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명 전 과학기술부 장관 겸 부총리. | ||
2004년 황 교수의 <사이언스> 논문 게재로 본격적으로 불붙기 시작한 ‘황우석 노벨상’ 만들기 작업은 오명 전 부총리가 진두에 섰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고 뒤에서 박기영 전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이 밀고, 앞에서 권오갑 한국과학재단 이사장이 끄는 충실한 도우미 역할에 나섰다. 그런 가운데 이번 카롤린스카 연구소 기부금의 송금 주체가 당초 과학재단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실은 과학재단과 아무 상관도 없는 한영우 스웨덴 노벨박물관 수석고문(74)이 나선 것으로 확인되고 있어 또 다른 의혹을 낳고 있다.
2002년 10월 4일. 대통령 자문 기구인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회(과기위)는 김대중 대통령에게 ‘노벨과학상 수상을 위한 정책’을 보고했다. 이는 ‘노벨상 수상은 연구업적이 가장 중요하지만 선정절차 등에 대한 분석을 통해 체계적인 수상노력도 필요한 만큼 선정과정을 분석하고, 연구 개발부터 해외 학자와의 교류까지 포괄적인 접근을 시도할 수 있는 전담조직 설치가 필요하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또 ‘스웨덴 왕립과학아카데미 및 카롤린스카 의과대학과 학술교류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등 수상을 위한 현실적인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는 건의도 포함됐다.
당시 10명으로 구성된 과기위는 황우석 교수와 진대제 전 정통부 장관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황 교수가 참가한 가운데 작성된 이 정책 보고는 약 2년 후에 실제 그대로 실행에 옮겨진다.
‘황우석 노벨상 프로젝트’가 무르익기 시작한 것은 2003년 12월과 2004년 1월. 연이어 오명 전 부총리와 박기영 순천대 교수가 각각 과기부 장관과 청와대 과기보좌관으로 전격 발탁되면서부터였다.
때마침 황 교수의 ‘배아줄기세포 복제’ 논문이 2004년 2월 <사이언스>에 실리면서 그는 국민적 영웅으로 급부상했다. 순식간에 ‘황우석 노벨상 가능성’이 전국을 뒤덮기 시작했다. 오 전 부총리는 당시 “황 교수의 인간 배아줄기세포 복제 성공은 노벨 과학상에 근접한 세계적인 성과”라며 노벨상 가능성에 직접 불을 지폈다.
참여정부 초대 과기부 차관으로 과기위 간사를 맡았던 권오갑 한국과학재단 이사장도 과기위에서 “한국의 노벨 과학상 수상 조기 실현을 위해 스웨덴과의 협력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는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이때부터 세 사람의 황우석 노벨상 수상자 만들기 작업은 본격적인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오 전 부총리는 2005년 3월 24일과 25일 양일간 스웨덴을 방문했다. 그는 노벨재단과 왕립과학학술원, 그리고 카롤린스카 의대 줄기세포연구소를 방문했다. 이 방문에는 권 이사장도 함께 했다.
▲ 지난 2일 검찰에 소환되는 황우석 교수. | ||
솔만 총장은 두 달 뒤인 5월 31일 한국을 직접 방문해서 오 전 부총리를 다시 만났다. 그는 “최근 한국의 생명과학 분야의 연구 성과는 놀라운 일이며 스웨덴 과학계에서도 황 교수의 명성이 상당하다”라는 말로 오 전 부총리와 우리 정부 관계자를 흐뭇하게 했다.
오 전 부총리와 솔만 총장의 교류에 가교 역할을 한 이는 한영우 노벨박물관 수석고문이었다. 스웨덴 국적을 갖고 있는 한국인인 한 고문은 노벨박물관의 유일한 동양인 스태프로서 노벨상과 관련된 수많은 인맥을 갖고 있는 인사로 알려져 있다. 그는 솔만 총장과도 무척 절친하며 지난 2000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김대중 전 대통령과도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고문과 오 전 부총리의 관계는 8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청와대 경제비서관이었던 오 전 부총리는 한 고문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내과의사인 한 고문은 당시 동양인으로는 처음으로 스웨덴 내각 주치의를 맡으면서 정관계 인사들과 친분을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고국 사랑이 남달랐던 그는 전자통신 분야 선진국인 스웨덴의 노하우를 습득하고자 하는 오 전 부총리에게 많은 도움을 줬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고문은 지난해 5월 솔만 총장과 함께 방한했을 때 황 교수도 직접 만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는 당시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현재로선 황 교수가 전 세계에서 (노벨상 수상 가능성에 대해) 가장 앞서 있는 것은 틀림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번에 문제가 불거진 ‘황우석 후원회 기금 5억원 카롤린스카 연구소 송금’ 계획도 이때 이뤄졌다는 것이 정설이다. 즉, 오 전 부총리가 한국과 스웨덴의 과학 교류를 위해 기부금 송금을 제안했다는 것. 그리고 여기에 스웨덴 과학계 인맥을 갖고 있는 한 고문이 도움을 준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정황을 강력하게 뒷받침하는 대목은 과학재단 측이 카롤린스카 연구소에 보낸 기부금 내용에 대한 확인서에서 드러난다. 카롤린스카 연구소 측은 “한국과학재단 측은 약 50만 5000달러를 기부했으며 이 돈은 ‘고성능 유세포 분류기’ 등의 구입용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그리고 이 확인서에 서명한 이가 한 고문이라는 것.
여기서 또 하나의 의혹이 불거진다. 과학재단과 직접적 관계가 없는 한 고문이 대신 나서서 확인서에 서명한 것에 대한 의문이다. 이에 대해 과학재단 측 역시 “우리도 아직 그 영문을 잘 모르겠다”고 밝혔다. 과학재단의 한 관계자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한 고문은 우리 과학재단의 공식 직책도 없고 아무 관련이 없다”며 “그럼에도 그가 과학재단의 확인서에 서명한 것이 무슨 이유인지 지금 확인 중이다. 다만 해외에서 우리 과학재단에 많은 자문과 도움을 주고 계신 분이기 때문에 그런 차원에서 (서명이) 이뤄진 것으로 안다”는 다소 모호한 답변을 했다.
반면 카롤린스카 연구소 측은 “이번 기부금 송금과 관련해서는 한 고문과 세부사항을 논의했다”고 밝혀 송금자의 대표 주체가 과학재단이 아닌 한 고문이었던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아무튼 이번 기부금의 성격을 두고 ‘공동연구 자금’으로 보느냐, ‘로비성 자금’으로 보느냐에 따라 ‘황우석 노벨상 프로젝트’의 실체에 대한 논란은 또한번 불붙을 것으로 보인다.
감명국 기자 kmg@ilyo.co.kr