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경에게 언니 수지가 간첩이었다는 선정적인 보도는 충격이었다. 미경은 자매 중에서 언니와 가장 많이 닮았다. 어려서부터 이웃사람들은 언니와 자신을 종종 착각하곤 했다. 언니가 간첩이라는 보도가 나가고부터 그녀는 난처했다. 사람들이 모두 그녀의 얼굴을 알아봤던 것이다. 간첩같이 생겼다고 떠들었다. 외출을 할 수도 없었다. 언니가 간첩이란 건 도대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어떻게 해서든 돈을 벌어 잘 살아보겠다던 억척 같던 언니였다. 언니는 동생 미경을 가장 사랑해 줬다. 거의 부모 대신이었다. 검정고시를 준비할 돈도 대줬다. 또 미용학원에 다니라고 학원비를 부쳐주기도 했다.
언니는 외롭다고 하면서 홍콩에 와서 같이 살자고 편지를 했었다. 홍콩에 가서 얼마 동안 언니와 함께 있었다. 언니의 삶은 처절했다. 클럽에서 술 취한 손님에게 시비를 당하고 얻어맞기도 했다. 기생충같이 여자피를 빨고 사는 남자들도 있었다.
외롭던 언니는 정이 헤펐다. 따뜻한 남자를 보면 그냥 넘어갔다. 미경은 홍콩에서 살기 싫었다. 말도 다르고 낯선 타국의 생활이 너무 힘들었다. 언니는 가지 말라고 붙들었다. 그걸 뿌리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게 너무 가슴이 아팠다. 같이 있었다면 언니가 죽을 리도 없었다. 간첩이라는 누명을 쓸 이유가 더더구나 없었다. 그녀 자신이 확실한 증인이었다. 누군가의 모략이 틀림없었다. 자기 혼자만 결혼해서 잘 살았던 게 언니에게 미안했다. 죄의식마저 들었다.
어느날 밤 1시경이었다. 갑자기 몇 명의 정체 모를 남자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가족 모두를 밖에 세워둔 검은색 차에 태웠다. 영문을 모르는 남편은 벌벌 떨고 있었다. 미경은 품안에 세 살배기 아들을 꼭 안고 있었다. 차는 남산으로 올라가는 도로의 터널을 지나더니 어둠 속에 웅크린 장방형의 건물 뒤로 가서 섰다. 건물 가운데 있는 철문으로 그녀와 가족들이 끌려들어갔다. ‘철컹’ 하고 뒤에서 나는 금속성의 소리가 마치 이 세상과 하직하는 신호 같았다.
그들은 남자들을 따라 어둡고 좁은 계단을 통해 지하로 끌려 내려갔다. 좁은 방이었다. 천정과 사방의 벽은 하얀 방음타일이 붙어 있었다. 마치 병원의 수술실 같았다. 방 한가운데는 군청색 페인트칠을 한 철책상이 놓여 있었다. 천장 한가운데 납작하게 붙어 있는 형광등에서 잔인한 빛이 퍼지고 있었다.
미경은 공포로 덜덜 떨렸다. 남편도 사색이 되어 있었다. 아이조차 긴장했는지 아무 소리도 못했다. 한참 후 군용점퍼를 입은 삼십대 말의 남자가 들어왔다. 각진 턱을 가진 만만치 않은 눈빛의 남자였다. 그에게서는 집행을 하는 사람 특유의 냄새가 났다.
“너희들 왜 여기 왔는지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알지?”
군용 점퍼가 위압적인 어조로 을러댔다. 짐작한 대로였다.
“아닙니다. 우리 언니는 간첩일 리가 없어요. 언니가 살던 홍콩의 집을 한번만 조사해 봐 주세요. 그러면 사실이 밝혀질 거예요.”
김미경이 사정하듯 매달렸다.
“이 ○○년이 공작하나? 너도 수지 김과 같이 홍콩아파트에 살면서 함께 공작활동 한 거 아니야?”
