.
노태우씨 사돈인 신명수씨도 노태우씨로부터 자금을 받아 부동산 매입에 사용한 것으로 검찰수사결과 드러난 바 있다. 지난 1995년 대검 중수부의 ‘노태우 비자금’ 수사 발표 당시 노태우씨로부터 2백30억원을 받아 서울 중구 소공동 91-1 소재 서울센터 부지 등을 사들이는 데 사용한 것으로 공개된 것이다. 서울센터 부지의 경우 정한개발이란 업체가 소유주로 돼있지만 실질적 소유주는 신명수 전 회장으로 알려져 있다. 신 전 회장은 이 땅을 담보로 지난 2001년과 2004년 두 차례에 걸쳐 수십억원 채무를 잡히기도 했을 정도로 주인 행세를 해왔다.
노재우씨와 신명수씨가 노태우씨 비자금을 가지고 부동산을 매입했다는 검찰수사 발표 이후 대한민국이 원고가 돼 이들 두 사람을 상대로 반환 소송에 들어갔다. 지난 2001년 서울고법은 노재우씨를 상대로 “국가에 1백20억원을 반환하라”는 판결을 내렸으며 노씨의 상고가 기각돼 판결이 확정됐다. 같은 해 서울고법은 신명수씨에 대해서도 “국가에 2백30억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런데 법원의 판결 이후 이들 두 사람의 반환 내역은 더 이상 알려지지 않고 있다. 노재우씨 변론을 맡았던 변호사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사건이 종결된 지 오래돼서 잘 모르겠지만 (추징금 중) 일부만 국가에 환수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노재우씨 재판 당시 증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던 노재우씨 측근인사는 추징금 반환 여부에 대해 “잘 모르는 일”이라고만 밝혔다.
신명수씨는 ‘노태우 비자금’사건과는 별도로 주가조작을 통한 부당이익 취득 혐의로 기소돼 지난 2002년 5월 집행유예 3년에 추징금 77억9천만원을 선고받았다. 신 전 회장은 지난 1월 77억9천만원을 완납했다. 그러나 ‘노태우 비자금’ 사건과 관련한 2백30억원의 반환 여부는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검찰이 노태우씨 비자금이 유입된 것으로 발표했던 부동산들의 등기부등본도 어떤 가압류나 명의변경 등이 일절 없이 ‘깨끗’하다. 그나마 동호빌딩 부지에 대해 지난 1995년 11월 서울지방법원이 가압류하고 1996년 1월 강제경매신청을 했던 것이 유일하다. 그러나 이마저도 두 달 후인 1996년 3월 강제경매가 말소된다. 노씨 재산에 대한 수사당국의 집행이 갑자기 중단된 것이다. 노씨 일가 소유인 미락냉장 부지와 신명수씨가 실질적 소유주인 서울센터 부지의 등기부등본엔 수사당국이 압류 조치를 취한 흔적이 전혀 없다.
한편 <일요신문>은 노재우씨와 신명수 전 회장에 대한 법원의 판결 이후 환수 절차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에 대해 검찰측에 정식절차를 거쳐 답변을 요구했지만 명확한 답변을 얻지 못했다. 정치권과 법조계 일부 인사들은 ‘노태우 비자금’사건에 연루된 노재우씨와 신명수씨가 관련 자금을 국가에 지급했을 경우 이에 대한 내역이 당국을 통해 즉각 언론에 공개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노재우씨와 신명수씨가 관리했던 ‘노태우 비자금’ 3백50억원에 대해 법원은 이미 지난 2001년 말 환수 판결을 내렸지만 4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 그 행방은 여전히 묘연한 셈이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