군용 점퍼의 눈에서 잔인한 맹수의 인광이 흘러나왔다. 이어서 그는 떨고 있는 남편에게 시선을 돌렸다.
“너! 아는지 모르겠는데 말이야, 네 여편네라는 이년도 홍콩에서 다 언니랑 같이 몸 팔면서 간첩질한 년인 걸 몰랐지? 그러니까 앞으로는 이런 년 데리고 살지 말아. 알았어?”
“저 무, 무슨 말씀이신지?”
남편이 겁이 가득 찬 눈으로 되물었다.
“간첩하고 같이 살면 포섭돼서 너도 똑같이 되니까 이혼하란 말이야 새끼야! 알았어?”
그는 곧 패 죽이기라도 할 듯한 기세였다.
“아, 알겠습니다.”
남편이 덜덜 떨면서 간신히 대답했다.
“그래. 그렇게 말을 잘 들어야 신상에 좋지. 여기 종이를 줄 테니까 앞으로 이런 여자 절대로 데리고 살지 않겠다고 각서를 써. 그러면 보내 줄게.”
군용 점퍼는 종이와 볼펜을 던져주었다.
남편뿐 아니라 시가 전체에 간첩 혐의를 받는 독이 퍼져나갔다. 민정당 당원이던 남편의 형이 자살했다. 시아주버니가 되는 그는 국회의원이 평생 꿈이었다. 동생의 아내가 간첩 집안이라는 건 정치적 생명의 사망선고였다. 집안을 풍비박산 냈다고 시어머니의 저주가 대단했다. 이혼하고 나가라고 했다. 절망한 남편은 매일 술을 마시고 곤드레가 되어 들어왔다. 남편 역시 모든 원인을 미경에게 돌렸다. 마침내 남편은 당뇨병에 걸려 드러누웠다. 미경 자신도 몇 번 죽으려고 했지만 되지 않았다. 이웃의 눈총과 감시 속에서 신경쇠약증세가 나타나고 아예 대인기피증이 나타났다.
오빠인 김철식도 끌려가 고통을 당했다. 간첩의 가족에게는 그 누구도 일자리를 주지 않았다. 술로 세월을 보냈다. 중학교에 다니던 아들도 친구들의 따돌림을 견딜 수 없었다. 아들은 이모가 사는 마산의 중학교로 전학했다. 그러나 이모 역시 시댁식구들로부터 간첩가족이라는 이유로 당하고 있었다. 김철식의 아들은 결국 중학교를 자퇴했다. 그러나 간첩 혐의가 씌워진 집의 자식에게는 그 누구도 배움이나 일자리를 주지 않았다. 씨까지 말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으로 세월을 보내던 김철식은 15년 만에야 동생의 죽음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방송을 보고 힘을 얻었다. 방송의 내용대로 동생이 윤태식에게 살해당했다고 고소했다. 그러나 수사는 지지부진했다. 그는 2000년 7월 26일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말았다.
수지의 동생 김미자는 남편과 조그만 이발소를 하고 있었다. 방송에서 언니가 북한공작원이었다는 발표가 난 후의 삶은 지옥이었다. 사흘 동안 기획프로로 보도된 뉴스와 신문 그리고 잡지에는 주변 가족들의 이름까지, 무엇을 하는지까지 세세하게 밝혀져 있었다. 이발소에 오는 손님마다 언니에 대해서 물었다. 그리고 손님들이 점점 발길을 끊었다.
남편은 신경질을 내며 급기야 그녀를 심하게 때리기도 했다. 코뼈가 부러지고 팔이 부러진 적이 있었다. 시집식구들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김미자는 이혼을 당하고 쫓겨났다. 혼자 살아도 마찬가지였다. 간첩의 가족은 생활이 불가능했다. 호적등본을 제출해야 하는 직장은 얻을 수 없었다. 파출부나 날품팔이로 딸을 키우며 살아야 했다.
전매청에 다니던, 수지 김 가족의 실질적인 가장인 맏딸 김미례도 해직됐다. 주위의 손가락질이 심해지자 김미례는 정신이상이 되어 그해 11월 20일 사망했다. 그녀의 남편 역시 간첩가족이라는 오명과 아내의 죽음으로 절망했다. 아내가 죽은 지 1년째 되는 제삿날이었다. 그는 아내의 제사를 준비하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나갔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뇌수술을 받은 그는 폐인이 되어 버렸다.
김미정은 수지 자매 중 얼굴이 특히 예뻤다. 결혼식을 올린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보도가 나가자 시어머니는 혼인신고를 못하게 했다. 남편도 그녀에게 얼마동안 나가달라고 했다. 그녀는 혼자 절로 가서 2년 동안 생활했다. 그사이 아들을 낳았다. 그리고 마침내 이혼을 당했다.
그녀 역시 대인공포증이 생겼다. 어디 가든 자기 신분 노출을 극도로 꺼렸다. 의사들은 그걸 자기정체성의 부정이라고 했다. 병에 걸린 그녀는 아들을 전 남편에게 맡겼다. 그러나 손자를 돌려받은 할머니는 무서웠다. 간첩의 새끼라는 이유로 손자를 경주의 절에 가져다 주었다. 손자는 깊은 산속의 절에서 혼자 컸다. 한 집안의 철저한 몰락이었다.
1995년경 여름 J일보의 주간지로 자리를 옮긴 지 석 달째 되던 김완민 기자는 옆자리의 선배기자로부터 흥미로운 한마디를 들었다.
“87년 안기부에서 발표한 홍콩의 여간첩 수지 김 사건은 황당한 조작이래.”
선배기자는 그에게 작은 사진 한 장을 주었다. 수지 김이란 여자였다. 예쁘고 활달하게 생긴 인상이었다. 김완민 기자는 구미가 당겼다. 그는 기자로서의 독특한 예감이 들었다. 87년 당시 기사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외무부에 조회해서 당시 싱가포르 대사관에 근무하던 직원들을 찾아냈다. 그들에게 전화로 물어 간단히 확인했다. 직접은 말을 안해도 모두 냉소적인 반응이었다. 대충 가닥이 잡히는 것 같았다. 군사정권하에서 간첩 누명을 쓴 여자와 엉터리 반공투사의 탄생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는 87년 기사에서 피해자의 가족 상황을 찾았다. 오빠 김철식의 이름이 나와 있었고 근거지가 제천으로 되어 있었다. 그는 제천군청 호적과로 내려가서 김철식이라는 이름을 찾았다. 동명이인이 6명이었다. 그는 114를 통해 ‘수지 김을 아느냐’고 한 명씩 확인해 나갔다. 거의 다 모른다는 시큰둥한 대답들이었다. 마지막에 전화를 받은 사람은 여자였다.
“그건 왜 물어요?”
여자의 목소리에는 본능적으로 경계심이 꽉 차 있었다. 맞는 것 같았다. 김 기자는 그날 해가 설핏할 무렵 그 집으로 찾아갔다.
택시기사인 수지 김의 오빠나 가족들은 김 기자가 수사기관원인 줄 알고 극도로 조심하고 있었다. 그는 기자임을 밝히고 가족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얼마 있지 않아 그들의 서린 한이 풀려나오기 시작했다. 혼인신고까지 했던 윤태식이 사건 후 단 한 번 그 집으로 찾아오지 않은 것을 가족들은 이상하게 생각했다.
김 기자는 일단 수지 김 가족들의 한과 의문의 죽음에 대해 기사를 썼다. 그러나 원인 모르게 기사를 내보낼 수가 없었다. 그는 세 번이나 기사를 데스크에 제출했다가 거절당했다. 그게 원인이 되어 그는 주간 잡지사를 그만두게 됐다.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